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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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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3-31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OlWIV-h3A2Q

 

[느헤미야 강해 7]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 여호와가 행하시는 것

 

 

1. 수행 vs 은혜

기독교는 인간이 신 또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깨달아 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신앙은 인간이 신을 찾고, 신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고, 신을 알기 위해 금욕을 비롯한 갖은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모습,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모습, 인간이 신을 알기 위해 금욕을 하거나 수행을 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인간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경험시켜 주면서 하나님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타종교에서는 신의 행동이 없습니다. 늘 인간이 행동하고 그것도 지극정성을 다하여 온갖 종교 행위들을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종교 행위를 하던가요? 모세와 아론과 여호수아가 종교적 수행을 하던가요? 여러 사사들이 다양한 고행을 하던가요?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각 지역에서 출발하여 삼보일배나 오체투지를 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가요? 그런 종교 행위를 한 후에 내가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신에 대한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론, 새로운 개념을 풀어 놓던가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것은 종교적 목적을 가진 종교 행위가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의 목표로 세운 것이 있습니까? 40일 금식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종교적 유익이 있습니까? 40일을 금식하여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자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통찰력을 얻자는 것이 아니고, 신통한 능력을 가지자는 것이 아니고, 영안이 열려서 신비한 지혜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금식 후에 예수님이 달라지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금식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유리해 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 악조건을 만드신 것입니다. 사탄에게 최대한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사단으로 하여금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도록, 예수님이 명백한 승리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뿐 종교적 의미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내용.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2. 순종, 충성

종교에서 순종이나 충성이 언급되는 배경은 신이 인간보다 높으시다, 크시다, 강하시다, 세시다는 것입니다. 신이 권위와 위엄이 있기에 신이 말하면 그것은 곧 법이요, 명령이요, 규정이 되는 것이고 신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따라야 하고, 행해야 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만 대신 한 가지가 빠져있는 것이 우리 하나님은 힘이 있고 권세가 있지만 그것을 인간을 지배하고 압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 하나님은 권위가 있지만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법을 주지 않고, 지시나 명령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자고 인간이 약자니까 약자인 인간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충성한다는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죄적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강자이고 인간이 약자이니까, 하나님이 더 크고 세고 지혜롭고 부유하고 능력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인간을 위해 수고하면서 인간을 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강자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고, 모든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하고, 다양한 이적과 기적도 아주 능수능란하게 행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은 하나도 예외없이, 예언하시는 것들은 하나도 빈틈없이 철저하게 성취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것은 이런 분의 말씀이면 옳겠구나, 이런 분이 제안하는 방식이라면 맞겠구나, 이런 분이 소개하는 지혜라면 틀림없겠구나, 이런 분이 안내하는 삶의 태도라면 분명하겠구나, 이런 분이 너희가 이렇게 살면 행복할거야!’라는 말씀이 허언이 아니겠구나, ‘너희가 이렇게 살면 이런 열매가 맺힐거야!’라는 말씀은 그대로 되겠구나!‘를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도 될 만한 것임을 증명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검증시켜 주시는 과정입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

 

 

1. 사역 or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성전 공사가 진행될 때 백성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자기 살기도 버거운데 누가 성전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하나님도 이것을 인정하셔서 백성들에게 최우선으로 성전을 지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 공사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백성들의 재산을 내어 놓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신 것은 성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백성들의 것을 뺏어가지 않고 도리어 바사의 왕 고레스가 나서게 하고, 바사 나라의 풍부한 재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성전 짓는 일에 앞장서지 않는다고 백성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형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이거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지어졌습니다. 백성들에게 이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의 입장에서 성벽이 중요합니까? 최우선 과제가 성벽입니까? 어느 누가 이 시점에 성벽을 쌓고 싶어 하겠습니까? 성벽 쌓아야 하니까 돈 내라고 하면 내고 싶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하나님이 백성들의 시간을 빼앗아 성벽 쌓으라고 다그치지 않고, 백성들의 물질 빼앗아 성벽을 위해 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벽 쌓은 것을 소홀히 한다고 백성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전혀 영향력이 없는 술관원 느헤미야를 선두로 세우고, 바사의 왕 아닥사스다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성벽 공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반대하고 방해해도 성벽 공사가 진행됩니다. 이 공사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다,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페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리라고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관심이 사역이 아니라 삶에 있고, 하나님의 관심도 성전이나 성벽이 아니라 백성, 사람들의 일상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

 

 

저는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성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가 백성이라면 성벽을 세울 것이 아니라 있는 성벽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어설프게 성벽이 남아있으니까 보수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예 팍 무너뜨려서 보수를 생각지도 못하게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느헤미야가 아닥사드다 왕의 조서를 가지고 오고, 공사에 필요한 재료들을 조달해 왔으니까 참아가면서 공사에 마지못해 참여할 뿐이지, 만약 재료를 상납하라고 했다면 느헤미야를 암살했을 것입니다. 성벽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백성들의 삶은 너무 곤고했습니다(5:2~5, 7). 이때 느헤미야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도 않고,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않고, 구제 사역을 제안하지도 않고, 별도의 보상책이나 탕감 정책을 구상하지도 않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사는 것, 하나님의 원리와 방식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규정한 조항을 지키는 것, 법을 따르는 것, 지시하신 것을 준행하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법을 더 정교하게 수정한 것이 아니고, 더 강력한 징계 조항을 추가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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