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Extra Form
예배 날짜 2024-01-28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I3A2zh6-frQ

 

[에스라 강해 22] ‘사로잡혔던 자들

 

 

. 거룩하신 하나님

 

 

1. 유일한 모범이신 그리스도

기독교에는 모델이 되는 사람, 또는 모범적인 인간, 본받을 만한 인물, 신앙적 위인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 상을 받았는가가 핵심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 복을 받았는가가 강조점이 아니고, 그들이 얼마나 수고를 했고, 열심을 다했고, 헌신과 충성과 희생을 했는가에 주목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어떻게 해서, 수고와 열심과 헌신과 희생과 충성을 해서 하나님께 받았다면 그것은 상일뿐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싶으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고 싶으면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 여호와 신앙과 관련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유일한 사례, 유일한 모범은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죄인들도 수고나 열정이나 헌신을 보여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 예수의 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마음, 기준, 가치, 원리, 방식, 능력을 보여주셨으니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모범, 유일한 모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2. 하나님에 대한 거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없는 개념을 말씀하시고, 죄인들이 알지 못하는 원리를 사용하시고, 죄인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을 하셨기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매우 난감해 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반응 중의 첫 번째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가치, 원리,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이스라엘도 보았고, 애굽도 보았는데 반응이 똑같았습니다. 바벨론의 왕들도 하나님에 대해 수려한 말로 칭송을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적을 보여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구약이고 복음서입니다. 구약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신, 지속적으로 계시 사역을 행하신 약간의 열매입니다. 그것도 불과 몇 사람뿐이고, 아주 잠깐 뿐 구약의 인물 중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없고, 끝까지 하나님에게 신실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성을 다해 계시적 은혜 사역을 베풀어주자 잠깐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가 결국에는 다시 죄인의 모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 사로잡혔던 사람들

 

 

1. 하나님에 대한 변질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이 하나님을 왜곡, 변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적응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자신들에게 맞추고, 하나님을 자기들 방식으로 대하고, 하나님을 자기들의 기준, 자기들의 원리, 자기들의 패턴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로 인간이 변화되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수고로 하나님을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구약에서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장면, 또는 세 가지 유형, 또는 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장면이 출애굽을 한 후에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라 이 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고민하고 생각해낸 방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동행하고 있는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라 형상이 없으니까 자기들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기에 자기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을 변형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해 낸 신이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니 우선 금을 바친 것이요, 그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바쳤고, 종교적 행위로서 춤을 추었으니 대단한 헌신과 열정을 쏟은 것입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여호와를 위한다고, 여호와를 섬긴다고, 지극정성으로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하는 일들입니다. 비난받아야 할 종교적 왜곡이 열정으로 칭송받으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두 번째 장면이 다윗이 성전을 지은 것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예우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장 크고 세고 강하고 높은 신이니까 내 집이 가장 화려하고 웅장해야 한다, 나에게 걸 맞는 예우를 갖추어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큰 집에 살면 큰 신이고, 작은 집에 살면 작은 신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또는 강한 신은 크고 웅장한 집에 살아야 하고, 약한 신은 작고 옹색한 집에 살아야 한다는 개념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죄인들의 기준, 죄인들의 개념, 죄인들의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다윗의 논리를 따르자면, 자기는 이미 왕이고, 크고 번성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군주인데, 찌질한 하나님을 초빙해서 자기가 집도 지어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명예도 준 것, 다윗 덕분에 하나님이 그나마 신다운 모습을 갖춘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 대신,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자랑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신앙 태도입니다.

