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 선포 단/에/스/느 강해 T기본글꼴 기본글꼴✔ 나눔고딕✔ 맑은고딕✔ 돋움✔ ✔ 뷰어로 보기 에스라 강해 1 / 이루게 하시려고 / 에스라 1:1 조회 수 2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Extra Form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f3Ip2sF7o [에스라 강해 1] ‘이루게 하시려고’ Ⅰ.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1. 에스라서의 구성 에스라는 내용상, 시대상 1~6장, 7~10장으로 구분됩니다. 전반부는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조치하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포로들이 귀환을 하고,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략 16년 정도의 이야기이고 에스라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반부는 에스라가 바사의 관료로 유대로 파견 와서 유대의 상황을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유대의 총독으로 오는 느헤미야와 같은 시기, 같은 시대, 같은 활동을 합니다.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대략 60년 정도의 공백이 있고, 당시 유대의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고 대신 당시 바사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상황이 에스더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하였고(BC586), 마지막이 벨사살 왕(단5장), 혼란의 시기에 메대의 다리오 왕(단6장), 경쟁시대를 마감하고 등장한 새로운 제국이 ‘바사’, 첫 번째 왕이 ‘고레스’(키루스)입니다. 없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세력이 미약하다가 조금씩 강해지면서 주변의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해 가고 마침내 그 당시 강대국이던 바벨론을 정복함으로서 바사가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는 이미 왕이었는데, 왕으로서 여러 전쟁을 하고 여러 나라들을 정복해 오고 있다가, 드디어 바벨론을 물리치고 모든 경쟁국들을 제거하고, ‘고레스 대왕’으로 등극한 첫해라는 의미입니다. 3. 유대인, 유대교 바벨론, 바사 시대에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현상 하나는 ‘유대인’이라는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을 부르는 명칭은 초기에는 ‘히브리인’으로, 창세기나 출애굽기에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부를 때 사용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 때에는 특별한 명칭이 없었습니다. 북 왕국은 패망하여 사라졌고, 남 왕국은 패망하여 백성들 중에 일부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바벨론 사람들의 관점에서 포로들은 유대라는 나라의 사람들, 유대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유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교’라는 종교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거의 하나님을 섬지기 않고 늘 우상을 섬겼고, 대표가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패망한 후부터 원래 하나님이 계시하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 신앙과는 전혀 다른 신흥 종교를 만든 것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에서는 아예 다른 신을 섬겼고, 유대교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Ⅱ. 이루게 하시려고 1. 하나님의 예언 에스라서에 나오는 내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여호와께서’(1절)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신 분,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명령을 하지 않았고, 예레미야는 과업을 이행하려고 열심을 다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는 유다가 패망한다는 것, 또 하나는 백성 중 일부가 바벨론으로 끌려간다는 것, 마지막이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망한다는 것과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은 예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저절로 유다는 망할 것이고,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끌려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망해가고 있는데 자기들만 모르고,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이 굳이 예언을 통해서 ‘너희들 그러면 망한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라’고 주의 또는 권고를 하셨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포함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주의, 권고를 해 주신 것입니다. 2. 70년이 차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의 핵심은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올아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5:12, 29:10, 단9:2). 축복예언, 백성들의 행동에 의하면 생길 수가 없는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고 일하셔서 이런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수고하시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이기에 70년이 지난 후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에게 ‘말씀을 이루라’고 요청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은 예언을 기억하시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이런 원리나 방식을 은혜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역 패턴입니다. 모든 수고는 하나님이 하시고, 모든 혜택은 인간이 누리는 것, 이것을 은혜라고 하고, 이것을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3. 무엇을 할까? 70년 동안 유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 명령하신 것, 자격 조건으로 내걸으신 것이 있습니까?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일 뿐, 사람들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바벨론에서 절대로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면 안 된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벨론의 신들에게, 금으로 세워진 어떤 신상에게도 절하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포로들은 70년이라는 기간도 신경 쓸 것이 없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할 것도 없고 아주 심플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스2장, 느7장에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어떻게 해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인간하고 거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근과 채찍으로 인간을 다루지 않으십니다. ‘너 하는 것 봐서, 네가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고, 세상에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이런 방식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를 아셔야 신앙생활이 두렵지가 않고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아셔야 삶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4. 