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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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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3-07-16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MkzIHtRihJI

 

[에스라 강해 8] ‘중단되니라

 

 

.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1. 징계나 형벌이 아니다

유다가 패망을 했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이 징계를 하거나 형벌을 내린 것도 아닙니다. 만약 유다에 대한 징계라면 유다만 당하고, 하나님의 권위는 유지가 되고, 하나님의 위신은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가 망하든 말든,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존심을 굳게 지킨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되었고, 거룩하다는 성전의 기물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져서 그들의 신들의 신전에, 다른 우상들 밑에 놓여 졌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패배한 것처럼, 하나님이 모욕과 멸시를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일은 졸지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징계나 형벌은 졸지에 당할 때 훨씬 치명적인데 하나님은 사전에 예언을 해서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포로 생활 70년이 징계의 기간이라면 그 기간 동안 회복을 위해 하는 일,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 제시되거나, 귀환할 수 있도록 유다 백성들이 반성을 하거나 벌금을 내거나 회개를 하거나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유다의 패망, 포로가 하나님의 징계나 형벌이 결코 아닙니다.

 

 

2.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자들에 대해서는 사로잡혔단 자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자들이라고 합니다. 사로잡히지 않고, 끌려가지 않고 그냥 유다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별도의 명칭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유다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합니다. ‘대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사전적으로 , 원수’, 또는 고통, 괴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대략 200년 이상 자자손손, 이미 2세대, 3세대 째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패망한 것이 이 사람들 때문이 아니고, 이 사람들이 첩자를 한 것도 아니고, 바벨론이 쳐들어 올 때 합세해서 반역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유다로 귀환할 때 막아선 것도 아니고, 바벨론의 신전에 드나들면서 바벨론 종교에 물든 사람들이 감히 여호와의 성전을 짓겠다고 나서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결사적으로 저항한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들도 함께 건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3. 환난당한 자

대적은 실상 환난당한 자’, ‘고난당한 자이요 본문에는 그 땅 백성’(4:4)으로 나옵니다. 북왕국을 정복한 앗수르의 정책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 포로 70년 정도가 아니라 끌려온지 200년이 넘은 사람들,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계속 이곳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삶은 환난, 고난, 고통, 곤고함이었을 것입니다. 사로잡혔던 자들이 돌아와 거주할 때(2:1, 70, 3:1) 고스란히 자기 집으로, 아주 편안하게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땅 백성들이’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4:20)합니다. 당시 북 왕국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성전도 없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고향 땅에 살 때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섬겨본 적도 없는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유는 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성전 건축공사가 시작될 때 함께 짓겠다고 합니다. 애써 힘든 노동과 희생을 자처하는 이유도 총독과 제사장 일행에게 협력하여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기보다는 유다와 베냐민 지역에 살고 있는 환난당한 자, 고통당한 자들입니다.

 

 

. 중단되니라

1. 나그네를 환대하라

본문에 그 땅 백성들의 등장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자들은 방금 전까지 바벨론에 끌려가서 생활하던 자들, 즉 그들도 이주민 즉 바벨론에서 환난당한 자, 고난당한 자이었기 때문입니다. 갈 때는 포로로 끌려갔지만 올 때는 바사의 임명을 받아 파견을 나온 유대 총독과 대제사장으로, 유대의 책임자요, 지배자요, 통치자요, 관리자의 신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때 자기들 앞에, 얼마 전까지 자기들의 모습이었던 사람들, 아니 자기들 보다 더 처절한 생활을 200년 이상 해 오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에게 기대하는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셨습니까? 애굽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다가 출애굽하였을 때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22:21, 23:9, 10:19)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들을 정복한 나라, 자기들을 지배하던 바사의 왕 고레스의 자비로운 조서에 의해 나그네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에 돌아올 수 있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게 불과 2년 전인데, 자기들 앞에 자기들 보다 더 험악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있고, 자신들이 받은 환대보다 아주 조그마한 선처를 기대하며 함께 성전을 짓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대하고 바라시는 것입니까?

 

 

2. 거룩하라

혹시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 땅 백성들을 거부한 것은 나그네 환대 같은 윤리적인 측면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성을 유지하려는 종교적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거룩, 성경이 강조하는 거룩,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거룩은 구별, 다름인데, 국가적 구별, 민족적 구별, 인종적 구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사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것은 다른 모든 열방은 포기하고 오직 이스라엘만 책임진다는 구별, 배타적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사람’(26:5, 16:3)이었기에 이스라엘은 태생적으로 이방에 대하여 배타적일 수 없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의 사역 대상,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의 대상은 언제나 모든 족속, 모든 민족, 모든 열방이었습니다(12:3). 요셉의 부인은 애굽 사람, 모세의 부인은 미디안 사람, 보아스의 부인은 모압 사람, 솔로몬의 부인은 애굽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이들의 출신, 지역, 민족을 문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에스라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려고 계시 사역을 행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유다와 바사는 차이가 없고, 하나님 앞에 유다 백성들과 이방인 고레스는 차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나 앗수르 시대에 이주당한 그 땅 백성들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이 이방인인 바사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시며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패망하여 포로 생활 70년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정결하고 의롭고 성전을 지을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무슨 근거로 자신들은 성전을 짓고, 그 땅 백성들은 안 된다고 제외시키는 것입니까?

 

 

3. 하나님이 하신 일

 

 

백성들이 돌아와 이년이 지나자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해 졌느냐고, 정결해 졌느냐고, 의로와 졌느냐고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을 지을 자격이 있냐고 테스트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냐고, 하나님을 아느냐고, 앞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냐고 점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격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격이 없어도, 부족해도, 거룩하지 않아도 다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귀환자들은 그 땅 벡상들을 거부하였습니다(4:3). 그 땅 백성들은 귀환자들의 작업을 방해한 것이지만(4:4), 사로잡혔던 자들의 결정과 조치는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중단한 것입니다(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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