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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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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6-02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ax6YYR_x9Ak

 

[느헤미야 강해 15] ‘저주로 맹세하기를

 

 

. 헛수고

 

 

1. 헛수고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열심 또는 성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매우 열심히, 대단히 성실하게 사는데도 누군가에게 덕담이나 권면을 하라고 하면 더 열심히 하라, 더 부지런하라, 더 수고하라고 합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상대방을 다그치며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가장 기본적인 마음, 가장 본질적인 자세,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태도가 바로 인간을 유익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권면하는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헛수고 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을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제발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 제발 헛수고를 하지 말라, 제발 무익한 일에 힘쓰지 말라, 제발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었고, 인간이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최상, 최고, 최적의 창조를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따로 더 수고하고, 더 노력하고, 더 개선하고, 더 열심을 내고, 더 희생하고, 더 헌신해야 하는 이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죄인들의 방식

인간과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최초로 하신 말씀의 성격이 복을 주시며’(1:28)입니다.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는데 명령하시겠습니까? 수단이나 조건을 제시하겠습니까? 위협하고 협박하겠습니까? 고생해라, 수고해라, 힘써보라고 다그치고 윽박지르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성경에 창조에 관한 내용은 창1~2장에 불과하고, 인간이 죄인이 되고 죄인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가득합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 사람들이 하는 생각, , 행동, 태도, 수단, 방법, 권면, 생활 등은 모두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행동들, 평상시 서로 주고받는 덕담들, 이렇게 하면 된다고 제안되는 수단과 방법들 모두가 죄인들의 원리요, 죄인들의 방식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도 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애굽 사람들도 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가나안 사람들도 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지역이 다르든 시대가 다르든 민족이 다르든 모든 죄인들이 비록 자기들의 신의 이름이 다르고, 신의 형상이 다를지라도 신을 섬기는 방식과 태도는 똑같습니다. 모두가 신의 형상을 만들고, 신전을 짓고, 신에게 제물을 드리고, 신에게 절을 합니다. 죄인에게는 종교적 창의성이 없습니다.

 

 

3. 거룩하신 하나님

성경에서 죄인들의 뻔한 사고와 행동들과 완벽하게 다른 것, 구별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마음, 기준, 원리, 가치, 개념, 방식, 능력 등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르지 않다면 하나님과 죄, 하나님과 사단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만약 하나님과 죄, 하나님과 사단이 완전히 다르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와 방식,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종교와 관련된 종교 행위, 종교 방식, 종교 활동, 종교 규례 등이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차이점 하나,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섬김과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통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이 일하고 수고하고 헌신하고 충성해서 인간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사역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종교적 수단과 방식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 다른 표현으로 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 인간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셔서 인간이 반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토라, 율법은 명령, , 규정이 아니라, 인간에게 상벌을 주는 제도나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원리입니다.

. 저주로 맹세하기를

 

 

1. 저주로 맹세하기를

8장에서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뜻을 풀어 주었더니 백성들이 울었습니다. 9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10장에는 이 퍼포먼스의 클라이막스, 다짐과 결단, 의지와 각오의 표현이 나옵니다. 감동을 받기 전에, 본받으려고 하기 전에, 과연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원리에 맞는가? 다른 표현으로 혹시 헛수고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저주로 맹세하기를했습니다(10:29). 기독교와 가장 거리가 먼 것, 기독교에서 정말 아무 의미없는 것, 더 나아가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원리와 방식을 완벽하게 왜곡하는 행동이 벌어졌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맹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입니다. 인간이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고, 보장할 수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맹세가 아무 의미가 없고, 그저 허풍에 불과할 뿐입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인간이 일을 해서 무엇을 이루어내는 종교가 아니고, 모든 인간이 힘을 합쳐서 어떤 것을 성취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맹세를 요구한 적이 없고, 애초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시험하고 점검한 적, 사람의 의지, 각오, 결심 등을 알아본 적도 없습니다. 성경의 언약, 맹세는 모두 하나님이 인간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맹세를 넘어 저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와 전혀 다른 행동, 단순한 오해를 넘어서, 약간의 왜곡을 넘어서서, 실수나 이런 차원을 넘어서서 작정하고 하나님의 길을 어긋나겠다는 아주 고약하고 악의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원리에, 하나님의 방식에, 여호와의 신앙에 전혀 없는,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았던 하나님과는 무관한, 지독한 죄적인 행동에 불과합니다.

 

 

2. 계명, 규례, 율례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에서 종교적 열심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이나 교회 일이라면 열정적으로 덤벼드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 심정, 윈리, 기준, 가치, 개념, 방식, 능력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계명으로, 규례로, 율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경에 쓰여 진 대로, 성경에 정해 진 대로 하자는 주장입니다. 구약 내내 확인할 수 있듯이, 그 동안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율법을 거의 준행하지 않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법으로 주고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고 심판하여 엄중한 형벌을 내린다고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율법을 거의 준행하지 않았는데 특별히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고 여길만한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이 율법에 대해 무지하니까 오해를 하지 않은 것이고, 왜곡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냥 무지해서, 그냥 무시하고,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바사에 의해 여호와의 법을 연구한 사람들, 바사의 기준에서, 바사의 인식에서, 바사의 개념에서, 바사의 패턴으로, 바사의 관점으로, 바사의 방식대로 여호와의 법을 연구하고 배운 사람이 와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법을 가르치고 여호와의 법을 준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여호와 신앙의 회복입니까? 이 내용을 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와 기준을 알지 못하면 이 내용은 순식간에 그냥 인간에게 강요되는 법이 되고, 인간의 삶과 행동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계명과 규례와 율례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와 기준과 가치와 방식과 능력을 아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와 기준과 가치와 방식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성도는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의 열매 즉 사랑과 온유와 양선과 인내와 충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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