히브리서 강해 31 /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 히브리서 11:8-11:16

by 캐리션 posted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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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BI39BI_b-s

 

 

 

 

[히브리서 강해 31]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 본향 찾는 자

 

 

1. 이방의 땅에

11:8절부터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금 특이한 것, 평소에 거의 주목하지 않던 내용이 있습니다. 9절 중간의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가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려고 출발을 했고, 중간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땅을 주겠다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원래 가던 대로 가나안에 도착을 했고,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갔다가 부인을 빼앗길 뻔 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부인도 지키고 재물도 얻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계속 가나안에서 살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 산 지가 벌써 수십 년인데 그 동안은 임대로 살았나요?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는 소유가 너무 많아서 롯과 동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결국 롯에서 먼저 땅을 선택하라고 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삶이 더부살이의 모습입니까? 부인 사라가 죽었을 때에 막벨라 굴을 돈을 주고 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전까지는 땅 한 평도 자기 것이 없었다는 의미일까요? 무덤 말고는 땅 샀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아브라함도 그 땅에서 살고 그 아들 이삭이 유산으로 이어받아 그 땅에 살고 그 아들 야곱도 유산으로 이어받아 그 땅에 산 세월이 100년이 넘는데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라고 합니다.

 

 

2. 외국인, 나그네

11:13절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절은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이 갈대아 우르를 말하는 것입니까? 16절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입니다. 구약에서, 창세기에서 무슨 하늘에 있는 본향이야기가 나옵니까? 아브라함이, 사라가, 이삭이, 야곱이 외국인이나 나그네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고 하늘에 있는 본향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외국인은 야곱의 부인들 즉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의 딸들인 라헬과 레아가 야곱과 함께 집을 떠날 때에 아버지에 대해 투정을 하는 장면에서 나올 뿐입니다(31:14). ‘나그네는 아브람이 부인 사라가 죽자 매장지를 사려고 할 때 나옵니다(23:4).

 

 

3. 본향을 찾는 자

11:10절은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인데 구약에서, 창세기에서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람, 사라, 이삭, 야곱에게 성을 짓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것 같고, 조상들이 그 성을 바랐다는 내용은 이 구절에서 처음 봅니다. 그런데 16절 끝에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성입니까? 이게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창세기에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등은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본문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니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분깃과 소유가 땅 위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 조상들은 마음속으로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생각했다, 아브라함이 바랐던 것은 하늘 자체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믿음으로요? 그 믿음은 어디서 났습니까? 이런 설명이 납득이 되십니까?

 

 

.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1장의 믿음으로는 그 사람이 믿음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행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에 대해 언급된 내용은 실제로 창세기에는 거의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매우 유사하지만 누가 행했는가?’라는 주체와 무엇을 행했는가?’라는 내용과 어떻게 행했는가?’라는 방법에 대해서는 매우 다릅니다. 만약 히브리서가 이 조상들의 대단한 믿음을 칭찬하려는 것이라면, 이 조상들이 워낙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였고,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아차리고 순종하고, 보이지도 않는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다면, 그래서 주변에 있던 허다한 죄인들과는 구별된 특별한 사람,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면 16절 중간의 내용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뻐하시고가 나와야 하는데 본문에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전혀 대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디 훌륭한 인물들이 아니고, 원래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고, 남들이 전혀 갖지 못한 믿음을 소유한 엄청난 사람들이 아니고, 남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가셔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고, 증거 주셔서 그나마 창세기에 나올 정도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그들의 행동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2. 그들의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주셨는데 잠시 기근이 있다고 아브라함이 땅을 훌쩍 떠나 애굽으로 가버리는 것에 대하여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라고 해주고, 야곱이 집에서 도망가 외삼촌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관련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 대하여 계획이 있으셨기에 마치 그들이 하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란 것으로 해 주고, 그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낸 것으로 해 주고,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한 것으로 여겨주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이라고 높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히시고 도리어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시고, 약속하시고, 준비하시고 일해 주신다고 하나님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3. 여겨주심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태도, 자세, 마음이 여겨주심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들의 복’,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4:6, 7, 8)와 같이 주체가 하나님이고, 인간은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겨주심이 정말 멋지고, 귀하고 고마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대해 주시듯, 인간이 살아가면서 상호간에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여겨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인간을 소중하게 대해주십니다. 각 사람을 존중해 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에 부족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많이 모자라도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하나하나를 모두 인정해주시고 순종이라고, 헌신이라고 여겨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여겨주심을 이해해야 히브리서 11장이 바르게 이해되는 것입니다. 여겨주심이 있기에 하나님이 수고해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겨주심으로 인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분복을 누릴 수 있고, 인간 상호간에도 이 하나님의 여겨주심의 마음으로 대해야 서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과 가치와 원리와 방식과 능력으로 행하셔서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