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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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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3-01-15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3WflZ2cNC-A


 

 [다니엘 강해 1]  ‘신들의 신전에’

 

Ⅰ. 유다 왕 여호야김 

 

1. 각권의 명칭

  성경 66권의 제목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이 아니고 나중에 사람들이 정했습니다. 왜 그 명칭으로 정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명칭을 정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일정한 틀이나 일관성이 없습니다. 각권의 명칭을 보고 내용을 추정하시면 내용 파악에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장소가 등장한다고 해서 중요한 지역일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가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사람의 이름이 소개되었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일 것으로 여기신다면 사람 잘못보실 확률이 높습니다. 각권의 내용과 연관된 제목을 가진 것(창, 출, 레 등), 장소와 연관된 제목을 가진 것(롬, 고전후, 갈, 엡 등), 사람의 이름과 연관된 것(수, 삼상하, 에스라 등)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도 제목에 들지 않았으니 제목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2. 유다 왕 여호야김

  강해를 하게 될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의 현재 배열되어 있는 위치가 에스라, 느헤미야가 앞에 있고, 그 다음에 에스더, 다니엘이 맨 끝에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읽어보면 내용상 순서,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는 조금 다릅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생활한 다니엘의 이야기가 맨 처음이고, 포로에서 귀환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겪었던 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에스라 1~6장, 아마도 이스라엘이나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도 아니고 새로운 정복자 페르사아 지역에서 생활하던 에스더 이야기가 그 다음이고, 시간이 흐르고 장소도 바뀌어 다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에스라 6~10장까지와 느헤미야에 나옵니다. 이번 강해는 시간적 순서를 따라 본문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이번 강해에는 유다의 왕들, 바벨론의 왕들, 바사의 왕들도 등장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이 초대 왕이 되었고, 이후에 아들 이스보셋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다고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다윗에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지만 솔로몬이 죽자 나라가 분열되어 남 유다에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욍이 된 후 총 20명의 왕이 있었고, 북 이스라엘에서는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왕이 된 후 총 19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18번찌 왕이요, ‘다스린지 삼 년이 되는 해’는 주전 607년 경입니다. 

 

3. 끌려간 바벨론에서, 돌아온 예루살렘에서 

  네 권의 책에서 다루는 시대, 시기는 꽤나 길고 이 시대에 관련된 성경의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삼년인 주전 607년경부터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주전 445년경까지 대략 150년 정도의 기간이 됩니다. 유다가 패망하는 이야기는 열왕기하 끝, 역대하 끝에도 나오고, 그 시기에 예레미야, 에스겔, 하박국,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을 했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을 했습니다. 구약 중에 대략 12권 정도가 연관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는 모두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제국이 된 바사에서 발생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지역으로 포로로 갔다가 돌아온 예루살렘, 바사에 의해 유대 지역의 총독으로 파견되어 오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부임한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크게 세 지역인데, 편의상 예루살렘과 예루살렘을 벗어난 지역으로 구분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제목이 ‘끌려간 바벨론에서, 돌아온 예루살렘에서’입니다. 

 

Ⅱ. 신들의 신전에 

 

1. 신들의 신전에 

  우리 하나님이 이방 신들과 다른 것은 인간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도 않고, 인간에게 굴욕이나 모욕을 주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에워쌌고,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종노릇을 하게 되고 결국 유다 백성의 일부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도 바벨론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가 섬기는 신이 있었고, 나라들 간의 전쟁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전쟁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면 패한 나라의 신을 자기 나라의 신전으로 가져가 자기 신의 아래 두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것입니다. 승자가 누릴 당연한 권리라고 간주한 것입니다. 삼상 4, 5장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한 후 승리한 블레셋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아스돗에 이르러 다곤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른 신들, 다른 종교들이 하는 방식입니다.

 

2. 신상과 신전이 없는 하나님

  하나님이 다른 신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살피기 전에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랐는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 신들은 모두 신상이 있었고 신상을 모셔두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게으르고 나태내서 신상을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지 못하게 해서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신상을 둘 신전도 없었습니다. 신상이 없으니까 백성들은 신에게 절을 할 수도 없었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절하지 말라’고 금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신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의 관계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하나님은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의 관계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의 신들도 관대한 경우, 인간을 존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 자기를 섬기는 인간만 대상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승리한 나라의 백성, 승리한 신의 백성들은 한껏 승전가를 울리고, 마음껏 전리품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신을 섬긴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대신 패한 나라의 백성들은 온갖 핍박을 받고, 인격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약탈을 당하고, 종교적으로 굴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은 섬기는 자에게는 관대한 자일 수 있지만 섬기지 않는 자에게는 잔인한 자일뿐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명분으로 행해진 악이 인간에게 가장 잔혹했다는 것을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애굽과의 전쟁, 애굽 신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은 애굽의 신상들을 하나씩 끌어내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신전에 들여놓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하지 않아도 되지만 애굽의 백성들은 절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복자의 위세, 승리자의 탐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듯 애굽의 백성들도 대해주셨습니다. 

 

3.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전쟁의 이야기가 매우, 아주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 때에도, 광야를 이동할 때에도, 가나안에 진입할 때에도, 사사 시대에도, 열왕기 시대에도 수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하나님은 패한 나라의 신상을 끌고 온 적이 없습니다. 그 신상들 앞에서 한껏 폼을 잡으신 적도 없습니다. 또 패한 나라의 백성들을 종삼은 적이 없고, 이제부터는 무조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든 적국의 백성이든 사람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을 힘들게 하고 곤고하게 만드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삼상 5장에서 블레셋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다곤의 신전에 두었는데 다음날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쓰러져 있었고, 그 이후부터 블레셋에 독한 종기가 발생하자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블레셋 백성의 수효대로 독한 종기의 형상과 쥐의 형상을 금으로 만들어 마치 진상품처럼 이스라엘에 바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뺏어 오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모양새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불편하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버리고 떠나는 사람까지도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줄거워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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