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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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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민수기 9 ~ 14

. 불려오는 하나님

 

 

1. 유월절을 지키라 (9)

애굽에서 첫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실시한 후(12:6) 출애굽을 하여,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 광야에 이르고(19:1), 모세가 40일씩 두 번 시내 산에 올라가 머물고(24:18, 34:28),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40:17), 열이틀 동안 예물을 드리고(7:1-83),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을 지키고(9:1), 둘째 달 첫째 날에 인구조사를 행하고(1:1),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갑니다(10:11). 모든 준비와 점검이 끝난 후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키게 하십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삶과 죽음 즉 장자의 죽음 때 죽어야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음을 확인하며 감격하는 절기입니다. 광야의 여정을 시작하기 바로 전 자신들의 신분과 위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고백하는 것이기에 단 한사람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유월절은 부정한 자도, 여행 중에 있는 자도 모두 지켜야 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하나님은 사정이 있는 자를 위하여 한 달 후(이월 십사일)에 특별히 따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십니다. 또한 유월절에는 타국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억하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싶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으며, 유월절에 참석이 가능합니다. 출애굽 때에 허다한 잡족이 동행하였듯이, 모세는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2. 나팔을 불라(10)

광야로 출발하는 최종 순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은 나팔 둘을 만들어 회중을 소집할 때, 진영을 이동시킬 때 불어서 모든 백성이 원활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동원할 수 있게 하는 조치입니다.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 희락의 날과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 나팔을 불면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고, 너희를 구원시리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단 한 순도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대신 이스라엘이 혹시라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떠난 듯한 생각이 들 때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호출할 수 있게 하시는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성 전투 때에 백성들로 하여금 성을 돌게 하고 칠일에 나팔을 불도록 하심으로 이 약속을 실행하십니다. 참으로 인간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하시는 자상하고 친절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여호와를 멸시하고 (11, 12)

 

 

1. 죄의 현상

하나님에 대한 죄인은 반응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서있을 때에는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죽게 하느뇨’(14:11), 홍해를 건넌 후 신광야에서는 주려 죽게 하는 도다’(16:3), 르비딤에서는 목말라 죽게 하느냐’(17:3), 다베라에서는 기력이 다하여’(11:6), 가나안 정탐 후에는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14:3), 모세의 지도력을 시기하고(16), 물이 없음으로 또 불평하고(20:2), 길로 말미암아 마음을 상해하는 등(21:4)입니다.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에 대한 묘사가 불평이었듯이(14), 시내산을 출발한 이스라엘에 대한 묘사가 불평부터 시작함으로(11) 광야 생활 내내 이스라엘의 행동을 예측하게 해 줍니다. 죄는 어느 특정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마음에 잡혀 있기에 모든 상황에서 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죄는 이스라엘 백성, 섞여 사는 다른 인종, 모세와 같이 누구라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행합니다(11:1, 4, 11).

 

 

2. 여호와를 멸시하고

죄인들의 불평과 탐욕 등 다양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은 한 마디로 여호와를 멸시한 것’(11:20, 14:11),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을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삼하 12:9)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명령, 규례, 계명)을 근거로 불순종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을 향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여호와 멸시는 하나님을 거절, 비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죄인들의 행동에 의해 하나님은 모욕, 굴욕, 치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인을 설득하지 못한 것, 죄인에게 신뢰를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죄인의 행동의 원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진노(11:1, 10, 33)가 자주 언급되지만 하나님의 조치는 벌이 아니라 새로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입니다.

