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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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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3-01-29

 [다니엘 강해 3]  ‘주시고, 주셨으니’

 

Ⅰ. 성경의 초점

 

1. 신상 가져가기, 모셔오기

  유다에 총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열왕기나 역대기에 믿음이 있는 것처럼 소개된 왕이 13번째 히스기야, 16번째 요시야입니다. 두 왕의 시대에 종교 개혁 즉 이방 종교와 혼합되었던 것을 정리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도 북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였고 또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왕하18:15~16). 히스기야가 뜻을 정하여 다른 것을 다 주어도 여호와의 성전만큼은 손댈 수 없다고 버틴 것이 아닙니다. 니라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종교 개혁을 했다는 사실에서 당시의 종교 실상을 파악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온갖 잡신의 형상과 기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왕하23:4~20). 힘이 약하여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칩니다. 도움을 청할 때 그냥 말로 부탁하는 것이 아니죠. 성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나라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항을 하지 못하고 협상을 위해 조공을 바치는 것도 단순히 금은을 바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나라의 신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했다고 하지만 이미 유다 나라가 힘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유다에 다시 이방의 종교가 들어왔고, 여호와의 성전에 또 다시 우상의 형상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하나님의 전 그릇을 자기 신들의 신전으로 가져갔습니다. 져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을 가져다 두기도 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직후부터 유다가 스스로 이방의 신상, 우상의 신상을 모셔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승리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신상을 가져오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패하였을 경우 여호와의 궤가 끌려가기도 했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 얼마가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고, 당장에 여호와의 궤를 찾아오고, 성전의 그릇을 옮겨오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 창조자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과 경쟁하지도 않고, 우상을 이겼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패했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우상을 이긴다는 개념, 패한다는 개념자체가 없습니다. 

 

2. 성경의 초점 

  구약 내내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은 모든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번성하게 하는 것입니까? 히브리 민족을 창대하게 하는 것입니까? 이방 나라들을 모두 물리치는 것입니까? 우상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자시오,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온 인류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 애굽 사람, 블레셋 사람, 앗수르 사람, 바벨론 사람, 바사 사람, 로마 사람도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독교는, 성경은 인간에 대해 딱 한 가지를 지적하는 것, 문제 삼는 것, 안타까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베풀어주신 복락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민족 사람이냐를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 어느 종교를 믿고 있느냐, 어느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에 대해 전혀 갈라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으로든지 편 가르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기독교가 말하는 죄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도 않고,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단지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제도와 방식 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똑같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제국의 노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단1:4~5절입니다. 애굽, 바벨론, 바사, 로마 등 대부분의 나라가 운영한 제도입니다. 자격이 매우 엄격하고, 교육의 내용이 다양하고, 목적이 왕 앞에 서서 나라를 통치, 관리, 운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하여 왕이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3. 여호와의 계시

  성경에 느부갓네살 학습법이 소개되었다고 해서 하나님도 이런 교육을 하신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삶에 대해 한 가지, 죄가 문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축복하신 삶에서 딱 한 가지, 인간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서,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문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해결 방식도 완전히, 정말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딱 한 가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즉 계시사역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사역은 세상의 교육방법론과 내용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첫 번째, 기독교에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재를 발굴하고, 찾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선발할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차원에서 동일한 수준, 동등한 차원입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니 선발이라는 개념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대상은 모든 죄인입니다. 두 번째, 기독교의 교육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죄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의 열매는 입신양명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우고 믿음으로 사는 것의 열매는 부귀영화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믿음은 행복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결실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Ⅱ. 주시고, 주셨으니

 

1.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말한 것은 죽기 딱 좋은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온 자인데 포로답게 순종적이지 않고 포로주제에 기가 죽지 않고 싶었는지 감히 바벨론 왕의 명을 어기겠다고 나댑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원래 10절과 같은 태도를 보일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면 바벨론에서 환관장의 직위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살벌한 중앙 정치판에서 이런 태도, 이런 자세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환관장이 두려움을 넘어서 다니엘의 편을 들어주는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도 명분도 없습니다. 결국 아스부나스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의 열매입니다. 환관장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자(10절) 다니엘이 환관장 대신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감독하라고 사람과 딜을 하는데(11~13절) 효과가 있습니다(14절). 이 사람 또한 원래 순둥이가 아니고, 바벨론의 관료로서 유다의 포로 청년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모범공무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의 열매입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 것도(15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의 열매입니다. 

 

2. 주시고, 주셨으니 

  다니엘서 1장은 다니엘의 용기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17절)입니다. ‘다니엘은 원래 잘난 놈이더라’, ‘다니엘은 원래 공부에 소질이 있었더라’, ‘다니엘은 머리도 좋았지만 노력형 천재였다’, ‘다니엘은 영재 교육의 모범적 사례였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기에 처한 다니엘에게 거듭, 거듭, 도움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친히 다니엘을 위해 일해 주셨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니엘처럼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와 여러분을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기와 시력과 역경가운데 함께 하시며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시며, 인간을 위해 친히 일하시는 좋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바르게 알아가시고, 하나님의 복락을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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