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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3-10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shtQvsag8es

 

[느헤미야 강해 4] ‘성을 건축하게

 

 

. 성을 건축하게

 

 

1. 아닥사스다와 느헤미야

1~2장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말과 행동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마도 바사에서 나고 자란 사람, 유다나 예루살렘은 살아본 적이 없기에 기억에도 없고, 가본적도 없을텐데, 또한 나름 바사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잡아서 왕이 거하는 수산 궁에 거하고 왕이 신뢰하는 술 관원이 되었는데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무슨 연유로 이다지 애착이 많았을까요? 패망한 나라 백성들이 호의호식하지 않는 것은 뻔한 것이고, 태평성대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인데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을 불탔다는 소식이 과연 새삼스러운 것일까요? 그런데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가 왕의 시중을 드는데 얼굴에 수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의 관심을 받는데 자기 고국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라고 고백하고, 천만다행으로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니까 느닷없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2.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 당시 예루살렘이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다에 관심없는 이방 출신의 관료들이 무심하게 유다를 통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출신이요 대제사장의 십육대 후손으로, 여호와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이미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을 해 와서 유다를 돌보고 있습니다. 유다의 총책임자가 에스라입니다. 지역적으로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전역을 재건하는 담당자이고,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고, 백성들이 평안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행정을 집행해야 하는 실무자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사로잡혔다 돌아온 사람들과 그냥 유다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편 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상황, 성벽의 상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여호와께 큰 범죄이니 이방 여인을 내 보내고, 이방 여인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도 모두 내보내라는 정책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때 또 다른 사람,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술관원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에 관심이 많고, 백성들의 소식을 듣고는 앉아서 울고 슬퍼하고 금식하고, 왕과 대화하는 순간에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3. 이상한 행동들

느헤미야는 바사에서 유다 땅까지 가는 과정과 유다에 들어가는 과정에 행여 막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서를 받아내고(1:7),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얻어낼 수 있는 조서도 받아냈습니다(1:8). 더 나아가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1:9)와 같이 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유다 땅에 도착을 했습니다. 바사에서 왕의 조서를 가진 사신이 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10)입니다. 느헤미야가 개인 자격으로 온 것이나 사적 업무를 보려고 온 것이 아니고 왕의 조서를 가지고 왔고, 왕이 허락한 일을 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1:12),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1:16)입니다. 느헤미야는 암행어사가 아니고, 은밀하게 온 것이 아닙니다. 사신답게 공적으로, 혹시 반대가 있을 까봐 걱정이 된다면 더욱 공식 절차를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선한 손이

1. 내 마음에 주신 것

예루살렘이 유다의 수도, 유다의 대표적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의 중심지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것은 당연히 국가적 중심 과업일텐데 국가의 책임자나 지역의 관리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어처구니없게도 술관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술관원은 자신의 개인적 역사의식이나 민족의식을 가지고 이 과업을 꼭 이루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1:12)으로 고백합니다. 이 과업, 이 프로젝트는 느헤미야가 시작한 것이 아니고, 느헤미야가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느헤미야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왕의 술관원으로서 전혀 적합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지만 놀랍게도 왕의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왕의 조서를 두 개나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2:8)입니다. 이 과정, 이 내용을 백성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2:18)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답할 말도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2:20)입니다.’

포로 생활과 귀환, 성전 파괴와 재건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황폐화 될 것이고, 후에 예루살렘이 다시 지어질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으로 선포하셨고, 하나님이 그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술관원 느헤미야와 바사의 왕 아닥사스다를 동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사건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닙니다. 인물을 중요하게 여길 것도 아닙니다. 무슨 사건이 등장하건, 어떤 인물이 등장하건, 어떤 방식이 동원되건 가장 중요한 것은 ,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내 생각이 틀렸구나!’를 아는 것입니다. 이미 성전 재건 사건에서 확인이 된 것입니다. 성전 재건에 누가 동원되었습니까?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방 사람, 바사의 왕 고레스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성전을 고레스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2. 하나님의 선한 손이

예전에 다윗이 나름 폼나게 지은 성전이 있었지만 성전 덕분에 하나님이 좋아지신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 성전 안에 온갖 이방 잡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형상이 없는 하나님은 집만 임대해준 꼴이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지을 생각이 없을 때 하나님이 예언을 이루기 위해 고레스를 동원하여 재건하셨지만 예전에 있던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하찮았습니다. 성전이 재건됨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니고 명예를 회복한 것이 아니고, 유다의 신앙이 회복된 것도 아닙니다. 느헤미야 시대는 성전이 지어지고 대략 80년 정도가 흐른 때로, 성전이 지어져있는데 백성들의 삶이 거룩해 지지도 않았고, 윤택해 지지도 않았습니다. 성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성전과 비교하면 종교적 의미나 신앙적 가치가 거의 없는 예루살렘 성벽에 하나님이 큰 의미를 부여하실 리가 없습니다.

 

 

왕과 느헤미야의 대화가 매우 어색하고(1), 느헤미야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다고 했습니다(2).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일이 이렇게 진행될 리가 없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이렇게도 일이 진행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언하시고 진행하시고 성취하실 일이니까 아무런 방해없이 일사천리로, 순적하게 진행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그런 생각과 다르게 사역하십니다. 순적하고, 쉽고 빠르게 성벽 공사를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할 때, 어찌할 수 없어서 좌절이 몰려할 때,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르구나, 하나님이 옳구나, 하나님이 맞구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원리와 방식으로 하면 되는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나에게 하나님의 열매인 사랑과 온유와 양선과 자비와 긍휼과 평화가 누려지겠구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가시고,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한 삶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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