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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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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욥 기 4 ~ 14

. 인식체계

 

1. 변론

욥기는 앞부분(1~3)과 뒷부분(42)에 서사가 기록되어 있고, 욥에게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각 지역 출신의 세 사람이 등장하여 세 번에 걸친 변론을 합니다. 첫 번째 변론은 4~14, 두 번째 변론은 15~21, 세 번째 변론은 22~31장입니다. 그리고 엘리후의 변론이 32~37, 하나님의 변론이 38~41장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변론이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 죄인이 된 이후에는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변론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론 대신 사건과 말씀을 통해 계시를 행하셨습니다. 인간 상호간의 변론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딤전 6:4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후 2: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3:9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입니다.

 

2. 인간, 신에 대한 이해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나 죄인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죄인은 죄의 사고방식, 죄의 인식체계, 죄의 행동원리를 따릅니다. 죄인에게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가지고 있는 신개념은 죄인들이 사고, 묵상, 탐구를 통하여 투사한 것입니다. 결국 신도 죄의 인식체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신개념에는 성경이 계시하는 신의 속성, 성품, 활동이 등장할 수 없습니다. 55:8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를 하시면서 들으라, 알라고 하십니다. 철학, 인문학, 종교학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여 과연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임을 분별해야 하니다.

 

3. 행동과 결과

인간의 원리의 대표가 행동의 원리입니다. 행한대로 받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과응보’, ‘자업자득으로 맞는 원리, 정직한 원리, 공평한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적용하는 대상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관계에서도 행동의 원리는 인간의 상황을 고려합니다. 정상적 행동을 할 수 없는 노약자들에게는 사회적 배려가 제공됩니다. 행동의 원리가 적용된다면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행동을 통하여 결과를 이루어내도록 독려하고, 상대방에게도 정당한 값을 치루고 보상을 받도록 권고함으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난점은 행동의 원리 자체가 아니라 이 원리를 적용해야하는 인간의 상태입니다. 인간이 죄인이기에 행동의 원리를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행동하지 않고도 결과를 가져가려는 시도를, 상대방에게는 행동했음에도 결과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행태를 보입니다. 죄인은 법, 규정, 원리를 공정하게, 바르게준수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죄인들은 행동의 원리를 신과의 관계에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설령 인간은 불의함이 있어 행동의 원리가 깨어질 수 있을지라도 신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행동의 원리가 공정하게 집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기준을 요구하지 않으며, 죄인의 한계와 무능을 알기에 은혜를 제공하십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기 않기에 은혜를 구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고 결과를 받는 것이 불의하다고 생각하기에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논리는 맞지만 존재가 틀렸습니다.

 

 

. 엘리바스와의 욥의 대화 (4~7)

 

1. 욥의 처지

욥기 1~2장에 의하면 욥이 처한 상황은 욥의 행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을 받아 부유함을 이룬 것이 아니며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여 벌을 받아 자녀와 소산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1:9~11),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2:4~5)라고 주장했습니다. 사탄은 욥이 어떻게 부유할 수 있었는지, 자녀와 종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오직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욥과 친구들은 하나님과 사탄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욥에게 갑자기 발생한 사건에 하나님과 사탄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관점으로는, 욥은 어느 날 불행한 사건을 당한 것입니다.

 

2. 엘리바스의 첫 번째 말(4~5)

엘리바스 주장의 핵심은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4:7~9)입니다. 엘리바스가 말은 망한 자, 정직한 자는 기독교의 죄인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회적, 법적 원리에 근거하면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가 그대로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욥에게 임한 상황은 이 상황을 유발하는 욥의 행동에 근거했을 추정이 가능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고 신의 심판과 징계를 주장합니다. 엘리바스가 언급하는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니라 죄인들이 생각하는 신, 타종교의 신, 우상 신일 뿐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였기에 신에게 형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욥의 대답 (6~7)

욥기에서 욥은 하나님이 내세운 사람으로 하나님을 배운 자, 아는 자의 입장이고 욥의 아내와 세 친구와 사탄이 내세운 사람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입장입니다. 욥은 사탄의 예상과는 다르게 곤고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상대로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6:10)입니다. 대신 엘리바스가 욥을 죄인(사회적)으로 몰아세우자 안타까워하며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6:24)고 호소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바스의 무고한 주장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는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7:20~21)라고 자신의 연약함과 미천함을 고백합니다.

 

 

. 빌닷과 욥의 대화 (8~10)

 

1. 빌닷의 주장 (8)

빌닷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8:3~6)고 합니다. 자녀들이 죽은 것은 자녀들이 죄의 결과요, 욥이 당한 고난도 욥의 죄의 결과라는 주장입니다. 신은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는 주장도 일관됩니다. 신의 도움을 받는 길은 인간이 먼저 신을 찾으며, 간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입니다. 죄인들의 개념에는 인간이 죄인이기에 신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개념이 없고, 신이 먼저 은혜를 준다는 개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8:20)입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존재론은 없고 오직 인간의 행동에 따라 상벌론이 있을 뿐입니다.

 

2. 욥의 대답 (9~10)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9:2~3)고 고백합니다. 욥은 아직까지 주를 향하여 욕하지않습니다. 대신 삶의 곤고함을 토로합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10:1~4)입니다. 빌닷은, 신은 자기들의 생각과 똑같다고 주장이고 욥은 하나님은 인간과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소발과 욥의 대화 (11~14)

 

1. 소발의 주장 (11)

소발은 애초에 욥의 주장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욥이 죄를 지었고 신이 형벌을 내렸다고 단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미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미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며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11:2~4)입니다. 제시되는 것은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11:13~15)입니다. 표현대로라면 친구들이 제시하는 개선의 방법론과 하나님이 제시하는 개선의 방법론이 유사, 동일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도 돌아서라, 회개하라, 찾으라, 부르짖으라, 정결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친구들의 주장, 시편의 다윗의 주장, 잠언의 주장의 공통점은 인간의 행동을 우선시한다는 것, 신의 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욥의 대답 (12~14)

욥은 친구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12:3)라고 탄식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인정합니다(12:13~25). 친구들은 신의 공의를 주장하고 욥은 하나님의 불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은 신의 공의를 근거로 욥을 죄인으로 몰아세우고, 욥은 자신의 행동에 견주어 하나님의 다름을 이해받고 싶은 것입니다(13:20~28). 욥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14:1~4)고 고백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보기 드문 죄인론, 존재론입니다. 친구들은 인간과 신이 같은 원리로 행동함을 주장하고, 욥은 다름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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