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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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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스가랴 9 ~ 14

. 메시야의 이해

 

1.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사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제공하신 이후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고 버리고 잊었습니다. 우상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압제를 받았을 때 우상에게 도움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은 왕을 구했을 뿐입니다. 왕이 등장하고, 나라가 틀을 잡은 이후에는 더욱이나 하나님께 구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나라에 문제가 발생하고 왕이 해결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왕위를 찬탈하였고, 백성이나 신하들이 더 나아보이는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기도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한 이야기, 구원자(메시야)를 보내달라고 간청한 이야기, 구원자가 임하기를 기대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보내실 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어 구원자(기름부은 자)가 되게 하셨고, 과연 사람들은 구원자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자를 보내는 것과 관련된 내용 즉 누구를, 언제, 어디로, 무엇을, 어떻게, 왜는 오직 하나님이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이 된 순간부터 친히 죄인들을 찾아와 도와 주셨고(3~11), 아브람을 선택하여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이후부터는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함에도 불구하게 신실하게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을 선택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먼저 구원자를 보내주셨고, 왕이 등장한 이후에는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를 세우셨고, 선지자로 하여금 구원자의 역할을 하게도 하셨고,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가 임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선택하여 기름을 부으심으로 구원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시어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메시야 사상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후에 수립된 유대교에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세우시고 보내시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메시야 사상이 시작됩니다. 비록 포로지에서 귀환은 하였으나 여전히 제국의 속국상태로 나라도 없고 왕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스라엘의 상황을 전환시켜줄 인물로 기름부은 자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가 생각한 기름부은 자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자이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한 만한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이었고, 이스라엘이 생각한 문제는 이방 압제자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독립된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포로귀환 이후부터, 유대교가 시작된 이후부터 자천타천 메시아’(구원자)가 등장하였고 잠시 나라의 상황이 호전되면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고 나라의 상황이 악화되면 다시 새로운 메시아’(구원자를 기대하였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를 강조하며,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시는 선결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율법준수를 제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메시야와 유대교가 기대한 메시야는 용어만 같을뿐 내용상 누가 메시아인지, 메시아가 와서 무엇을 행할 것인지 등에 대해 완전히 달랐습니다.

 

 

. 내가 하리라 (9~11)

 

1. 심판과 회복

이스라엘과 열방에게 지적하신 내용은 동일하게 죄인들이 의지하려는 것을 제하여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9:2),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라’(9:3~4),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9:6)입니다. 이스라엘과 열방에게 약속하신 내용도 동일하지만 대표로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 등장합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로 말미암아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왕은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루고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9:9~10)입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9:16~17)입니다.

 

2. 내가 하리라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10:2)이기에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리라’(10:1)이지만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10:6~7)입니다. ‘내가 그들을 행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10:8),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10:10),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10:12)입니다.

 

3.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자기들을 지켜줄 자를 구하였건만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11:1),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11:17)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가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11:6)이면 하나님도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이며 화 있을진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목자들처럼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11:9),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11:10),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11:14)라고 하시지만 이것은 목자들을 비난하는 역설적 표현일 뿐입니다.

 

 

. 이는 내 백성이라 (12~14)

 

1. 하나님의 선언

하나님의 활동을 강조하기 위하여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12:1)임을 선언하고, 유다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들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12:2),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12:3)하여 승리가 아니라 화근이 되게 하시며, 그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 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12:7)를 이루시고,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12:8)를 이루실 것입니다.

 

2. 은총, 간구하는 심령, , 더러움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를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12:10)입니다. 그 동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구하지 않았고, 이후 유대교에서 메시아를 간구할 때에도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기대하지 않았고, ‘찌를 자들을 향하여 애통하기보다는 환호를 기대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과 죄인이 기대하는 것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13:2)도 이스라엘로서는 전혀 바라지도, 언급하지도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신실하게 일하시는 것은 오직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리라 하리라입니다(13:9).

 

3. 성전과 하나님

에스라, 학개, 스가랴서를 중심으로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선언되고 후원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기능, 성전의 효과, 성전의 역할, 성전의 유익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해서는 아예, 원천적으로 언급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을 예언하고, 포로 귀환을 예언하고, 성전 재건을 예언하였어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감동시켜서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해도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별 반응이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예언과는 별도로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메시야에 대한 엉뚱한 기대감만 커져갈 것입니다. 그리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구원자인 예수가 오셔도 거부하고 도리어 죽일 것입니다.

 

4. 그 날에

여호와의 날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심판으로, 한편으로는 구원으로 소개됩니다. 한편으로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4:1~2), 다른 한편으로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14:12~15)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중에 승자가 없고 패자가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서로 싸우고 서로 패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이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14:1),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14:16),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14:20)입니다.

 

5.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예언은 모두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선포입니다. 예언이 선포되고 사백여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행한 적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강림하시고 친히 십자가 사역을 통해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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