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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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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강 욥 기 38 ~ 42

. 사단과 하나님

 

1. 인물의 구성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1:1, 2:3)로 소개됩니다. 죄인 중으로 스스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욥에게 은혜를 베푸사 온전하고 정지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되도록 사역을 행하셨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인이 된 후 인간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의 원리와 죄의 원리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이 먼저 사역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원리를 설명하고 증명해 보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욥기는 욥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사단의 대립구조로 전개되었습니다. 다만 성경의 동일한 패턴의 다란 양상으로 사단이 먼저 제안하고, 사단의 대변인으로 네 명이 등장하여 죄의 원리를 설명하고 증명해 보려고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2. 사단의 술수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온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과 부스 사람 엘리후는 인간의 연륜과 경륜을 쌓은 지혜로운 사람을 대표합니다. 무지한 사람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지혜를 가진 자들로서 삶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논리를 발언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해 이들이 주장한 행위의 원리’(인과응보)는 옳은 주장입니다. 다만 실제로 삶에서 행위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 같은 현상에 대해 모든 죄인들을 비롯하여 다윗, 솔로몬을 포함한 여러 인간들이 혼란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행위의 원리를 주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불신하는 이유는 사단의 계략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속인 것은 첫째,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행위의 원리가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의심하게 하여 신을 도입하게 하고 신의 지배와 통제를 받게 한 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위한 어떤 수고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인간을 속박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창조된 인간에게 행위의 원리를 선포하시고 일체 인간의 삶에 간섭,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창조의 모든 복을 받았으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를 얻어 누렸습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오셨습니다. ‘행위의 원리에 따라 죄의 결과를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도와주기 위해 친히 은혜주시며 계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도와주시면서 행위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 은혜의 원리를 적용하셨습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계시),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켜 주신 후(구속) 즉 인간이 행위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게 된 후에야 행위의 원리를 적용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등장 (38 ~ 39)

 

1. 하나님의 책임

욥기는 욥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사단의 대조를 보여주는 대상입니다. 사단의 종이요 죄를 알고 익숙한 죄인 네 명은 너무나 당연하게 죄의 원리를 주장합니다. 이때 사단의 대변인들인 네 명과 논쟁하여 하나님의 원리를 주장해야하는 존재는 욥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욥도 존재적으로는 죄인이요,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자처하지 않았고,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욥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가르치시고, 사단에게 자랑하시고, 사단의 도발을 받아주신 분이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이 욥을 보호하고 대변하고 위로하는 역할, 책임은 모두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왜 친구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지, 왜 하나님을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하는지 추궁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역할

하나님의 목적은 사단의 대변인인 네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이김으로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욥(죄인)이 하나님을 더욱 알아 삶에서 죄의 원리를 이기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행하여 하나님의 열매인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풍성히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세 친구와 엘리후에게 집중 비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버텨온 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연 하나님은 이렇다는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이해입니다. 이것은 욥의 의지, 각오, 다짐, 열심, 확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많이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사단 측 대변인들이 심판자와 계몽자로서의 신의 역할을 주장하는 듯 모든 내용을 다 쏟아낸 후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등장하시어 한편으로는 욥을 대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욥에게 게시를 더하십니다.

 

3. 네가 아느냐, 누가 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은(38~41) 변론의 대상은 네 명에게가 아니라 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표현은 네가 아느냐?, 누가 하였느냐?’는 질문의 양식이지만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네가 알아야 한다는 해설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네 명이 주장한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네 명이 주장한 핵심은 행위의 원리로 대변되는 심판자로서의 신이었고, 심판의 행위가 형벌과 계몽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38~41)에는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활동이 없습니다. 천지를 주관하고 인간의 삶을 위해 모든 일을 친히 행하심을 설명합니다. 신의 권세, 명예, 위엄,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책임, 역할, 수고, 열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38~39)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조목조목 언급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38:4)부터 시작하여 땅, 바다, 광명, 흑암, , , 번개, 동물, 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지으시고 돌보심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과 욥 (40 ~ 41)

 

1. 책망 or 대화

하나님에 욥에게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38:2~3, 40:7)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 스스로 내가 하였다고 대답하십니다(38:9, 23, 39:6). ‘대답할지니라에 사용된 단어가 알다라는 기본 뜻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말하는 것을 너는 알지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대답하다’(40:2, 3, 5)외치다, 소리치다는 뜻도 있어서 하나님이 욥에게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어다라고 표현은 내용상으로 나에 대해 오해하는 자, 혼동하는 자는 외쳐서 물어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욥이 대답하기를(소리치기를)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고 합니다. 이때 대답하리이까돌아서다, 새롭게 되다, 회복되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입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어떻게 돌이킬 수 있으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입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대적자들

하나님의 말씀(40~41) 특정한 존재인 베헤못’(40:15~24), ‘리워야단’(41:1~34), 라합(26:12)을 언급합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고대 근동에서 파괴자, 암흑의 지배자, 인간이 대항할 수 없는 대적자 등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말씀은 욥에게 내 곤고한 환경이 내가 악을 행한 것의 형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내가 형통한 날들이 내가 선을 행한 것이 보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구나, 내 삶은 내 행동의 영역을 넘어서 엄청난 하나님의 도우심이구나!’를 깨닫게 합니다. 동시에 나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내가 상대할 수 없음에도 내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이구나!’를 고백하게 합니다.

 

3. 욥의 고백

욥은 소리치며(대답하여, 42:1) 이르기를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한 후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38:2)을 패러디하여 자기 자신에게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42:3) 바로 저입니다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곻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라고 반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듣는 것과 보는 것의 대조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듣고 배운 것과 직접 체험하여 알게 되었음을 비교,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의 모습은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입니다.

 

 

. 하나님의 선언 (42)

 

1. 사라진 사단

욥에 대한 하나님의 소개에 대하여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9)라고 대적하며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1:11) 하였지만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2),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2:5) 하였지만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2:10)로 사단은 이미 틀린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사라지고, 사단의 주장이 틀린 것을 조금 더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하여 네 명의 변론이 등장했었던 것입니다. 네 명의 변론에 대하여도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42:7, 9)고 선언됩니다. 세 친구의 주장대로라면 잘못된 주장을 한 자들에게는 형벌이 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통하여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42:8)고 하심으로 자신들이 주장했던 행위의 원리나 자신들이 강조한 신의 공의의 심판자의 모습과는 다른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2.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입니다. 본문의 갑절이나는 욥의 신실한 믿음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이미 인간의 삶은 행위의 원리를 넘어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임을 강조했었는데 이제사 욥의 신앙에 대한 보상이 등장할 리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갑절은 신21:17, 왕하2:9절 등에서 상속자, 후계자를 인정하는 상징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께서 네 명과 대조하여 욥이 옳았음을 인정해주시는 상징으로 갑절을 주신 것입니다.

욥기의 초점은 욥의 신앙, 욥의 고난, 욥의 승리가 아닙니다. 욥기의 사건을 통하여 소개되는 사단의 주장, 네 명의 친구들을 통해 드러나는 죄의 원리의 실체와 한계, 그리고 사단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욥기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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