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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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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4-1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N3Vf38ERSsg

 

[느헤미야 강해 9] ‘크게 낙담하였으니

 

 

. 공사가 끝나매

 

 

1. 성전 재건 공사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성전이 파괴되었고(BC586), 포로에서 돌아왔지만(BC538) 나라가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귀환자들이 권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사의 명령을 따라야하는 입장이었을 뿐이기에 유다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 스스로 성전을 지을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런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상황이 성전을 재건할 여유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지음으로 신앙을 증명해보라고 하지 않으셨고, 백성들의 집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지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재산 중 일부를 내어 놓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를 표시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예전에 예언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전 재건을 말씀하셨고, 바사의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셨고, 그래서 고레스가 성전 지을 사람들이 있도록 포로들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였고, 그들이 성전 지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친히 성전을 지으라고 왕명을 내렸고, 성전 지을 여력이 없을 것이기에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는 조서를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행하심으로 유다 백성들이나 바사의 백성들이나 기타 주변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계시사역이었습니다. 타종교에서는 성전이 그 자체로서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전을 신성한 곳으로 간주할 수 있고, 성전과 관계된 모든 일들이 종교 행위가 되고, 종교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신앙에서는 어느 장소, 어느 물건이 신성한 것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어떤 행위도 신성한 종교행위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신성한 곳, 신령한 곳, 영험한 곳, 신통한 것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습니다. 당연히 특별한 수단과 방법이 단 하나도 제안되거나 강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신앙에는 종교적 유적이 없고, 유물이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아는 것만 있습니다.

 

 

2. 성벽 역사가 끝나매
성전이 재건되고 80년 정도가 지났지만 유다는 여전히 바사의 속국이요 정치적으로 바사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할 리가 없습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성벽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성벽을 보수할 여력이 하나도 없기에 성벽 자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나서십니다. 하나님은 우선 느헤미야에게 성벽을 세울 마음을 주셨고, 바사의 왕 아닥사스다와의 대화를 통해 성을 중수하라는 명령과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라는 조서를 받아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2). 공사가 시작되고(3) 주변 세력들과 일부 내부자들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4), 유대 귀족들과 민장들이 백성들을 약탈하는 상황 속에서도(5), 느헤미야가 살해의 위협을 받았음에도(6) 우여곡절 끝에 성벽 공사가 마무리 됩니다. 백성들이 보고 너무 허접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성전 공사도 4년이 걸렸는데 3km에 해당하는 성벽 공사는 52일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3. 논공행상

세상에서, 죄인들의 사회에서 성전 재건이나 성벽 보수와 같은 대단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누가, 무슨 수고를, 얼마나 했는가를 따지고 그에 합당한 상을 제공하는 논공행상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성전과 성벽 공사와 관련하여 하나님께 칭찬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고, 하나님께 상을 받은 사람도 한 명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비난이나 꾸중을 받은 사람도 없고 징계나 형벌을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하신 사역이요,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신앙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린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고 명령한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 방식이 없습니다. 여호와 신앙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수고하고 역사하시는 것이고, 인간은 하나님이 이루신 결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얼마나 행복한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 크게 낙담하였으니

 

 

1. 느헤미야의 기도들

느헤미야가 등장할 때부터 성벽 공사를 완성할 때까지 느헤미야가 세 번 정도 기도 또는 호소 또는 간구를 합니다. 첫 번째가 반대자들을 혼내달라고 하는 내용(4:4~5), 두 번째가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해 달라는 내용(5:14~19), 세 번째가 자기를 두렵게 한 자들을 고발하는 내용(6:14)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각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여 상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이요, 죄의 방식입니다. 저들은 자기의 사역을 방해했으니까 징계와 형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고, 자기는 백성을 위하여 헌신했으니까 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괜히 나서지 마시고, 아무에게도 은혜나 긍휼을 주시지 마시고, 그저 상 받을 자에게 상을 주시면 되고, 벌받을 자에게 벌을 주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사고방식에는 하나님의 마음, 기준, 가치, 원리, 방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느헤미야와는 달리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죄인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 마음, 새 영을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과 가치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하나님의 원리와 방식과 능력으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할 사람들입니다.

 

 

2. 크게 낙담하니라

성벽 공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6:16)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의도하신 계시 사역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입니까? 구약의 결론은 죄인은 어떻게 해도, 무슨 일을 경험해도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이제사 신뢰할 만한 신을 찾았다,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할 하나님을 만났다고 감격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배운 사람들, 그래서 그 이후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로 산 사람들이 없습니다. 간혹, 아주 잠깐 동안,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하나님을 따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잠깐 또는 한두 번에 불과할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죄인의 모습을 다시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미 다니엘서에서 느부갓네살 왕과 다리오 왕이 드라마틱한 고백과 찬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성전 공사를 도운 고레스, 성벽 공사를 도운 아닥사스다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고 모든 초점이 이 일을 이루어낸 느헤미야와 백성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지 않고, 높이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을 이 사람들이 이루어 내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다너희가 한 것이 아니야!’입니다. 죄인이 스스로 죄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죄의 실상에 대해서 매번 처절하게 당하면서도 죄를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알려주어도, 보여주어도, 실제로 경험하게 해 주어도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행하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고 나아가 성령을 주시어 드디어 죄와 다른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와 기준과 가치를 이해하게 하고, 분별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실제로 실천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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