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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1-07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NohNLfF6vqA

 

[에스라 강해 19]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어이없는 주장들

 

 

1. 준비된 사람

기독교에서 오해, 왜곡된 신앙 패턴이 있습니다. 맨 먼저,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을 쓰신다는 생각 즉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믿음있는 사람, 충성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자동적으로 신실한 사람임이 확인 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신실하다고 인정하여 부르고 세우고 쓰시는 사람이 행한 조치는 당연히 옳고, 바르고, 정당하고, 맞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을 쓰신다는 생각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믿음 있는 사람, 충성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쓰십니다. 하나님이 신실한 사람을 싫어한다, 거부한다, 안 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인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준비된 사람이 있다면, 만약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믿음 있는 사람, 충성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닌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기독교 스스로 기독교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아무나 데리고 쓰더라도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내십니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이어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약속을 성취하시고, 믿음이 없는 사람도, 충성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아주 완벽하게 달성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능력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2. 쓰임받은 사람

두 번째, 하나님이 쓰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신실한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에스라의 경우는 하나님이 쓰신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에스라를 부르는 장면, 에스라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바사가 에스라를 임명하고, 파견하고, 에스라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세하게 적은 조서는 있습니다. 에스라가 등장할 때 유다는 나라가 망한 지 벌써 150년 정도가 됩니다. 유대 지역에 머물러 있든, 바벨론으로 끌려 왔든 이미 바벨론화 작업이 70년 이상 진행되었고, 이어서 바사화 작업이 또 70년 정도 진행되었으니까 많은 부분에서는 유대적 방식이 거의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에스라를 소개하는 표현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부여한 표현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사의 관점이요, 바사의 직분이요 바사가 자기 관료를 소개하는 표현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부분, 유다 나라가 패망하기 전부터 망하는 과정, 포로기와 귀환의 시기에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가 아니라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하나님이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3. 어이없는 옹호들

세 번째, 에스라의 주장과 에스라의 조치가 과연 옳으냐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구약의 본문을 짜깁기해서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고, 창세기부터 이때까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매우 많고 다양한데 그 중에 딱 한가지만을 지적하고, 멀쩡한 가정을 파탄내고, 허다한 여인들과 아이들을 몰아내는 비인간적 만행을 자행합니다. 에스라의 이러한 행동도 어이가 없는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허다한 설교자들이 에스라의 조치를 매우 칭찬하고, 모범적 사례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에스더 사건에서도, 사람들은 유대 민족을 진멸하려고 했던 하만에 대해서는 매우 비난하지만 정작 하만은 한 명도 죽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에스더는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만의 민족 75,000명 이상을 몰살했는데 기독교가 대놓고 에스더를 옹호해 줍니다. 덕분에 하나님이 엄청난 수모를 당하십니다. 세상의 허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왜 기독교가 하나님을 비난받게 하면서까지 에스더나 에스라를 옹호하려고 노력하는지 의아합니다.

.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1. 결혼에 관하여

에스라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문제 삼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에 바로에 의하여 애굽식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히브리 민족이 아니라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했습니다. 모세도 미디안으로 도망간 후에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 도움을 주었던 가나안 여인 라합은 유대인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고, 모압 여인 룻은 유대인 남자와 결혼하였다가 남편이 죽고, 다시 유대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조상 오벳을 낳았고 라합과 룻은 그리스도의 계보에까지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아내라고 소개되는 딱 한 명은 애굽 여인이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부인은 시돈 사람 이세벨이었습니다. 또 유대인 에스더는 바사 사람 아하수에로와 결혼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친족인 모르드개가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에스라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동안 몰랐을까요? 유대교의 주장에 의하면 율법에 613가지 조항이 있다고 하는데 에스라는 왜, 유독 결혼 조항에만 집중하는 것일까요? 정통 유대교 출신의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려면 다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이고, 한번을 어겨도 다 어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보다 하나님이 더 유다의 죄에 대해 지적하셨고, 경고하셨지만 유독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를 심각하게 강조하신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해법으로 이방인 아내와 자식을 내보내라는 조치를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죄를 따르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2. 평화와 행복을 구하지 말라?

에스라의 주장과 행동을 문제 삼는 이유는, 딱 한 가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하신 내용과 하나님이 행하신 조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12절 중간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에스라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는데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며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입니다(29:4~8).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에스라가 한 말이 서로 다를 때 저는 당연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3.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기독교 신앙, 여호와 신앙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본인이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되고, 누군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명을 받아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선동한다고 해서 거기에 동조해도 안되고, 놀아나서도 안 됩니다. 기독교에도 선동가가 등장하고 동조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어떤 사람이 그럴싸한 말을 하면 맹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특징이요, 죄의 방식의 패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방식은 죄인의 사고방식과 달라서 납득을 못하고 동조를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죄의 방식은 익숙하고 가능성이 있어보이기 때문입니다. 선동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자, 강경하게 몰아붙이는 것이요, 동조하는 사람의 특징은 이 사람, 이 방식이어야 한다, 율법대로 행하자고 문맥과 상관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오용, 남용한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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