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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6-09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RrOMH04caAk

 

[느헤미야 강해 16] ‘즐거워하였으니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1. 부모와 자녀, 신과 백성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구약에서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많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4:22),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거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32:6)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자, 노예에 불과해서 하나님의 명예에 도움이 안 되어도 친히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 또는 신과 백성으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15:41),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6)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갖은 수고와 노력을 한 것이 아니고, 준비와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간절하셨고, 하나님이 헌신하셨습니다. 죄인인 주제에, 애굽의 노예인 주제에, 막노동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2. 남편과 아내, 신랑과 신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사역하는 시기 전후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묘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55:5),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19)와 같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프로포즈하고, 하나님이 먼저 다짐하고,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는 우리의 남편이라고 선언하는 시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겠다고 할 때 우리의 수준, 우리의 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9장의 이스라엘 역사 회고를 통해서 확인되었듯이 이스라엘은 구약 내내 하나님에게 못된 짓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수준, 상태, 한계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계신 것이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입니다. 죄인의 정체, 죄인의 한계를 아시기에 죄인을 징계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네게 장가들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이 형성하셨고,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유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최악일 때, 즉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유다가 망했을 때에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다짐들이 렘33:20~21, 31:35, 37절 등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들은 분명히 지키고 실행하신다는 선포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어떤 행동을 했을지라도 버림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스인이 피부를 스스로 바꿀 수 없고, 표범이 반점을 스스로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은 달라질 수 없기에 하나님이 달라지게 하셔야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1;19)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하신다고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스인의 한계, 표범의 한계에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요, 구약에 속한 사람들이요, 악에 익숙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새 영을 주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성경의 어떤 인물도 예외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모범적인 사람을 제시하면서 본받자고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신다고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 즐거워하였으니

 

 

1.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실 때 가장 많이 사용하신 표현이 나는 거룩한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다르다는 것, 하나님은 죄와 다르고, 우상과 다르고, 타종교와 다르고, 죄인들의 기준, 개념, 가치, 원리,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개할 때 예를 들만한 사례, 견주어 설명할 사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비교나 비유가 불가능한 유일하고 독특한 분, 죄인들이 들어본 적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고,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세상에 힘센 자, 강한 자, 큰 자, 높은 자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 가장 강하고, 크고, 높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가장 큰 자로서 대부분의 크고 강한 자가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크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다르다고 말해야 합니다.

 

 

2. 크고, 높고, 강한 신

유다가 멸망할 때에 우상과 관련된 여러 신전들, 산당들, 제단들이 무너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전만 남아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패망할 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성전 기물이 바벨론의 신전으로 옮겨졌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무너졌는데, 바벨론의 신전은 멀쩡합니다. 70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었는데 예전의 성전보다 작고, 바벨론이나 바사의 신전보다 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약 내내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들은 신이 형상이 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기에 은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확신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죄인답게, 죄인에게 어울리게, 죄인의 기준과 인식과 원리에 딱 맞게 행동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고, 세고, 강한 신을 섬긴 것입니다. 광야에서 보니 애굽의 신이 더 강한 것 같고, 가나안에서 보니 이방 나라들의 신이 더 센 것 같고, 바벨론과 바사를 보니 크고 강성한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신이 더 크고 높고 세고 강한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크고, 세고, 높고, 강한 사람이나 신을 섬기는 것은 죄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물론 죄의 기준, 죄의 관점으로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굴욕

죄인들의 눈에 하나님이 크고, 높고, 세고, 강한 분으로 인식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일하는 원리와 방식이 강자의 원리, 강자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연히 강하고 세고 크고 높으신 분이지만 그것을 강조하지 않고 나는 거룩하다나는 죄와 다르다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유다가 망할 때에 유다의 온갖 우산 신전들과 산당들과 제단들이 다 무너졌고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 여호와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신전들 대신에 성전만 남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산당들 대신에 성전만 가장 우뚝 서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아예 죄인들의 사고방식, 죄인들의 종교 개념, 죄인들의 신에 대한 인식 자체를 완전히, 통째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신은 신전 안에 머물면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신은 인간에게서 무엇을 받으면서,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조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성전이 파괴되고 기물이 옮겨지는 수모와 굴욕을 당하면서도 죄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도록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4. 즐거워하였으니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설명하면서 이것을 준행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백성들을 기쁘게 해 주십니다. 그래야 인간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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