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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2-25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X3Upb-F21fQ

 

[느헤미야 강해 2] ‘주의 종들, 주의 백성

 

 

. 느헤미야의 말이라

 

 

1. 하나님의 말씀, 느헤미야의 말

창세기나 출애굽기 등 여러 책들은 별도의 소개가 없습니다. 구약중에 사람의 이름이 제목으로 정해진 첫 번째 책이 여호수아이지만 여호수아의 말이라라고 시작하지 않고, 룻기도 룻의 말이라가 아니고, 사무엘 상하도 사무엘의 말이라라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된 책 제목이 가장 많은 것이 선지서인데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입니다. 모두 사람의 이름이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 경험, 의견 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임한, 그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있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있습니다. 사단, 마귀, 귀신이 하는 말, 심지어는 짐승이 하는 말도 두 번이나 있습니다. 구약의 각 권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는 책도 있고, 아예 하나님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책도 있습니다. 독특하게 느헤미야서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고. 느헤미야가 받은 말씀도 아니고 말 그대로 느헤미야의 말이라입니다. 성경에 딱 세 권, 시편, 잠언, 느헤미야서에 사람의 말이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2. 기도하니까?

1장에 느헤미야의 기도가 나옵니다(1:5~11). 이런 상황, 이런 처지에서 이런 기도를 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고, 기도를 한 두 번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평상시 신을 부정하던 사람도 절박하면 신을 찾고, 특정한 신을 섬기던 사람도 절박하면 다른 신에게까지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는 연약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에 느헤미야가 기도했다는 사실에 너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기도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처럼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는 언제나 인간에게 자격과 조건을 제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자격과 조건을 구비하기만 하면, 이 수단과 방법대로 행하기만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공식이나 법칙을 만들어 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역사하시면 그 은혜를 받은 인간이 반응하는 종교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인간이 지극정성을 다해 온갖 종교 의식, 종교 행위를 하면 하나님이 반응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스라서를 살펴보았지만 에스라가 기도했다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에스라를 포함한 유다 백성들 중에 포로 귀환을 위해서 수고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귀환한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수십 년 전부터, 수백 년 전부터 예언하셨던 것을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제발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처럼 왜곡하면 안 됩니다.

 

 

. 주의 종들, 주의 백성

 

 

1. 주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느헤미야의 기도를 조금 살펴보려는 이유는, 기도를 했는데, 열심히 했는데, 간절히 했는데 엉뚱하게 했다면, 다른 곳에다 했다면, 안 해도 되는 것을 했다면 헛수고를 한 것이 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타종교는 인간에게 자꾸 종교 행위, 종교 활동, 종교 의식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방식인데 반해 기독교는 가능한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내용을 점검, 분석하시고, 기도의 논리가 맞는지를 체크하시고, 맞는 기도, 합리적 기도에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으로 일단 어떻게든 구해야, 기도를 해야 들어보시고 응답 여부를 결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1:5), 자신들의 상태(1:6~7)가 맞지 않아도 느헤미야의 기도 내용이 결정적 변수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2.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가 하나님에게 예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한 번도 잊으신 적이 없고, 한 가지도 이루지 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사실 기억하라는 호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주, 간곡히 부탁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제발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계속 선포하셨습니다. 지금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옛적에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신30:1~3절인데 만약 하나님이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이 말씀대로 행하신다면 느헤미야의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1:9) 때문입니다. 포로 생활하면서 이렇게 했습니까? 귀환한 사람들이 이렇게 했습니까? 만약 이렇게 행했다면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자격을 갖추었고 조건을 충족시켰으니 굳이 부탁, 간구, 호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기도할바에야 차라리 솔로몬처럼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인용한 기도에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솔로몬의 기도에 스스로 깨닫고, 죄를 지었다고 하고,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가 있습니다. 이것이 자격이나 조건이 된다면 이 기준을 통과할 사람이 없는데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유형으로, 이런 패턴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전형적인 죄인들의 사고방식, 이방 종교적인 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 은혜로 즉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치 자기의 마지막 염치, 최소한의 성의라도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죄의 원리이고,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의도

느헤미야가 인용한 옛적에 주께서 명령하신 말씀’(30:1~3)에서 하나님이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너무 힘든 조건을 제시한 것 아니냐고 따지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것은 하나님이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들에서는 이것은 기본이고, 이런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라, 이런 정성으로 절을 하라, 이런 자세를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른 것 하려고 하지 마라, 쓸데없이 뭐 바치려고 하지 마라, 불필요하게 육체를 힘들게 하고 괜히 정성을 표현다고 고통스러운 종교 행위를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기는 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어도, 명령한 것을 따르지 않았어도, 마음을 다하지 않고 뜻을 다하지도 않고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어도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 내내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주의 종들, 주의 백성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10)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등의 쓸데없는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는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여 역사하여 주소서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한 사례가 성경에 나옵니다. 출애굽한 직후 광야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아래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하나님은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하는 말이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32:11)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너희 하나님, 나의 백성으로 표현되는 관계가 맺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보호자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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