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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9u2I0SfkAk
[에스더 강해 8] ‘유다인에게는’
Ⅰ. 에스더를 이해하기 위하여
1.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의 모델, 대표적 사례가 하나님 자신입니다. 거룩은 ‘다름’인데 하나님의 사역이 독특해서, 예상과 달라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놀라는 것이요, 경이로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시, 명령하신 내용이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요구하신 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 누리라고, 향유하라고, 풍성히 활용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자격 조건이 없고, 제한 구역이 없고, 유통기한도 없고, 입장료가 없고, 당연히 사용료도 없고, 최소한의 관리비도 없습니다. 만드는 것도 하나님이 하셨고, 유지, 보수, 관리도 모두 하나님이 하시면서 인간은 마음껏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지역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부터 영원까지, 인간이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일들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말 그대로 남녀노소, 동서고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었을 때 죄인은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피해 숨었지만 하나님은 직접 죄인을 찾아오셨습니다.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서, 징계나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놀라운 거룩, 비난받는 거룩이 아니라 존경받는 거룩, 조롱받는 거룩이 아니라 감사를 받는 거룩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이런 하나님을 따르는 교회, 이런 하나님을 가르치는 기독교는 세상에서 놀라움의 대상, 경이로움의 대상, 존경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2. 유일하신 하나님
기독교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만 계시기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돌보셔야 하고, 모든 사람을 도와주셔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마5:45, 눅6:35). 유일하신 하나님은 절대로 배타적일 수 없고 저절로, 당연히, 필연적으로 포용적이셔야 하고, 관용적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대상은 모든 인간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일이고, 하나님이 사역하는 순간은 항상, 언제나, 범사에입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 주제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다른 것은 안 되고 딱 한 가지, 오로지 이거 한 가지라는 의미로 제한되는 것으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모두 거부하고, 어떤 것도 모두 부정하고 유일하게 한 가지만 인정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제한하고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하고 확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을 배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모든 것을 배려하는 의미입니다.
3.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은 중세 교회가 자주 사람들의 결정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말이 중요하다고, 교부들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종교 회의의 결정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제라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 것만 인정되고, 따라야 한다고 신앙의 내용을 독점했습니다. 자기들 말고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읽지도 말고, 해석하지도 말고, 아예 소지하지도 말라고 금지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말미암아 꽉 막혀있고, 통제되고 있었기에 개혁가들이 ‘오직 성경’이라고, 사람들이 덧붙이지 말고, 사람들이 금지하지 말고, 사람들이 장악하지 말고 그냥 성경으로 족하다, 성경으로 충분하다고 모든 제한과 금지와 통제를 다 풀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믿음’은 중세 교회가 종교 행위, 종교 양식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들이 정하는 시간에, 정하는 장소에 와서, 정하는 방식에 따라, 정해진 행동을 해야만 한다고 완전히 장악해서 출생부터 죽음까지 완전하게 통제했습니다. 개혁가들이 ‘그냥 하나님의 믿음이면 되. 그거 하나로 모든 것이 다 가능해. 누구라도 가능하고, 어디서도 가능하고, 어떻게도 가능하다고.’고 주장한 것입니다. 넓어진 것, 확장된 것, 개방된 것입니다. ‘오직 은혜’는 중세 교회가 아주 철저하게 자격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선과 의를 행하고, 정결을 유지하고, 특히나 공덕을 쌓은 사람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제한했고 자격의 점검과 판단도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한정했습니다. 개혁가들이 ‘너희의 수고가 없어도 되고, 너희의 선함과 의로움이 없어도 되고, 너희의 공덕이 없어도 된다. 너희의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은혜로 베풀어 주시고, 받아 주시고, 수용해 주시고, 포용해 주시고, 용납해 주시고, 품어 주신다. 그러니까 아무나 가능하고, 누구나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 예수님이 먼저
개혁가들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개혁가들이 만들어낸 이론이나 논리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원래부터 그렇게 행하고 계셨는데 사람들이 실감을 하지 못하다가 마치 새로운 것처럼, 개혁적인 것처럼 보여진 것이 복음서의 예수님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신 것보다 새롭게 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을 개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내고, 구약과 다른 하나님에 대한 내용, 구약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과 다른 종교 행위, 종교 방식, 종교 의미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유대교가 종교를 장악하고, 통제하고, 종교로서 백성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유대교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구약에서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하시니까 마치 예수님이 새로운 것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개혁적인 것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Ⅱ. 유대인에게는
1. 모든 민족이
하나님은 절대로 배타적으로 행동하신 적이 없고, 인간을 편 가르기 하시거나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사역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이 아브라함만 사랑하시겠다,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그래서 아브라함만을 위해서, 아브라함에게만 유익이 되도록 사역하시겠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선택은 샘플 또는 모델 하우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결과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26:4)입니다. 아브라함의 자녀 중 이삭을 택하였지만 하나님은 이삭만 돌보고 이스마엘을 방치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경쟁자로 삼아서 이삭이 번성하게 하고 이스마엘은 패망하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고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창대하게 하고 에서는 가난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 대상은 모든 인간, 모든 민족, 천하만민입니다.
2. 유대인에게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있을 때 이스라엘은 패망의 위기, 백성들은 멸절의 위기에 처했습니다(삼상13장).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사울이 자기가 제사를 드리고 싸우러 나가고 이 전쟁에서 사울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 없고, 역사하신 것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사울이 상황 판단을 했고, 스스로 결정해서 싸움터에 나갔고, 사울이 전력을 대해서 승리를 했습니다. 사울이 나라와 백성을 모두 구출한 것이고, 엄청난 공적을 세운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울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사울은 민족의 영웅이요, 구국의 영웅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이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요, 블레셋을 물리치고,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아말렉과 이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듣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도 동일합니다. 유다인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노력하여 유다인을 위기에서 구원하였기에 유대인에게는 영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했기에 실패를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