더 빨리? 더 늦게?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이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지, 무조건 하나님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이 기준을 제시하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경우는 없으며, 본인이 안 가고 싶은데 억지로 끌고가는 경우도 없습니다. 포로들이 귀환할 때에 하나님이 돌아가게 해 주시지만, 바벨론에서의 삶이 더 좋아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끌고 가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유익,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70년이 차면 돌아오리라’고 하셨으니 무조건 70년이 차야합니까? 만약 70년이 되어도 유대인들이 스스로 돌아갈 능력도 실력도 없을 때 하나님이 돌아가게 해 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서 대략 40년쯤 지났을 때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어 돌아갈 수 있는데도 70년을 채워야 한다면 억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하신다’, ‘70년을 채워야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입니다. 유대 백성이 아무리 패역해도, 아무리 자격이 없어도 70년이 차면 은혜로 포로들이 돌아오게 해 주십니다. 반대로 유대 백성들이 너무나 신실하게 변화된다면, 단순히 정세가 백성들에게 유리하다면 70년과 상관없이 포로들이 돌아오게 해 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말씀을 바꾸십니다. 이것을 ‘하나님도 말씀을 바꾸신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과연 인간을 위해 주시는 분이구나!’라고 감격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셔서 하나님으로 인해 자유와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Prev 에스라 강해 10 / 즐겁게 하시고 / 에스라 6:13-22 에스라 강해 10 / 즐겁게 하시고 / 에스라 6:13-22 2023.07.30by 에스더 강해 7 / 대적과 원수 / 에스더 6:1-7:10 Next 에스더 강해 7 / 대적과 원수 / 에스더 6:1-7:10 2023.09.24by 0 추천 0 비추천 Facebook Twitter Google Pinterest KakaoStory Band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댓글 쓰기 에디터 선택하기 ✔ 텍스트 모드 ✔ 에디터 모드 ? 글쓴이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 홈페이지 댓글 쓰기 에디터 사용하기 닫기 글쓴이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 홈페이지 제목+내용제목내용댓글이름닉네임아이디태그 검색 List Zine Gallery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예배 날짜 조회 수 34 에스라 강해 9 / 하나님의 선지자들 / 에스라 5:1-5 2023-07-23 16 33 에스라 강해 8 / 중단되니라 / 에스라 4:7-24 2023-07-16 21 32 에스라 강해 7 / 홀로 건축하리라 / 에스라 4:1-6 2023-07-09 11 31 에스라 강해 6 / 총독, 제사장 / 에스라 3:8-13 2023-07-02 8 30 에스라 강해 5 / 기록한 대로 / 에스라 3:1-7 2023-06-25 8 29 에스라 강해 4 / 돌아온 사람들 / 에스라 2:1-70 2023-06-18 8 28 에스라 강해 3 /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 / 에스라 1:1-11 2023-06-11 9 27 에스라 강해 2 / 감동시키시매 / 에스라 1:1-4 2023-06-04 10 26 에스라 강해 10 / 즐겁게 하시고 / 에스라 6:13-22 2023-07-30 9 » 에스라 강해 1 / 이루게 하시려고 / 에스라 1:1 25 24 에스더 강해 7 / 대적과 원수 / 에스더 6:1-7:10 2023-09-24 9 23 에스더 강해 6 / 소원이 무엇이냐 / 에스더 5:1-14 2023-09-17 4 22 에스더 강해 5 / 법률이 달라서 / 에스더 4:1-17 9 21 에스더 강해 4 / 너의 소견에 좋을대로 / 에스더 3:1-15 2023-09-03 9 20 에스더 강해 3 / 왕후로 삼은 후에 / 에스더 2:1-18 2023-08-27 5 19 에스더 강해 2 / 옳게 여긴지라 / 에스더 1:13-22 2023-08-20 8 18 에스더 강해 1 / 아하수에로 왕 때에 / 에스더 1:1-14 2023-08-13 8 17 부활 주일 설교 / 우리는 증인이요 / 사도행전 5:28-32 2023-04-09 33 16 다니엘 강해 9 /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 다니엘 3:19-30 2023-03-12 19 15 다니엘 강해 8 / 금 신상에 절하라 / 다니엘 3: 1-18 2023-03-05 23 Search 검색 제목+내용제목내용댓글이름닉네임아이디태그 쓰기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GO 말씀 선포 단/에/스/느 강해 번역본 비교(단/에/스/느) 성경가이드1(창-수) 성경가이드2(삿-에) . .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f3Ip2sF7o [에스라 강해 1] ‘이루게 하시려고’ Ⅰ.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1. 에스라서의 구성 에스라는 내용상, 시대상 1~6장, 7~10장으로 구분됩니다. 전반부는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조치하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포로들이 귀환을 하고,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략 16년 정도의 이야기이고 에스라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반부는 에스라가 바사의 관료로 유대로 파견 와서 유대의 상황을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유대의 총독으로 오는 느헤미야와 같은 시기, 같은 시대, 같은 활동을 합니다.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대략 60년 정도의 공백이 있고, 당시 유대의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고 대신 당시 바사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상황이 에스더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하였고(BC586), 마지막이 벨사살 왕(단5장), 혼란의 시기에 메대의 다리오 왕(단6장), 경쟁시대를 마감하고 등장한 새로운 제국이 ‘바사’, 첫 번째 왕이 ‘고레스’(키루스)입니다. 없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세력이 미약하다가 조금씩 강해지면서 주변의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해 가고 마침내 그 당시 강대국이던 바벨론을 정복함으로서 바사가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는 이미 왕이었는데, 왕으로서 여러 전쟁을 하고 여러 나라들을 정복해 오고 있다가, 드디어 바벨론을 물리치고 모든 경쟁국들을 제거하고, ‘고레스 대왕’으로 등극한 첫해라는 의미입니다. 3. 유대인, 유대교 바벨론, 바사 시대에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현상 하나는 ‘유대인’이라는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을 부르는 명칭은 초기에는 ‘히브리인’으로, 창세기나 출애굽기에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부를 때 사용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 때에는 특별한 명칭이 없었습니다. 