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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DlVaFzQbJ4
[에스라 강해 4] ‘돌아온 사람들’
Ⅰ. 이스라엘과 열두 지파
1. 열두 지파의 형성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레아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낳고, 그 다음엔 빌하가 단, 납달리를 낳고, 그 다음엔 실바가 갓, 아셀을 낳고, 그 다음엔 다시 레아가 잇사갈, 스불론을 낳고, 그 다음엔 라헬이 요셉과 베냐민을 낳습니다. 세 번째 아들인 레위가 제사장 지파로 분류가 되어 열한 아들이 남게 되고, 요셉도 빠져서 열 아들이 남게 되고, 대신 요셉이 부인 아스낫에게서 나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포함되어서 다시 열둘이 됩니다. 야곱을 기준으로 하면 열 명의 아들과 두 명의 손자로 구성된 열두 지파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르우벤, 시므온, 유다,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므낫세, 에브라임입니다. 창49장에 야곱의 마지막 유언에는 레위와 요셉이 포함되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출애굽 사건이후부터는 열두 지파가 정착되어 출애굽한 백성이 소개되는 민수기의 인구조사(1, 26장)는 열두 지파가 소개되고, 각 지파별로 우두머리 한 사람씩 소개됩니다.
2. 열두 지파의 위기
열두 지파의 첫 번째 위기는, 광야생활 40년을 지내고 가나안 동쪽지역을 정복하였을 때 르우벤 자손,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의 절반이 가나안 동쪽 지역을 달라고 하며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민32장). 이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않는 지파는 백성에서 제외한다고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애굽에서 나오는 것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애굽이 나쁜 땅이 아니고 가나안이 좋은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변화시켜주는 것, 신분이나 지위를 향상시켜 주는 것, 살기 좋은 지역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역의 핵심은 언제나 ‘계시’ 즉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서 죄를 이김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인 자유와 평화와 안식과, 사랑과 온유와 양선과 오래참음과 충성을 누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 자손, 갓 자손 전부와 므낫세 자손의 절반이 요청한 것들 들어주시고 동일한 권면을 하십니다(t 22:4~5). 두 번째 위기는 레위인의 첩과 관련된 베냐민 지파 사건입니다(삿19~21장). 온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가 세 번에 걸친 전쟁을 해서 베냐민이 패하고 멸절될 위기에 처합니다. 백성들이 길르앗 야베스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어 주었고, 실로에서 여자들을 붙잡아 가서 아내를 삼게 하는 술수를 써서 베냐민 지파가 소멸되지 않게 하고, 열두 지파가 유지되게 했습니다.
3. 열두 지파의 분열
솔로몬이 죽은 후에 나라가 남 왕국과 북 왕국으로 갈라집니다(왕상 12장).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여로보암과 백성들이 찾아와 솔로몬이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르호보암은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듣지 않고 젊은 신하들의 권고를 따라서 백성들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여로보암과 열 지파가 분열을 선언하고 새로운 나라 북 왕국을 세우고, 르호보암에게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남아 남 왕국이 됩니다. 이렇게 지파가 분열되었을 때 하나님은 화가 나고 답답해 하셨을까요? 가능한 빨리 두 나라를 통일시키고 다시 연합시키려고 애를 쓰셨을까요? 각 지파의 대표들을 불러서 서로 화해하고 다시 열두 지파로 뭉치라고 권고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어떻게든 열두 지파라는 구성을 유지하려고 수고를 하셨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이 통일된 나라를 유지하고 부국강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두 지파가 똘똘 뭉쳐서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분열되었다면 가능한 빨리 다시 통일되어 더 크고 더 세고 더 부유한 나라와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상황,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아닌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준, 새로운 가치, 새로운 개념, 새로운 원리, 새로운 방식, 새로운 능력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4. 열두 지파의 소멸
분열된 두 나라의 이야기가 열왕기하에 나오는데 때로는 서로 대적이 되어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동맹을 맺어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두 나라가 결혼을 통해 사돈을 맺어 잠시 평화의 기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이야기에 열두 지파에 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북 왕국이 열 지파로 구성되었는데 결국에는 앗수르에게 패망을 하였고 백성들이 앗수르의 여러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후에는 열 지파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남 왕국의 이야기도 지파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남 왕국도 바벨론에게 패해 멸망했고 백성 중 일부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이 포로를 잡아갈 때 지파별로 할당을 한 것 같지도 않고, 특정 지파는 선호하거나 피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이 예언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드디어 포로들 중에 일부가 유다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돌아온 사람들이 유다와 베냐민 족속들입니다(스1:5). 남 왕국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였고, 이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돌아온 것뿐입니다. 나라와 지파가 분열된 이후 이스라엘에는 열두 지파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입니다.
Ⅱ. 돌아온 사람들
1. 돌아온 사람들
포로귀환 때 열두 지파들 중에서 특별히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분열 왕국 시대, 분열 지파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에 열두 지파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신약으로 와도 복음서를 보면 열두 지파 개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소개할 때 어느 지파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사렛 예수’, ‘막달라 마리아’, ‘구레네 사람 시몬’,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열두 지파가 회복되어야 한다거나, 흩어졌던 열두 지파가 다시 모여야 한다는 등 열두 지파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열두 제자는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못 낳는 사람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열두 지파가 강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에스라서의 주제가 예루살렘이 아니고 성전이 아니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도 지파별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가족중심 소개이고(2:3~20), 두 번째는 지역중심 소개이고(2:21~35), 36~39절에는 제사장들이 소개되고, 40~58절까지는 맡은 일을 기준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열방의 하나님
귀환자들 중에는 불특정 다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2:59~62).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기에 하나님 사역의 대상은 모든 인간입니다. 출애굽 때에도 히브리민족뿐만 아니라 ‘허다한 잡족’(출12:38)이 포함되어 있었듯이 포로 귀환 때에도 다른 민족, 다른 백성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돌아온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이 감동시킨 자’요, 이 사건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포로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이방인, 바사 왕 고레스를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는 대상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당연하고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당연하고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은혜에 배타성은 없습니다. 에스라서를 통해 이스라엘이 무엇을 행하는가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