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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강해 10] ‘여호와의 절기’
Ⅰ. 유일하신 하나님
1. 누가 구원받는가?
종종 기독교를 오해하여 ‘사람이 너무 착한데 예수를 안 믿는 자와 사람이 너무 악한데 예수를 믿는 자 중에 누가 구원을 받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정답은 ‘둘 다 구원받는다!’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구분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모든 사람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사람의 행동을 강조하는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예수님,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함께 있던 두 행악자 중 하나는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였는데 ‘두 사람 중에 누가 구원을 받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정답은 ‘두 사람 모두 구원받는다!’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 어떤 말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은혜
‘누가 구원받는가?’에 대해 기독교가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는 무엇입니까? 이때 ‘그런 것 묻지 마, 따지지 마, 그냥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거야, 하나님 마음이야’라고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신학자가 ‘누가 구원받을지 하나님이 정하셨다. 누구는 천국으로, 누구는 지옥으로 갈지 하나님이 다 정해두셨다’며 ‘예정론’을, 막무가내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를 믿을지 안 믿을지를 미리 아셔서 그렇게 정하셨다’며 ‘예지예정론’을 주장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을 배제하고 하나님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배려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를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너는 되고, 너는 안 돼, 내가 정했어!’가 아니라, ‘너희들 모두가 자격이 없구나, 너희들에게는 방법이 없구나. 그럼 내가 해줄게, 내가 수고해서 너도 구원받고, 너도 구원받고, 모두가 구원받게 해 줄게!’라고 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기준,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두를 되게 해주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되게 해 주겠다는 결정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이 되고, 또 유일하신 하나님과도 연결이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기에 모든 인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주관하시는데, 하나님이 방치하고, 하나님이 외면하고, 하나님이 포기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유일하신 하나님은 ‘나는 신이니까 나만 경배를 받아야 한다!’는 옹졸하고 쫌생이같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유일하신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방치하고 않고,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위엄을 강조하면서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간을 협박한다면 성경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강조하고, 인간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하나님에 대한 희생과 충성을 요구한다면 성경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을 편 가르기, 갈라치기 하지 않으시기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도 인간을 편 가르기, 갈라치기 하면 안 됩니다.
Ⅱ. 여호와의 절기
1. 애굽에게 재앙을?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전쟁을 하고 있음에 혹시 ‘하나님은 어느 편입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나라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특정한 사건 즉 출애굽 사건과 에스더서의 사건과 연결 지어 당연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신다고 정당화시키는 실수를 범하면 안 됩니다. 창세기에서 족장들은 애굽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애굽은 주변 나라들에게 선한 일을 많이 했는데, 출애굽기에서는 히브리 민족의 숫자가 많아지자 새로운 바로가 위협을 느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이 이스라엘을 박해하자 하나님이 애굽에게 징계와 형벌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은 애굽이 이스라엘을 박해할 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 적어도 6~700년 전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창12장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애굽이 이스라엘을 압제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 이스라엘만 도와주셔서 이스라엘의 대적 애굽에게 열 번이나 재앙을 내렸다고 설명하면 안 됩니다. 애굽은 열 번이나 형벌을 받아놓고는 여전히 자기 땅에 살고 있고 이겼다고 하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광야에서 떠돌이 유랑생활을 40년이나 하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애굽이 이겨서 이스라엘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이 패해서 도망 나온 것 같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자고 애굽에게 재앙을 내린 사건이 절대로 아닙니다. 애굽만 이스라엘을 압제한 것이 아니라 바벨론, 바사도 압제했습니다. 하지만 출바벨론 사건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징계하셔서 바사 왕 고레스를 보내어 바벨론을 멸망시켰다고 하실 것입니다. 바사 이후에 로마가 유대를 정복하여 압제하였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사 바사나 로마에 재앙을 내리고 출바사, 출로마가 없습니다.
2. 가나안을 진멸하라고?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간 40년을 한 마디로 하면 불순종입니다. 만약 징계나 형벌을 내린다면 가나안에 내려야 합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에 내려야 합니까? 그동안 가나안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라도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약탈하기라도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압제하기라도 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기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해석입니다. 가나안에 입성할 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정작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우상이었습니다(신7:5, 12:2). 하나님은 진멸하라는 말씀과 동시에 어느 것도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하여 승리를 하면 그 보상으로 전리품을 챙깁니다. 수고하였기에, 애썼기에 상응하는 몫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에 들어와 정착하기까지 실제로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첫 번째 여리고성 전투에서 아간이 전리품을 챙긴 것부터 지적하셨습니다. 가나안 입성은 이스라엘의 수고, 이스라엘의 공로, 이스라엘의 업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리품을 챙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절기
유다인들이 하만의 민족을 죽이고 멸하고 도륙한 뒤에 기뻐하며 잔치를 열고 그 날을 기념하여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었습니다(에9:17~33).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는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얼마나 극적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등에 주목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 하나님이 행하신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해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계시 사건들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절기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르쳐 주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출12:17, 25), 요단강을 건넌 후 돌을 쌓은 표징도 ‘여호와께서 인도하셨다’(수4:5)입니다. 대상은 ‘땅의 모든 백성’(수4:24)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