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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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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가이드 1    나훔1~3

 

. 니느웨에 대한 경고 (1)

 

1. 앗수르의 상황

요나는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전, 서로 경쟁하며 세력 다툼을 하며 점차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예언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점점 쇠퇴하였고 앗수르는 점점 강성하여져서 주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위세를 떨치고(왕하 17),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산헤립 왕이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한 금을 벗겨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왕하 18).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가 물러간 후(왕하 19) 히스기야에 이어 왕이 된 므낫세는 앗수르를 두려워하여 히스기야의 정책을 모두 뒤집고 친-앗수르 정책을 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니느웨에 대한 예언을 주심으로 백성들을 위로하려는 것입니다.

 

2. 니느웨에 대한 경고

나훔은 니느웨에 대한 경고를 선포합니다. 나훔의 예언을 누가 들어야 할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의 궁극적 대상은 모든 인류이지만 일차적 대상은 선지자 자신이고 이차적 대상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이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조차도 하나님에 대하여 모를 때에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시어 설득하시고, 선지자들의 선포로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와 관련된 예언을 했었습니다. 이때에는 요나를 직접 니느웨로 보내서 니느웨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요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훔은 니느웨로 간 적이 아니고,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도 아닙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나훔의 예언을 듣고 앗수르에 대한 두려워하는 대신 앗수르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성품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1:2),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1:3), ‘여호와는 선하시며’(1:7)입니다. 여호와의 성품과 관련된 표현은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강한 전사의 모습으로 소개될 때는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적(자기를 거스르는 자, 자기를 대적하는 자, 1:2/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자, 1:11)을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용서와 자비가 강조될 때는 백성(자기에게 피하는 자들, 1:7)에 대한 은혜와 긍휼의 측면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대적자는 이방인, 앗수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에 대한 예언의 핵심도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1:14)입니다.

 

 

. 유다와 앗수르 (2~3)

 

1. 아름다운 소식

예언은 유다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것’(1:15),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2:2)이지만 앗수르에게는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 왔나니’(2:1),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2:10),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2:13),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3:1),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3:18)로 재앙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위하여 앗수르를 패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나 앗수르 모두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패망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2. 니느웨 멸망의 원인

니느웨 멸망의 원인은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3:4)이고 하나님의 조치는 하나님의 심판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1:14)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인 인간이 아니고, 유다의 대적이 앗수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물리친다고, 인간과 싸워이긴다고 하나님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은 오직 죄이고, 하나님이 죄인들에게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빼앗기거나, 하나님만의 유일성이 상실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를 싫어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예언

예언은 표면적으로 크게 세 가지 사건과 관련 즉 이스라엘 및 이방 나라들의 관한 것,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사역에 관한 것, 인간의 변화에 관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인간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언도 하나님을 계시하여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고, 예수가 강림하여 행하실 사역도 모두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고, 인간의 변화 즉 인간에게 새 영과 새 마음과 새 언약을 주시는 것도 모두 인간을 구원하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언서가 하나님의 심판서로, 예언자들이 시대의 불의에 저항하며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했던 혁명가로 오해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오직 하나님,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가이드 1   하박국1~3

 

. 여호와의 변론 (1~2)

 

탄원과 응답

선지서중에 요나서와 하박국서는 개인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책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시고, 선지자는 말씀을 선포하는 양식입니다. 예언을 선포하는 것이 선지자의 생활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을지라도 선지자가 예언을 거부하거나 불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부터 불순종을 작정하였고, 하박국은 먼저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하고 하나님이 응답하는 패턴으로 예언이 주어집니다. 선지자들은 준비된 일꾼이 아니었고, 하나님은 사역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이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으십니다.

 

2. 여호와의 변론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죄인을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변론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변론의 자리에서 인간이 옳은 질문, 정당한 주장을 하는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기에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자신의 의를 주장하거나, 타인에 대한 징벌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불의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변론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탄원을 받아주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선포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론의 결론은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18)입니다.

 

3. 하박국의 호소

하박국은 요시야 왕 때부터 나라가 쇠망해가던 시대에 활동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1:2~3)라고 호소합니다. 하박국이 말하는 강포, 죄악, 패역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활동입니다. 그 동안 하박국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던 선지지가 아니었습니다. 유다 백성중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이 받는 이방의 압제에 대해 힘들어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 질문은 하박국이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언서 전체에서 반복하는 어이없어하는, 안타까워하는 내용입니다. 하박국은 이방 나라의 강포함만 언급할 뿐 이스라엘의 패역함은 전혀 인식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1:6)입니다. 하나님이 나태하거나 실수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주장입니다.

 

4. 하박국의 항변

하박국은 이방의 압제자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사실에 놀라며 하나님의 공정성을 문제 삼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데도 잠잠하시나이까’(1:13)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죄악의 결과로 압제를 받는다면 더 의로운 자에게 압제를 받아야지 더 악한 자에게 압제를 당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교만한 태도가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2:1). 하나님의 답변은 이스라엘이든 이방이든 죄에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2:6, 9, 12, 15, 19)의 선언은 이스라엘과 이방 모두에게 예언서 전체를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던 내용입니다.

이방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에 예외없이 등장하는 것이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2:18)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하신다고 합니다(2:14).

 

 

. 환희의 송가 (3)

 

1. 기쁜 소식

하나님의 예언은 유다나 바벨론의 차이없이 모두에게 복된 소식입니다. 하박국의 반응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3:13)입니다. 과연 하박국이 예언을 죄를 멸하시는 것으로 이해했는지, 아니면 바벨론을 심판하겠다고 오해했을까요?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하튼 자기에게 복된 소식이라고 알았습니다.

 

2. 하나님에 대한 기대

하박국의 상황은 아직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방의 압제도 여전하였고, 개인의 상황의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동일한 상황에서 불평이 찬송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불평이 나왔던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찬양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여전히 책임지고 계심을 알고 있고, 자신들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9). 신앙은 물질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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