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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4-05-05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muVe2ZBTNpM

 

[느헤미야 강해 11] ‘낭독하고, 해석하여

 

 

. 율법책을 가져오라

 

 

1.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라는 성전 재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전 재건되고 대략 60년 정도가 지난 뒤 에스라가 먼저 예루살렘에 왔고, 15년 정도 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에스라가 유다의 책임자로 있었지만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할 때 도와준 것이 없고, 느헤미야가 살해 위협을 받았을 때 보호해준 것이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술 관원 출신으로서 성벽을 쌓은 것은 매우 의외의 사건입니다. 행정 관료가 아니면서도 왕의 조서를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오고, 자기 전공분야인 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성벽을 쌓는 일을 맡아서 진행을 합니다. 돌을 어디서 가지고 와야 하고, 기술자들을 어떻게 모집해야 하는 것이 결코 쉽고, 성벽을 쌓는 것이 단순 작업이 아닌데 느헤미야가 정말 놀랍게도 성벽 공사를 잘 마쳤습니다. 느헤미야의 천재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구약의 마지막 시기

타종교에는 죄론이 없고,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문제이고, 해결책은 그 사람이 열심히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하고, 그런 표현이나 방식이 없습니다. 대신 자기가 지극정성을 다하고, 이런저런 선행을 해서 공덕을 쌓고, 하늘도 감동해서 복을 내려줄 수 있게 바르게, 착하게,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잘 살면 된다는 수단과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본래 하나님인데 육신을 입고 강림하신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본인은 죄가 없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 복음서에 등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역을 하기 전 즉 구약에는 모두가 죄인이요, 다른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을 보고 듣고 경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도무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는 시기는 구약에서 가장 끝에 해당되고 그 뒤에는 말라기가 있을 뿐이고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는 복음서가 나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때는 내용적으로는 가장 절망적일 때, 더 이상의 은혜도 소용이 없고, 어떤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도 효과가 없고, 그리스도 아니면 도무지 가망이 없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 그 수준, 그 내용의 상징적 인물 두 명이 에스라와 느헤미야 인 것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구약의 마지막 시기에 그래도 한 줄기 가능성의 빛을 보여준 사람들이 아니라 정반대로, 여호와를 아는 것 같은데,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 실상은 하나님이나 여호와 신앙에서 가장 멀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율법책을 가져오라

1절에 백성들이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고, 2절에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왔고, 3절에 율법책을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왜 성벽이 지어진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성전이 지어진지 80년이나 되었는데, 만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우고 싶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대해 알고 싶었다면 포로들이 돌아온 직후, 성전이 재건된 직후,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가장 적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이 지어지고 나서는 성전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왜 제사장이 나서지 않았을까요? 성전이 지어지고 제사장들이 80년 이상 성전에서 유다 종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지어진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이 활동하고 있고, 다양한 종교 행위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단 한 번도 율법책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기 즉 성전이 지어진 때가 아니라 성벽이 지어진 후에, 그리고 이 사람들 즉 원래부터 성전에 봉사하고 있던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아니라 바사에서 파견 나온 정치인들, 통치자들, 관리인들, 지배자들, 총독들이 실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 상황이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의미입니다.

 

 

. 낭독하고, 해석하여

 

 

1. 여호와를 송축하매

8장에서 백성들이 모이고, 율법책을 가져왔고, 백성들 앞에서 읽었고, 에스라가 책을 펼 때에 백성들이 다 일어서고, 9장에서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는 모습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입성하고 일정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까지 다 마친 후에, 요단 동쪽에 거주지를 마련한 세 지파를 돌려보낸 후에, 드디어 여호수아서 마지막 24장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에 모읍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신 것부터 시작해서 조상들의 이야기, 모세와 아론을 만난 이야기, 출애굽에 관한 이야기, 홍해 이야기,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 이야기, 다양한 광야의 이야기, 그리고 여리고 정복을 비롯한 가나안 입성의 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회고합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도 빼앗겼는데 블레셋의 여러 지역에서 질병이 발생하니까 블레셋이 언약궤를 돌려보내자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라는 지역으로 모이게 하고 백성들 중에 있는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권고합니다.

 

 

2.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시는 관계는 사랑의 관계, 사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높고 강하고 세고, 인간은 낮고 약하고 천하고 그래서 하나님은 존귀와 영광을 받고 인간은 경배와 섬김을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크고 높고 세고 강한 것은 맞지만 하나님을 권세와 위엄으로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인간에게 굴복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절을 받지 않는 유일하신 분, 아예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떤 우상에게도 절하지 말라고 권고하시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율법책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주니 백성들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입니다. 구약에서 백성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는 자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이적과 기적을 행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때 놀래서, 당황해서, 고맙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할 때로 지극히 전형적인 우상종교의 방식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제단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하는 것이 여호와가 기대한 모습, 여호와가 바라는 태도와 자세가 아니라, 전형적인 우상 종교, 이방 종교적 태도요 반응이었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패망하였고 성전은 파괴되었고, 신전 기물은 바벨론의 신전으로 옮겨졌고, 제사장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우상이 득실거리는 바벨론에서 바벨론의 종교에 익숙해졌습니다. 바벨론의 종교, 바사의 종교 행위와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본문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3. 낭독하고, 해석하여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 지라는 감동적입니다. 과연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율법책을 어떻게 해석하였을까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설명하는 주는 것은 원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주 행하시던 사역이고, 하나님이 사역자들에게 당부하신 사역으로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신명기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교육방식, 제사장이나 율법사나 서기관들이 백성들을 모아놓고 율법을 낭독하고, 설명해 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체계화 되어서 아예 일주일마다 성전이나 회당에 모여서 율법을 공부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복음서에 자주 나옵니다.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설명하여 예수님도 인정해 주셨습니까? 유대교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누리며 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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