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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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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4-07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mThHYXBROgU

 

[느헤미야 강해 8] ‘털어 버리실지니

 

 

. 사람들의 반응

 

 

1. 사람들의 반응

성경에서 하나님이 많은 사역을 행하셨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이런 저런 일들이 아니라 계시즉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제외한 여러 가지 일들이나 다양한 사건들은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한 보조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계시가 목적이었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사건, 불가능한 사람, 불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환영과 기대가 아니라 비아냥, 조롱, 비웃음이었습니다. 아브람도 엎드려 웃으며’(17:17), 사라도 속으로 웃되’(18:12),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농담으로 여겼더라’(19:14)입니다. 포로 후기에 성전과 성벽 공사가 진행될 때에도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2:19),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4:1)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예언하시고 기어코 완성하심으로,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틀렸고,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2. 죄인들의 한계

하나님이 이렇게 계시적인 사역을 행하시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울까요? 이적을 보고, 기적을 보고,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삼중적으로 불가능해 보여서 비웃었던 일들이 진짜로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알게 될까요? 구약의 결론은, 죄인들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낼 것이다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이, 사람들이 언제나 요구, 주장하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을 보여달라, 그러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삼상12:10)고 한 것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나님은 건져주셨지만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이미 예수님이 이적과 기적을 행하고 계셨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8:11)이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성도들의 신앙

하나님의 사역에 사람이 초청을 받아 동역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지만 인간이 다양한 수고와 노력을 행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수고로 하나님의 사역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경은 그 사람에게 특별한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것,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상이요 면류관 자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사람의 수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칭찬하지 않으며, 그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모범적 사례로 제시하지 않고 본받으라고 권고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의 신앙과 헌신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 털어 버리실지니

 

 

1. 백성들의 실상

왕의 조서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백성들에게는 하나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성벽이 세워진다고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설득하여 백성들이 성벽 공사에 참여를 했고, 외부의 적들이 방해를 하고, 내부의 적들도 방해를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백성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다행한 것은 성벽 공사를 명분으로 성벽을 세우면 하나님이 상을 내릴 것이다라고 사기 치지 았는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성벽이 조금씩 세워져간다고 흥분하지 않았고, 감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 완공될 것인지 걱정하거나 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작 백성들의 관심거리나 염려는 궁핍하고 곤고한 삶이었습니다(5:1~5).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선동질을 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선동질을 하면 백성들의 삶을 무시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종교 사역에 더욱 몰두할 뿐입니다. 느헤미야는 선동질을 하지 않으니 백성들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고 백성들을 위한 조치를 행하고(5:5~9)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을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느헤미야는 자기가 한 말, 지가가 취한 조치를 자기도 직접 행했다는 것입니다(5:14~18).

 

 

2. 크고 웅장하고 화려할 것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의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따르지 않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버렸고, 잊었고, 떠났습니다. 신앙의 왜곡은 여호와 신앙을 따른다고 할 때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듣고 배우고 말 그대로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데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왜곡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윗이 성전을 세운 것입니다. 성전을 세운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다윗의 사고방식 즉 여호와의 성전은 크고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한다’(대상22:5), ‘내가 건축하려 하는 성전은 크고 하려할 것’(대하2:9)이 왜곡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상징하는 성막은 하나님이 먼저 지으셨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위엄에 걸맞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처소, 하나님의 궁전을 짓는 것 즉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람 즉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과시하는 것, 하나님이 대접을 받고, 하나님이 품위를 유지하고, 하나님이 사람들 위에 서서 폼을 재는 저급하고 유치한 행동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생각 자체, 하나님의 존귀에 걸 맞는 집을 지어드린다는 사고 자체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을 변질시킨 것입니다.

 

 

3. 털어 버리실지니

하나님은 종교나 신앙을 강요하신 적이 없고 여호와 신앙이 권력이 된 적이 없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운 사람이 종교적 권세를 남용 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원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성품 그대로 사랑, 자비, 은혜,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이유가 인간이 죄를 따라 살면서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죄와 다른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죄의 원리, 죄의 방식, 죄의 수단, 죄의 방법을 사용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심판하고 징계와 형벌을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행동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시기에, 에스라나 느헤미야가 바사의 파견을 받아 정치 권력자로 유다에 오게 되는데, 바사의 정책에 의거하여 종교적 책임자, 종교적 권력자로 동시에 부임하고,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위치에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한 조치가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요, 더러운 행동이니 이방 여인 아내를 내쫓고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까지 모두 내 쫓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른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강요하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실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9:14). 느헤미야도 성벽 공사를 방해하는 자들을 하나님께 고소하면서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4:4~5)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을 권면하며 이자를 받지 말자는 아주 바람직한 제안을 하고(5:6~11), 이를 따를 것을 맹세하게 하더니 더 나아가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5:13)입니다. 이런 조치가 열정이 본질을 삼켜버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버리는 황당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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