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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FAH4ml40Io
[에스라 강해 5] ‘기록한 대로’
Ⅰ. 포로 귀환의 대표들
1. 출애굽
출애굽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이 고된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이 노예가 되어 압제받고, 탄압받고 있을 때 하나님이 자유를 주었다고 해석하면 오해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사역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상황, 환경, 조건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 세 번째, 신앙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의 핵심은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열 번의 이적을 행하시며 ‘이로써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셨고, 애굽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원리와 기준과 방식이 담긴 하나님의 교훈, 하나님의 지침이 되는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계시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셨고, 하나님의 지침대로 사는 것이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증명하신 후에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기를 설득하신 것입니다.
2. 출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의 핵심도 성전 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70년 동안 성전 없이도 잘 계셨고 갑자기 성전이 필요해 지신 것이 아닙니다. 포로 귀환 사건이 출애굽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이유는 아마도 극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세와 같은 군계일학의 지도자도 없고, 하나님이 직접 이적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사건과 포로 귀환은 오직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사실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약속하신 것 같이 하나님이 포로 귀환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이루어내신 것 같이 하나님이 포로 귀환을 이루어내셨습니다. 더 극적인 것은 포로 귀환입니다. 하나님이 단번에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포로 귀환 사건의 핵심도 ‘계시’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이적을 예고하시면서 ‘이로써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신 후 바로 그 이적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계시’인줄 압니다. 하지만 포로 귀환 사건은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들, 즉 나라가 망할 것, 포로로 끌려갈 것, 성전이 무너질 것, 70년이 지나면 돌아올 것, 성전이 재건될 것 등이 모두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언을 하실 때 ‘그 일들이 일어나면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 말씀을 하시고 아무리 빨라도 70년이 걸리고, 조금 긴 것은 100년 후에, 조금 더 먼저 예언된 것들은 대략 150년이나 2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언과 성취’의 간격이 길어서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패턴은 출애굽과 포로 귀환이 똑 같고, 핵심도 ‘계시’로 똑같습니다.
3. 포로 귀환의 대표들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적 사건이니까 하나님만이 주요 핵심 인물입니다. 출애굽 사건에는 자주 모세가 주인공으로 오해를 받는데, 다행히도 포로 귀환 때는 특별한 인물이 없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인물, 가장 유능한 인물은 아마도 다니엘일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영재 교육을 받았고, 고위 공직자 생활을 했으며 언어와 문화에 익숙했고, 나라가 바벨론, 메대, 바사로 바뀌어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포로 귀환의 리더나 대표는 고사하고 귀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영웅적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아닙니다. 스룹바벨, 예수아가 대표입니다(스2:2, 3;2, 4:3, 5:2, 학1:1). 이들에 대한 정보는 본인의 이름, 추가적으로 아버지의 이름, 특별히 알려진 것은 직분 명칭이 전부입니다. 이들이 명문가 출신이라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믿음과 신앙이 투철하다고, 지도력과 리더쉽이 탁월하다고,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준비가 잘 되어있다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도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성취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Ⅱ. 기록된 대로
1. 기록된 대로
귀환하여 각자의 성읍에 살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행한 일들(3:1~6)을 보며 ‘아 돌아온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구나, 신실한 백성들이구나!’라고 감동을 하거나 이 사람들을 칭찬하면 안 됩니다. 유다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기록된 규례대로 여호와를 섬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죽하면 13대 히스기야 왕과 16대 요시야 왕이 율법에 기록된 대로, 기록된 규례대로 행한 것을 일명 ‘종교개혁’이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종교 개혁을 했다지만 앗수르의 침략을 받으니까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을 털어서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바칩니다. 종교 개혁이 당대에도 유지가 안 되었고, 그 아들 므낫세 때에 가장 패역한 시대가 됩니다. 요시야 왕 때에도 종교 개혁이 일어나는데 그때 유다의 종교 실상이 열왕기하 참으로 가관입니다(왕하 23장). 성전을 청소하다가 여호와의 율법책이 발견되고, 성전을 정화하는데 성전에서 별의별 우상이 다 나옵니다. 일단 종교 개혁을 했는데 그 후에는 신앙을 유지하고 유다가 신실하게 여호와를 섬기고, 주변나라가 위협을 해올 때 아주 신실하게 여호와만 의지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애굽이 공격해 오니까 바벨론을 의지하고, 바벨론이 공격을 하니까 애굽에 도움을 청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말고는 다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 말고는 다 했습니다. 그 전에도, 그 시대에도,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유다의 상황을 지적하셨습니다. 도대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제사장도, 율법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종교적 실상입니다.
2. 어디서, 어떻게
귀환자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이라고하면 70년 전에도 하지 않던 것을, 그 이전에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보내실 때부터라고 하면 적어도 150, 200년 전부터 하지 않던 것을 왜 지금은 할까요? 유다에 있을 때에도, 성전이 있을 때에도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대로 행하지 않던 사람들, 그래서 율법 책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청소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던 사람들이 과연 유다가 패망하였을 때,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성전 기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졌을 때 ‘율법 책을 사수하자’라고 했을까요? 백성들이 보기에 하나님이 자기 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전혀 막아주지 않았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아주지 않았고,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는데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겠다, 그런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바벨론에서, 여호와의 성전도 없는 곳에서, 여호와의 성전의 기물들은 바벨론 신들의 신전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율법 공부하면서 신앙심을 키워갔을까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누가 가르쳤을까요?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유다 땅에 있을 때부터 제사장도 율법사도 여호와를 모른다고 지적받았는데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가르쳤단 말입니까?
3.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유다가 패망한다는 예언도 하나님이 이루셨고, 포로로 끌려간다는 예언도 하나님이 이루셨고, 70년이 지나면 포로가 귀환한다는 예언도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이루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백성들의 신앙, 백성들의 믿음, 백성들의 헌신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예언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을 백성들이 보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간다고? 어떻게? 바벨론보다 더 강한 나라 바사가 지배하고 있는데 가능할까? 여호와의 성전은 파괴되고, 기물들은 바벨론 신들의 신전에 있는 등 하나님이 무기력하다고 여기고 있을 그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식, 한편으로는 너무 감동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어이가 없기까지 한 방식, 즉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로 이루어 내십니다. 그것을 유다 백성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