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Extra Form
예배 날짜 2024-03-2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EhdlulXX43Y

 

[느헤미야 강해 6] ‘하나님이 싸우시리라

 

 

. 하나님이 일꾼

 

 

1. 하나님이 일꾼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 권위있는 분이라고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고,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비교하여 하나님이 높고 크고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인간을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하나님이 수고해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이 일을 해서 인간을 평안하게 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역할을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고, 할 일을 언급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그 현장에, 그 사역에 증인으로, 동역자로, 대상으로 인간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일꾼이나 책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배우고 알아야 하는 자입니다. 기독교에서 일하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2. 대적자 or 대상자

하나님의 일을 하던 느헤미야가 범한 실수가 방해자들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4:4~5).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그 일이 목적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아들을 낳는 것이 하나님에게 중요하지 않고, 요셉이 총리가 되는 것이 하나님에게 별 의미가 없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거리가 아니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핵심 사안이 아닙니다. 유다의 포로들이 돌아온다고, 성전이 다시 세워진다고, 예루살렘 성이 중수된다고 하나님에게 무슨 유익이 있고, 보탬이 됩니까? 출애굽 사건이 있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 편이고 바로와 애굽은 하나님의 대적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계시의 대상입니다. 성전을 짓고, 성벽을 세우는 사람은 하나님 편이고, 공사를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사람은 대적이라고 진멸의 대상, 섬멸의 대상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 바벨론, 바사 사람들은 대적자로 간주해서, 일체 그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오직 거룩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으로 일을 진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의 대상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하고 훼방한 자들이 있고, 예수님을 고발한 자가 있고, 재판하여 사형판결을 내린 자가 있고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도들을 가로막고, 잡아들이고, 옥에 가두고,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닌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 사람들을 대적으로 여기거나 그들을 진멸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계시의 대상, 은혜의 대상, 복음을 알아야할 대상입니다.

 

 

3. 시편의 탄식

시편에 다윗이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며 탄식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아파할 수 있고, 괴로워할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고, 간구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면 안 됩니다.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인격도, 상대방의 인권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인도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문제를 죄라고 선언합니다. 죄의 마음, 기준, 원리, 가치, 방식, 개념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죄의 결과가 임할 뿐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사람을 이겨야 행복하다고 단 한 번도, 단 한차례도, 단 한 사건도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경은 죄를 이김으로 행복한 사람, 평안을 누린 사람,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1. 아니니라, 부정하리라

하나님과 제사장의 대화에서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이 다른 것에 닿아도 그것들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며, 부정한 것이 다른 것에 닿으면 그것들이 부정해 진다고 대답합니다(2:1013). 이게 정답이라면, 거룩한 것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요 반대로, 부정한 것은 자기도 부정한데, 부정한 것이 닿은 모든 것을 다 부정하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어떤 거룩한 사람이라도 부정해질 위험이 너무 크기에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거룩이 다른 삶에게 전혀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동시에 최소한의 자기 보호, 자기 방어도 할 수 없고, 그저 자신의 거룩을 유지하려고 거의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모든 종교가 거룩해 지는 수단, 정결해 지는 방법, 공덕을 쌓는 수단과 방법, 상이나 복을 받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제안, 권고하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제안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것으로 백성들의 삶을 통제하고, 그것을 종교 지도자들이 기준을 잡고, 심판을 하고, 평가를 하는 것으로 백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종교에서 발생하는 종교 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2. 복을 주리라

정작 자신들이 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거룩을 주지도 않고, 복을 주지도 않고, 은혜를 주지도 않으면서 종교 제도를 통해 인간을 장악하고, 그 인간을 위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죄인들과는 다르게, 세상의 모든 종교와는 다르게 하나님은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2:19)고 선포하십니다. 기독교에는 인간이 거룩해 질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제안하지 않기에 인간이 갖은 수고와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기독교는 종교가 되지 못하고, 종교 권력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대신 모든 수고를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고하셔서 인간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인간을 복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한 여호와이니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인간들의 어떠한 종교적 선동에도 미혹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의 어떤 종교적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여호와가 복을 주겠다는 선포에 감동만 하시면 되고, 여호와가 주신 은혜를 누리시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싸우시리라

 

 

느헤미야는 바사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예루살렘에는 가 본 적도 없고 기억도 없기에 자기가 평상시 예루살렘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았었던 것을, 술관원에 불과한 자기에게 왕이 이렇게 자상하게 대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을, 자기가 감히 왕에게 두 가지에 대해서 조서를 내려 달라고 요청할 만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령 자기가 부탁을 한다고 해도 왕이 그렇게 간단하게 조소를 내려 주고 심지어 군대 장과과 마병까지 내어줄 것을 상상도 못했다는 것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랑이나 교만할 수 없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만 할 수 있습니다. 성벽을 건축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내 마음에 주신 것’(2:12)이라고, 왕과 대화를 하고, 왕에게 조서를 구하고 조서를 받아내는 것에 대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2:8), 백성을 설득하는 것도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2:18), 공사가 방해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는데’(4:15), 앞으로 진행될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4:20)고 고백합니다. 기독교에서 사역자가 할 일, 사역자가 할 말, 사역자의 역할은 딱 한 가지 여호와께서 하시리라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앎으로 담대함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심을 앎으로 평안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앎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덕을 보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자고 선동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리라고 선포하는 종교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예배 날짜 조회 수
52 느헤미야 강해 10 / 뛰어난 자라 / 느헤미야 7:1-73 2024-04-21 2
51 느헤미야 강해 9 / 크게 낙담하였으니 / 느헤미야 6:1-19 2024-04-14 7
50 느헤미야 강해 8 / 털어 버리시기를 / 느헤미야 5:12-19 2024-04-07 6
49 느헤미야 강해 7 /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 느헤미야 5:1-11 2024-03-31 6
» 느헤미야 강해 6 / 하나님이 싸우시리라 / 느헤미야 4:7-23 2024-03-24 7
47 느헤미야 강해 5 / 하는 일이 무엇인가 / 느헤미야 3:1-4:6 2024-03-17 3
46 느헤미야 강해 4 / 성을 건축하게 / 느헤미야 2:10-22 2024-03-10 5
45 느헤미야 강해 2 / 주의 종들, 주의 백성 / 느헤미야 1:8-11 2024-02-25 9
44 느헤미야 강해 1 /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 느헤미야 1:1-7 2024-02-18 18
43 에스라 강해 22 / 사로잡혔던 자들 / 에스라 10:16-44 2024-01-28 14
42 에스라 강해 21 /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 에스라 10:5-15 2024-01-21 12
41 에스라 강해 20 / 쫓아내리라 / 에스라 10:1-15 2024-01-14 10
40 에스라 강해 19 /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에스라 10:1-4 2024-01-07 11
39 에스라 강해 17 / 우리 죄악, 우리 허물 / 에스라 9:1-9 2023-12-24 1870
38 에스라 강해 16 / 가증한 일 / 에스라 9:1-3 2023-12-17 1865
37 에스라 강해 15 / 여호와께 드린 예물 / 에스라 8:24-36 2023-12-10 1854
36 에스라 강해 14 / 우리 하나님의 손은 / 에스라 8:1-23 2023-12-03 1848
35 에스라 강해 13 /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 에스라 7:11-28 2023-11-26 1890
34 에스라 강해 12 / 왕의 조서 / 에스라 7:11-26 2023-11-19 1849
33 에스라 강해 11 /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 에스라 7:1-10 2023-11-12 196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