북 왕국은 패망하여 사라졌고, 남 왕국은 패망하여 백성들 중에 일부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바벨론 사람들의 관점에서 포로들은 유대라는 나라의 사람들, 유대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유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교’라는 종교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거의 하나님을 섬지기 않고 늘 우상을 섬겼고, 대표가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패망한 후부터 원래 하나님이 계시하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 신앙과는 전혀 다른 신흥 종교를 만든 것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에서는 아예 다른 신을 섬겼고, 유대교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Ⅱ. 이루게 하시려고 1. 하나님의 예언 에스라서에 나오는 내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여호와께서’(1절)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신 분,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명령을 하지 않았고, 예레미야는 과업을 이행하려고 열심을 다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는 유다가 패망한다는 것, 또 하나는 백성 중 일부가 바벨론으로 끌려간다는 것, 마지막이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망한다는 것과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은 예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저절로 유다는 망할 것이고,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끌려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망해가고 있는데 자기들만 모르고,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이 굳이 예언을 통해서 ‘너희들 그러면 망한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라’고 주의 또는 권고를 하셨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포함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주의, 권고를 해 주신 것입니다. 2. 70년이 차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의 핵심은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올아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5:12, 29:10, 단9:2). 축복예언, 백성들의 행동에 의하면 생길 수가 없는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고 일하셔서 이런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수고하시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이기에 70년이 지난 후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에게 ‘말씀을 이루라’고 요청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은 예언을 기억하시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이런 원리나 방식을 은혜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역 패턴입니다. 모든 수고는 하나님이 하시고, 모든 혜택은 인간이 누리는 것, 이것을 은혜라고 하고, 이것을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3. 무엇을 할까? 70년 동안 유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 명령하신 것, 자격 조건으로 내걸으신 것이 있습니까? 70년이 차면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일 뿐, 사람들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바벨론에서 절대로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면 안 된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바벨론의 신들에게, 금으로 세워진 어떤 신상에게도 절하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포로들은 70년이라는 기간도 신경 쓸 것이 없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할 것도 없고 아주 심플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스2장, 느7장에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어떻게 해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인간하고 거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근과 채찍으로 인간을 다루지 않으십니다. ‘너 하는 것 봐서, 네가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고, 세상에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이런 방식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를 아셔야 신앙생활이 두렵지가 않고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아셔야 삶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4. 더 빨리? 더 늦게?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이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지, 무조건 하나님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이 기준을 제시하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경우는 없으며, 본인이 안 가고 싶은데 억지로 끌고가는 경우도 없습니다. 포로들이 귀환할 때에 하나님이 돌아가게 해 주시지만, 바벨론에서의 삶이 더 좋아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끌고 가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유익,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70년이 차면 돌아오리라’고 하셨으니 무조건 70년이 차야합니까? 만약 70년이 되어도 유대인들이 스스로 돌아갈 능력도 실력도 없을 때 하나님이 돌아가게 해 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서 대략 40년쯤 지났을 때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어 돌아갈 수 있는데도 70년을 채워야 한다면 억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하신다’, ‘70년을 채워야 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입니다. 유대 백성이 아무리 패역해도, 아무리 자격이 없어도 70년이 차면 은혜로 포로들이 돌아오게 해 주십니다. 반대로 유대 백성들이 너무나 신실하게 변화된다면, 단순히 정세가 백성들에게 유리하다면 70년과 상관없이 포로들이 돌아오게 해 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말씀을 바꾸십니다. 이것을 ‘하나님도 말씀을 바꾸신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과연 인간을 위해 주시는 분이구나!’라고 감격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셔서 하나님으로 인해 자유와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