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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K6TxNdso8cw

 

[에스라 강해 18] ‘주께서 이르시되

 

 

. 은혜를 베푸사

 

 

1. 에스라의 반성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기독교도 거룩합니다. 기독교의 내용 즉 복음이 세상의 교훈과 다르게 거룩하고, 기독교의 방식 즉 은혜가 세상의 어떤 수단과 방식과 완전히 구별되어 거룩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유례가 없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거나 견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지극히 유일한, 완벽히 거룩한 것입니다. 에스라가 반성, 회개하는 것은(9:6~7) 의미, 가치,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기준에서, 죄인이 반성한다고 죄를 중단할 수 없고, 회개한다고 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죄인에게 반성과 회개를 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에스라는 6절에서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고백했고, 7절에서 왕들과 제사장들이 여러 나라 왕들에게 끌려갔고,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여 얼굴이 부끄러움을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실 때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 훈련과 징계입니다. 이유는 죄인은 훈련이나 징계로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만 아는데, 죄만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시련과 역경과 고난을 통해 훈련을 시키고, 아무리 징계나 형벌을 내려도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죄인에게 죄를 멈추게 하려면 죄말고 다른 것 즉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죄인에게 죄를 중단하게 하려면 죄보다 더 좋은 것, 죄를 짓고 죄를 행하는 것보다 인간에게 훨씬 유익한 것이 있다는 것 즉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를 행하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인간을 변화시켜내는 종교입니다.

 

 

2. 은혜를 베푸사

에스라는 7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벌주셨다는 말을 하지 않고 8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유다가 죄악이 많아서 정수리에 넘치고,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칠 정도였고, 당연할 결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칼에 죽고 사로잡히고 노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포로 생활 70년간 반성하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고, 태도와 자세와 행동을 바꾸지 않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여호와의 성전을 짓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성전 기물을 되돌려 놓지도 않았고,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유다 왕들과 신하들과 종교인들과 백성들은 70년간 와신상담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변화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마치거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전무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행한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께 상을 받은 것은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불쌍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것은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나 다른 나라로 끌려왔기 때문이나 객지에서 고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 되어, 죄의 원리로 살고, 죄의 결과를 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행하신 조치,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고난받는 히브리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면 고난받지 않은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심 밖이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기에 적절한 설명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포로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라면 맞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에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은 포로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실 은혜는 상황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요,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로서, 새 영, 새 마음,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 주께서 이르시되

 

 

1. 악마의 편집

에스라가 9:11~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에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신 말씀이라고 인용하고 이 말씀에 근거해서,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10장의 조치, 매우 이상한 조치, 심히 당황스러운 조치를 행했습니다. 에스라가 인용한 본문은 마치 한 구절, 한 단락, 한 문단처럼 되어있지만 예전에 어떤 선지자가 두 구절을 연결해서 이렇게 예언한 적이 없고, 하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인용구절은 여기에서 한 구절을 가져오고, 전혀 다른 저기에서 또 한 구절을 가져오고,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 서로 시기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고, 앞 뒤 구절도 다르고, 문맥도 다른 전혀 다른 구절들을 에스라가 임으로 가져와서 편집을 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본문과 상관없이, 문맥과 상관없이, 의도와 상관없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지극히 사적으로, 자기 멋대로, 임의적으로, 마구잡이로 인용한 것입니다.

 

2. 주께서 이르시되

11절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내용은 신7:1, 중간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는 레24;24, 27, 끝부분의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는 유사한 표현이 왕하 21:16절에 나옵니다. 12절 서두의 혼인과 관련된 내용은 신7:3, 중간의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는 신23:6, 다음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는 사1:19, 끝 부분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리라에 대해서는 관련 구절을 찾지 못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가장 기본은 문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몰아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언제 말씀하셨는지, 누구에게 말씀하셨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잘 분별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지금 에스라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에 기본 중의 기본, 가장 본질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3. 임의적 사용

에스라의 구약 인용과 그에 근거한 조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고 왜곡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극단적 골수 정통 유대인 랍비들은 하루 종일 율법만 묵상한다고 합니다. 근거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1:8)입니다. 나라가 세금을 투입해서 이 랍비들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근거는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입니다. 나라가 이나마 평안하고, 백성이 이 정도라도 형통한 것은 자기들이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자기들 덕분에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형통한 것이니까 나라가 백성들이 자기들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당당하고 요구하고 나라는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이고, 올바른 신앙이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기독교와 관련된 어느 종파에서는 성경의 특정한 구절, 특정한 말씀을 유난히 강조하여(20:8) 모임도 안식일이라고 토요일에 모이고, 교파 이름에도 안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치유 사역자가 성경 구절대로 행한다하여(왕하4:32)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중세 교회는 종교 재판을 위해 고문을 하면서 성경 구절을 제시하면서(5)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신 대로순종하는 것입니까? 이런 행동의 원조가 바로 에스라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느 한 구절을 암송하지 말고, 어느 한 본문이나 단락에는 몰두하지 말고 성경 전체를 계속, 자주, 많이 읽으셔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원리와 방식으로 행하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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