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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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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3-09-2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FmJ0vKxYbS4

 

[에스더 강해 7] ‘대적과 원수

 

 

. 죽으면 죽으리라

 

 

1. 아리따운 여인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단 한마디도,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도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와스디라는 왕후가 있었는데 왕과의 갈등을 겪은 후에 쫓겨났고, 그 자리에 대신 에스더가 들어가서 새로운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이 하셨습니까? 와스디가 쫓겨나는 과정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과정에 하나님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없고, 하나님이 은밀하게 간섭하셨다는 힌트도 없습니다. 그냥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처녀를 끌어 모았고, 그중에 에스더가 제일 예뻐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4장에서는 에스더 스스로가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것이 이미 삼십 일이라고 고백하고, 왕에게 나아가서 간절히 구하라는 모르드개의 말을 쉽게 따르지 못하면서 망설입니다. 모르드개가 협박을 하자 용기를 내는 것이 단순히 마음을 굳게 먹는 정도가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입니다. 그렇게 왕에게 나아갔더니 왕이 금 규를 내밀어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본문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직설적으로 왕이 에스더를 본즉 사랑스러우므로입니다. 삼십일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사랑스러웠다고 합니다. 최소한 출애굽기에서처럼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감동시키더라는 표현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옵니다.

 

 

2. 죽으면 죽으리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통치하고 있을 때,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고 있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포위당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니 성 안에 식량이 떨어졌고, 급기야 여인들이 오늘은 네 아들을 내 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고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왕하 7).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성읍으로 들어가도 굶어죽고, 여기 있어도 굶어죽으니 차라리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아람 진영으로 갔습니다.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고, 나병환자들도 죽이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도 이 일로 유다 민족을 살렸고, 나병환자들도 이 일로 이스라엘 나라를 구했습니다. 에스더는 히브리어로 아바드티 아바드티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라고 했을 뿐, 죽음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에미투누 바마테누’, 죽음이라는 단어를 직접 두 번씩이나 반복했으니까 말 그대로 죽이면 죽을 것이라입니다. 에스더는 한 번 시도를 해 보겠다는 의미이고, 나병환자들은 목숨을 걸겠다는 의미였습니다.

 

 

3. 에스더서의 이해

에스더서는 단순히 에스더서만 가지고, 에스더서의 구절에만 근거해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하나님의 사역이 언급되지 않는다고 성경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시대에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를 확인하면서, 에스더서를 왜 성경에 넣어 놓았는지,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이 확인시켜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모르드개의 담대함, 에스더의 목숨 건 신앙’, 이런 식으로 설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이라고 강조하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유리하고 애굽, 바벨론, 바사에게는 불리하게 설명하면 안 됩니다. 민족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모세와 아론이라는 위대한 영도자가 있어서 출애굽이 가능했고, 백성들이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유다 백성이 멸절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라는 투철한 신앙인이 있어 유다 백성은 살아남고 대신 원수와 원수의 민족은 멸절되었다고 설명하면 안 됩니다.

 

 

. 대적과 원수

 

 

1. 선택, 샘플, 모델하우스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는 지 한 대상을 정해 예를 들어준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이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유대교는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내용적으로 샘플이요 모델하우스같은 것입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과 사역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서의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들 속에 유다의 멸망, 바벨론 포로, 귀환, 성전 재건, 이방에서의 생활 등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단지 그런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점괘를 찍어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사역이 옳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모든 문제의 근본은 죄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죄의 기준과 마음과 가치와 원리로 살아가는 모습, 그래서 서로 지혜로운 것 같으니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죄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신약에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다양한 사역을 행하고 계십니다. 바다고 걸으시고, 오병이어도 행하시고, 병자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으시고, 설교도 행하십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본질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을 하셔도 십자가 사역을 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형성이 안 되고, 예수님의 사역은 그냥 구제 사역이요, 봉사 사역이 되어버릴 뿐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서 , 죄인들은 정말 악랄하구나, 이렇게 지독하구나, 이렇게 치사하구나, 이렇게 교활하구나, 이렇게 잔인하구나!’를 목격하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 그리스도가 오셔야 되는구나, 하나님의 마음이어야 하는구나!’를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2. 대적과 원수

 

 

에스더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왕이 기회를 준다고 해서 절대로 조급하지 않고, 자기가 요청하는 내용이 왕이 친애하는 하만과 관련이 있는 일이기에 아주 신중하게, 왕의 마음을 가능한 즐겁게 한 후에 말합니다. 그래서 왕이 에스더에게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는 말을 자그마치 세 번이나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루에 세 번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갔을 때 한 번, 에스더가 처음 잔치를 베풀었을 때 또 한 번, 에스더가 두 번째 잔치를 베풀었을 때 또 한 번입니다. 에스더가 세 번을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세 번이나 간청을 하게 만들었으니 에스더가 정말 지혜로웠습니다. 게다가 에스더가 자기 입으로 저 하만이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자기와 민족이 위험에 처했고, 왕에게 손해가 난다고 표현을 합니다. 왕을 존중하고, 왕권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마침내 대적과 원수는 이 하만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바사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만든 대적과 원수는 악한 하만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대적과 원수는 하만이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대적과 원수를 로마 총독 빌라도라고 하셨습니까? 더 나아가 유대 나라의 대적과 원수는 압제하는 나라 로마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서 빌라도를 물리치고, 로마를 무너뜨리면 유다는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적과 원수는 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면한 문제들이 빨리 해결되기를 구하면서, 죄를 이기어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한 삶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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