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36 / 너희가 이른 곳은 / 히브리서 12:18-12:24

by 캐리션 posted Ap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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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S8wjjIiTLqI

 

 

 

[히브리서 강해 36] ‘너희가 이른 곳은

 

 

. 이른 것이 아니라

 

 

1. 하나님의 사랑, 사역

성경의 표현은 법적인 표현이 아니라 관계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상호 인격적 관계를 맺었기에 법이 등장할 이유가 없고, 인격적 관계가 법적인 틀로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으로 인간을 지배한다면, 법으로 인간을 통치한다면 성경에 구약과 신약이 있을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고, 약속을 하고, 맹세를 하고, 하나님이 일을 하고, 은혜를 베풀고 하는 내용이 모두 제거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하나님, 하나님 스스로 가장 강조하는 성품이 바로 인격성, 즉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할 때도 그냥 하나의 피조물로 인간을 만들어서 에덴동산에 던져 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하고, 하나님적 가치와 존중을 부여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대화하며 소통하며 교제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존중했기에, 그 인간이 죄인이 되어 행복을 상실하고, 서로 불평하고 책임전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마침내 죽이는 불행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타까워하시기에 인간이 다시 행복을 누리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고, 죄의 실체를 알려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해주시고, 하나님이 친히 수고하고 열심을 내어 사역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2. 이른 것이 아니라

12:19절에 너희는,,,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22절에 너희가 이른 곳은이 장소 또는 상황이 대조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른 것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도착한 시내산입니다. 성경이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시내산으로 옮겼다는 장소적 이동이 아니고, 노예로 살다가 드디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에게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에 대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장소로는 시내산이기에 만약 성경이 아니라면 시내산의 위치, 높이, 시내산의 모양이나 유명한 봉우리가 소개되고, 어느 쪽으로 들어와서 어느 쪽으로 나가는지, 몇 명 정도의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지,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등등이 소개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고 있다, 너희를 애굽에서 출애굽시켰고, 앞으로 가나안까지 인도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시내산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들에게 형상이 없는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려다 보니 그들이 평상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즉 , 흑암, 폭풍, 나팔, 연기, 소리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무섭기로, 두렵고 떨린다

시내산에 이른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에 감격하고 기뻐하고 신나해야 합니다. 드디어 바로의 통제를 벗어났고, 지긋지긋한 노동에서 벗어났고 말 그대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희망과 기대에 가슴 벅차해야 합니다. 동시에 애굽의 잡다한 신들을 모두 물리치고 당당하게 출애굽하여 새로운 곳에 도착을 했는데 자그마치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려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경의를 표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보인 반응은 무섭기로, 두렵고 떨린다’(12:21)였습니다. 하나님이 공포를 조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저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려고 신이 등장한다고 여겨지는 현상들 즉 , 흑암, 폭풍, 나팔, 연기, 소리등을 동원한 것입니다. 죄인인지라 죄인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기에, 만약 하나님이 보여주신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다고 무섭고, 두렵고 떨린다고 할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다양한 현상으로 증명해 주니까 그 현상이 무섭고 두렵고 떨린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상황, 조건, 환경, 처지, 신분, 상태를 바꾸어 달라고 구하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전적인 은혜로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놀랄만한 변화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도,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 너희가 이른 곳은

 

 

1.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나님의 사역이 구약에서 끝난 것이 아니기에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렀는데, 정작 이르러야 하는 곳이 따로 있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이르렀고 더 나아가 원래 조상들에게 약속되었던 땅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히8:4절에는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고, 각 지파별로 땅 분배도 했고, 자기들의 분깃을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다 이루어졌고, 백성들은 노예신분도 벗었고, 노동도 벗어났고, 이제 자유인의 신분으로, 자기 땅에서 안식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었는데 마치 주지 않은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일처리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최상, 최고, 최적의 사역을 하셨는데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은혜와 평안을 유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죄인의 한계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죄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죄인의 핑계를 대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그 죄인의 한계를 인식하시고, 죄인의 연약함을 끌어안으시고 하나님이 다시 또 사역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친절하기도 하시고, 신실하기도 하시고, 부지런하기도 하시고, 게다가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2. 너희가 이른 곳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이르렀는데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고 하였기에 최종적인 곳, 정작 이른 곳이 등장하는 것이 히12:22~24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니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입니다. ‘이른 곳즉 장소이기에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언급되는데 시온 산은 실제로 예루살렘이 있는 산, 땅 즉 육지에 있는 산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하늘의 도성즉 땅이나 육지가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의미이지만 모순되는 표현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르지 아니하고너희가 이른 곳은’, 이 표현은 지리적인 관점, 장소를 설명하려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인간에게 성취된 내용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도착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해서 동해하신다는 것이 핵심이었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후에, 히브리서의 표현대로라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신 결과로 인간에게 이루어진 내용은 시온산이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3. 다른 표현, 같은 내용

 

 

같은 내용인데 구약에 대해서는 이른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신약에 대해서는 너희가 이른 것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장소가 달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출애굽이후에는 시내산에 이르렀고 십자가 이후에는 시온산에 이르렀기 때문에 장소적으로는, 지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곳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구약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핵심이고,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핵심입니다. 그러면 내용적으로는 구약에도 이른 것이고 신약에서도 이른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누리지 못했으나 신약의 성도들은 이르렀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