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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1-21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Y5-V8r_SzCs

 

[에스라 강해 21]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 고레스의 위용

 

 

1. 신의 역할

사람들이 진리처럼 강조하는 내용이 행한대로 받는다.’ ‘심은 대로 거둔다.’입니다. 이 말을 인정한다면 서로 불만이나 시기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심은 대로 되지 않는 것 같기에 인간들이 종교를 만들어 내고,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신에게 투사해서 신의 특성, 신의 역할을 부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은 선한 일을 한 자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짓을 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심판자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상을 받으려고 선을 행하게 하는 동기부여와 벌을 받지 않으려고 악을 주저하게 하는 예방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신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존재, 어떤 우상, 어떤 신들과도 성품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원리가 다르고, 방식이 다른 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평상시에 알고 있던 신에 대한 개념, 다른 사람들도 뻔히 알고 있는 신의 역할,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는 설명을 들으셨다면 그 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여호와가 아닙니다. 그런 신은 하나님 말고도 세상에 널렸습니다. 여타의 신들과 다른 점이 없으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 사기이고, 여타의 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면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 거짓입니다.

 

 

2. 하나님의 역할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생각해서, 고민해서, 탐구해서, 연구해서, 묵상해서, 투사해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고, 가르쳐주고, 경험시켜 주면서 알게 해 주시는 계시를 행하신 것이고, 그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에게 벌을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는 법을 어긴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 죄인들입니다. 죄인들에게 징계나 형벌을 주지 않습니다. 징계나 형벌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습니다. 이미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자는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스스로도 할 수 없는 자, 가만 두면 전혀 대책이 없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식은 ‘Amazing Grace!’, ‘놀랍다 주님의 그 은혜입니다.

 

 

3. 고레스의 위용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을 선포할 때 귀담아 듣지 않았고 선지자들을 잡았고, 때렸고, 가두었고, 예언을 선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말은 선지자들을 보낸 하나님에 대해서도 거부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구나, 하나님이 옳았구나!’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언의 성취로 생각했다면 곧 바로 하나님을 찾아와서, 제발 도와달라고 간청을 했을 텐데 유다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포로 생활 70년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유다의 하나님이 유다를 압제하는 나라의 왕, 이방인을 선택하고 그를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에는 이 나라의 신이 저 나라 사람을 사용해서 이 나라에 유익이 되게 일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그런 신이 존재하지 않았고, 신이 그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바사의 왕이 직접 조서를 내려서 백성들이 돌아가도 된다고 하고, 성전 건축을 위한 지원도 해 주겠다고 하니 전적인 고레스 덕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4. 은혜인가?

유대인들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복 받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 신이 복을 준다고요? 상 받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 신이 상을 준다고요? 자기 신을 섬기지도 않았고, 복종하지도 않았고, 그 신에게 지극정성을 들이지도 않았고, 충성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 신이 상을 주고, 복을 준다고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고, 그런 신의 방식은 작동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에 하나님이든 누구든, 신이 자격없는 자들에게 은혜를 준다는 개념, 사고, 원리, 방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전 재건을 예로 들면, 사람들 생각에 성전 건축을 하나님이 후원했습니까, 고레스가 후원했습니까? 하나님이 더 크고 강합니까, 고레스가 더 크고 강합니까? 당연히 고레스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성전보다 고레스의 왕궁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마음을 바꾸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다짐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 마땅히 행할지니이다

 

 

1. 에스라의 권위

에스라가 등장할 때에 상황이 달라졌나요? 바사가 쪼그라 들었나요? 바사의 왕이 무기력해 졌나요? 바사의 왕궁이나 신전이 무너졌나요? 아니면, 갑자기 여호와가 강력해졌나요? 바사의 수도 수산 궁에서 에스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백성의 관점으로는 하나님은 하신 일이 없고 에스더서의 마지막은 바사의 왕과 모르드개에 대한 칭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바사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교육받고 마침내 왕의 임명을 받고 파견을 받아 왕의 조서를 앞세우고 유다의 책임자로, 통치자로, 관리자로 바사의 관료 에스라가 유대 땅에 온 것입니다. 7장에서 에스라에 대해 16대 조상까지 언급하고, 바사가 수여한 직분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바사의 왕 아닥사스다가 내린 조서 전문이 나옵니다. 바사의 관료의 권위, 권세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에스라에 대해 유대인 한 사람, 제사장 겸 학자, 여호와의 율법에 익숙한 자로 생각하신다면 너무나 현실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와서 성전에 이런 저런 제물을 바치는 것을 에스라의 신앙적 헌신으로 생각하면 정말 너무 순진한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행동이 아니라 왕의 조서에 의한, 왕이 지시한 행동을 그대로 수행하는 정치 행동 또는 업무의 일환일 뿐입니다. 에스라 시대에 백성들만이 아니라 에스라 자체도 신앙이 좋았을 리가 없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보고 듣고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를 건져내시면

삼상 12장에 하나님을 대하는 죄인들의 심리, 죄인들의 방식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 어마어마한 역사를 이루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잊었다고 합니다(삼상12:8, 9).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는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12:10)입니다. 이게 죄인들의 실상, 어쩔 수 없는 죄인들의 방식, 벗어날 수 없는 죄인들의 패턴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무엇인가를 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배팅을 합니다.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믿을 만한지,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지 검증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절박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면접 하겠다고 나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12:11) 이스라엘은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12:12)라고 사무엘이 지적합니다.

 

 

3.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더니 에스라의 선동에는 너무나 적극적이고 협조적입니다. 사람의 선동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를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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