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40 / 돈을 사랑하지 말고 / 히브리서 13:1-13:6

by 최고관리자 posted May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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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5-0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wKLw3aA7fXg

 

 

 

Ⅰ.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 유익한 신앙

히브리서가 총13장인데 마지막 장에 왔기에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의 최종 결론,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나와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온통 예수에 대해 설명했는데 가장 먼저 아들이신 예수를 강조했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라는 표현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의미도 되지만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천사보다 뛰어나고 모세보다 위대하고 여호수아보다 훌륭하다고 두 번, 세 번 강조를 했습니다. 왜요? 왜 이렇게 예수를 강조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는 비교불가 대상으로 가장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이 수고해서 인간을 이롭게, 인간을 행복하게, 인간을 유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수고하게, 인간을 고난받게 만들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가시밭길을 가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 전문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희생하고 하나님이 헌신해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희생하고 헌신했으니까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해 놓았으니 이제 죄를 멀리하고, 죄의 결과를 당하지 말고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2. 저도 기쁩니다!

성도는 세상을 향해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수고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면 나를 위해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죄송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를 써야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 관련하여 성도가 수고할 수 있고,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도 하고 헌신도 하고 섬김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성도의 마음은 희생이나 봉사가 아니라 감사요 기쁨이요 행복이어야 합니다. 내가 수고를 한다고, 애를 쓴다고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희생을 하고 고생을 한다고 마치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너를 위해 이런 일을 감수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이런 기회가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세로서 ‘It’s my pleasure!’, ‘이것이 저의 기쁨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종교 절차를 따르고 있고, 각양의 종교들은 각자의 종교 방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각 종교들에는 종교 행위를 대행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사죄행위를 해주거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축원 행위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 종교 종사자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종교 행위가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고, 그들이 평생에 딱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또는 일주일에 한번 심지어는 매일 한번이나 그 이상으로 수도 없이 똑같은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그 종교 의식이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얼마나 다른 가를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 종사자들을 통해 종교 행위,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지극정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자기가 더 간절해야 하고, 자기가 더 헌신해야 하고, 자기가 더 희생해야 한다고 수고와 고생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히브리서는 자기에게 연연하지 말고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를 굳게 잡을 지어다’라고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신을 향한 종교 행위에 집중하는 종교가 전혀 아닙니다. 신을 위하는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내용입니다.

 

 

Ⅱ. 돈을 사랑하지 말고

1. 형제 사랑, 손님 대접

타 종교에서는 인간의 확신이나 신의 보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신이 맹세를 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늘 불안하고 염려하고 조마조마하고, 그래서 인간들이 종교 행위나 종교 활동에 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공덕을 쌓은 것이 내일도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번에 신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내년까지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늘 내 문제가 더 절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형제 사랑, 손님 대접,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고, 내가 보장이 되어 있어야, 내가 확증이 되어 있어야, 불안과 염려가 아니라 자유와 평안이 있어야 기쁘게 즐겁게 섬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예수의 사역을 설명하면서 예수의 사역을 통해 성도는 구원받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에 강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쌓으려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차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수고를 감내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보장되어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라고,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2. 돈을 사랑하지 말고

히13:5절 앞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이고 뒤에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로, 구절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 즉 서로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것과 비교를 하거나 대조를 하는 경우에는 대조하는 대상이 동등한 수준,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 합니다. 첫 번째, 주제를 대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돈’이 나왔으니까 뒤에는 돈 대신에 돈과 대조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대상, 예를 들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시간을 사랑하라’ 든가, 아니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자유를 사랑하라’ 같은 것이 나와야 합니다. 두 번째, 행동이나 반응을 대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가 나왔으니까 돈은 동일하게 두고 뒤에서는 ‘돈을 돌보듯 하라’든가, ‘돈을 사랑하지 말고 그냥 돌고 돌게 하라’ 같은 것이 나와야 합니다.

본문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로 ‘돈’과 ‘있는 바’가 적절한 대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지 말고 족할 줄로 알라’도 적절한 대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있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와 대조가 되려면 앞에 무엇이 나와야 할까요? 여기 ‘있는 바’ 즉 내 소유가 있고, 내 삶이 있는데 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고 도리어 부족하다고 여겨지고,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모자라다고, 더 있어야겠다고, 더 끌어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욕심, 탐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탐욕을 부리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탐욕과 있는 것’이 대조가 되고, ‘욕심을 내는 것과 족할 줄로 아는 것’이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삶의 양식

 ‘돈을 사랑하지 말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부정 접두어’에 ‘사랑하다’는 단어와 ‘은(silver)’이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어원상으로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합성된 상태에서는 ‘탐욕이 없는, 욕심이 없는’이라고 더 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원문에는 ‘생활방식, 태도, 습관’, 영어로는 ‘a mode, manner, a way’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주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13:5절은 ‘생활 방식은 또는 삶의 태도는 탐욕을 부리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가 되는 것이요, 이러한 태도가 결코 쉽지 않기에 성도에게 이렇게 살라고 권고하는 이유가 5절 중간부터 6절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하나님, 예수님께서 사역을 행하셔서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은혜로 주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