 

 

2. 하나님에 대한 왜곡

세 번째 장면이 바로 에스라서 나오는 것으로, 에스라는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자세, 태도 즉 하나님의 사역 원리를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로서 인간을 지배할 권력이 있고, 인간에게 명령하고 강요할 힘도 있고,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징계와 형벌을 내릴 능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으셨고, 인간을 압제하지 않으셨고, 어떤 것도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몰아붙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두려움을 느낄만한 말과 행동, 인간이 불안과 공포를 당할만한 말과 행동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권력자 행세를 하시지 않았고, 하나님의 법이나 명령으로 인간을 꼼짝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왕에게도 교만할 수 없도록 은금을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병거를 많이 두지 말게 하셨습니다(17). 여호와 신앙의 종교 종사자에게 어떤 권한도 부여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 신앙의 대표적 인물, 직분이 대제사장인데, 대제사장이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대제사장이 종교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신분으로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대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한 입법권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율법에 대한 집행권이나 심판권을 주신 적도 없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하나의 특권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백성들과 구별된 추가 배당을 주신 것도 없습니다. 바사의 관료로서 귀국한 에스라는 9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편집해서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은 큰 죄이고, 이 상태로 계속 있으면 하나님이 멸하시고,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실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이방 아내들과 그들 사이에서 난 자식들을 모두 내 쫓으라고 강요합니다. 종교가 권력이 되어서 백성들을 압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력의 근거로 삼아 백성들을 윽박지릅니다. 여호와 신앙에서는 하나님이 종교 종사자를 권력자로 세워주지 않아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는 이런 모습이 없었는데 바사가 유대를 지배하면서, 에스라가 바사의 파견으로 유대 땅에 들어오면서, 정치권력과 동시에 종교 권력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사로잡혔던 자들

 

 

에스라서에 등장하는 그룹은 전체 이스라엘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집단입니다. 포로가 귀환한 때부터 계속하여 사로잡혔던 자들로 구별되어 등장합니다. 에스라서는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서 백성들이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구약 내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더니 결국 하나님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하나님의 방식을 죄의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종교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특정 집단이 종교적 권력을 독점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시도,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도 변형시키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도 서슴치 않는 패역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변질된 여호와 종교, 왜곡된 여호와 신앙이 복음서에서 유대교로 등장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배경삼아 권력을 독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수단삼아 백성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종교 카르텔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예배 날짜 조회 수
52 느헤미야 강해 10 / 뛰어난 자라 / 느헤미야 7:1-73 2024-04-21 2
51 느헤미야 강해 9 / 크게 낙담하였으니 / 느헤미야 6:1-19 2024-04-14 7
50 느헤미야 강해 8 / 털어 버리시기를 / 느헤미야 5:12-19 2024-04-07 6
49 느헤미야 강해 7 /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 느헤미야 5:1-11 2024-03-31 6
48 느헤미야 강해 6 / 하나님이 싸우시리라 / 느헤미야 4:7-23 2024-03-24 7
47 느헤미야 강해 5 / 하는 일이 무엇인가 / 느헤미야 3:1-4:6 2024-03-17 3
46 느헤미야 강해 4 / 성을 건축하게 / 느헤미야 2:10-22 2024-03-10 5
45 느헤미야 강해 2 / 주의 종들, 주의 백성 / 느헤미야 1:8-11 2024-02-25 9
44 느헤미야 강해 1 /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 느헤미야 1:1-7 2024-02-18 18
» 에스라 강해 22 / 사로잡혔던 자들 / 에스라 10:16-44 2024-01-28 14
42 에스라 강해 21 /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 에스라 10:5-15 2024-01-21 12
41 에스라 강해 20 / 쫓아내리라 / 에스라 10:1-15 2024-01-14 10
40 에스라 강해 19 /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에스라 10:1-4 2024-01-07 11
39 에스라 강해 17 / 우리 죄악, 우리 허물 / 에스라 9:1-9 2023-12-24 1870
38 에스라 강해 16 / 가증한 일 / 에스라 9:1-3 2023-12-17 1865
37 에스라 강해 15 / 여호와께 드린 예물 / 에스라 8:24-36 2023-12-10 1854
36 에스라 강해 14 / 우리 하나님의 손은 / 에스라 8:1-23 2023-12-03 1848
35 에스라 강해 13 /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 에스라 7:11-28 2023-11-26 1890
34 에스라 강해 12 / 왕의 조서 / 에스라 7:11-26 2023-11-19 1849
33 에스라 강해 11 /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 에스라 7:1-10 2023-11-12 196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