 

 

3.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1:1~15)

백성들의 행동에 대한 사람의 반응의 모세입니다(11:9~15). 모세는 절대로 비범한 인물, 준비된 사람, 신실한 일꾼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세우심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은혜주심이 없으면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전혀 구별됨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거룩, 충성, 온유 등의 모습이 나오면 모두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요 은혜의 열매입니다(12;3). 모세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 자신의 역할, 책임, 사명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만나를 공급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구할 수 없어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인간에게 맡기신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특별한 일(사명)을 부탁, 지시,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이나 말씀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짐을 덜어주시는 분이지 인간에게 짐을 지우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4. 여호와의 손이 짧아 졌느냐? (11:16~35)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우시는 방법은 모세에게 더욱 하나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의 불평을 들어주시고, 지친자의 넋두리를 받아주시고, 알지 못하는 자의 요구를 응답하심으로 저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백성들의 불평보다 모세의 불평은 훨씬 여호와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보다 더 많이, 더 직접 하나님을 배우고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는 책망이 아니라 호소이고, 메추라기의 내림은 백성보다 모세를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엉뚱한 사명의식을 고치시려고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 모세에게 임한 영과 동일한 영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지 못하면 광야여정 내내 모세가 가장 힘들 것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이 더 많이 있으면 효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다 하실 수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이기에 영이 임한 것이 아니라 영이 임하면 모세나 장로들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5.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12)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심은 권세와 권위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선택을 특권화시킵니다. 장로들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건이 있은 후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비방합니다. 예전에 모세가 높고 영예롭고 존귀해 보였는데 이제는 자신들도 모세와 동등한 위치와 신분과 역할을 가졌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타인보다 특별 대접하여 존귀하게 높여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을 책망하는 것은 모세의 위치와 역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며, 여호와의 종에게 불평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며, 이번에는 모세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비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론은 백성들로부터 자신들이 행한 것과 동일한 도전을 받게 되고(17), 그때에 하나님은 동일하게 하나님이 레위지파를 통해 일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 가나안 땅을 탐지하라 (13)

 

 

1.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

이스라엘이 불평하며 서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가나안을 언급한 적이 없고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소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어도 자신들로서는 능력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나안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정복할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땅이요, 가나안 입성과 정착의 여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목적을 상실한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직접 탐지하게 하여 저들의 소망이 되게 하십니다. 즉 백성들의 요청에 의한 정탐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제안하신 것입니다.

 

2. 보고와 판단

사실 가나안 땅은 애굽과는 비교가 안 되는 척박한 지역입니다. 가나안은 자주 기근이 들었지만 애굽은 풍성했습니다.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부르는 것은 애굽에 나일강이 흐르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십일 동안 가나안을 탐지한 두령들의 보고에 따르면 가나안이 너무 좋은 곳, 번성한 곳, 과실이 풍성한 곳입니다. 이것은 가나안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결과입니다.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고 큰 것은 그만큼 살기위해 수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정탐꾼들은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두려움을 보고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텅 비었다고, 성들은 허술하고, 사람들은 무기력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가나안이 어떠한 상황인지는 하나님께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탐군들의 역할은 탐지와 보고입니다. 그런데 정탐군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고 하나님을 제외한 결론을 내립니다. 어차피 가나안 정복과 정착은 하나님의 행하실 일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3.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14)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자고 합니다(14:9). 백성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거나, 불가능은 없으니 도전하자는 선동이나, 어차피 죽을 것 싸워라도 보자는 등의 일단 좋은 말로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시니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인들의 반응은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입니다. 진영 중에 있는 성막과 구름기둥 불기둥 그리고 매일 내리는 만나가 죄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은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원통함과 괘씸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평안과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민망함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빠른 광야 통과, 넓은 영토 확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수고를 할 지언정 광야의 여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설득

모세가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지혜는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신다는 것입니다(14:18). 하나님께 사죄를 기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구할 수 있는 정도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정탐 후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은 괞찬은데 자녀들이 걱정인 것처럼 말했습니다(14:3). 하나님은 저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며 어린아이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고 정작 어른들은 들어가지 못할 것(14:31)을 선언하심으로 죄인의 사고방식을 깨뜨리십니다. 모세를 통한 여호와의 선언을 들은 이스라엘은 슬퍼하며 사죄를 위하여 진군과 점령을 시도합니다(14:40).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한 행동이 아니라 여전히 상황과 감정과 자신들의 습관에 근거한 행동입니다. 모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라가 자신이 얼마나 간절하게 사죄하는 지를 보이려는 죄의 원리를 따라 행동하여 쓸데없는 전투를 벌이고 무익한 패배를 당할 뿐입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헛된 열심만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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