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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강해 16] ‘가증한 일’
Ⅰ. 왜 성전을 재건했을까?
1. 규정이 아니라 대화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상하 관계, 주종 관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명령, 법, 규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하는 관계이고 서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인간에게 질문하기도 하시고, 인간의 말을 듣기도 하시고 대답도 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타종교의 신, 우상들과는 완전히 다른, 거룩하신 분으로 가장 대표적인 속성이 말씀하시는 분,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인간이 할 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말씀,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직설적으로 ‘내가 한다!’라고 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우회적으로, 마치 인간에게 지시하거나 요구하는 것같이 말씀하시는데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의미를 가지는 방식으로 표현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와서 보라’(요1:19)은 인간에게 ‘와서 보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역을 행하여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우리의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요6:53~57)는 우리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자신을 내어주는 사역을 하시겠다는 선포입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찾는다’(렘5:1)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선포입니다. 유사한 표현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의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인이 예배하는 장소에 대해 질문하자(요4:20)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이란 달랑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뿐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뿐이었는데 그들 말고, 하나님이 누구를 찾습니까? 그렇게라도 예배하는 자들이 그들뿐인데, 그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데, 그 와중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어디서 찾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찾으러 강림하신 것이 아니고,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러 이스라엘 전역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십자가 사역을 행하심으로 죄인들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선포입니다. 기독교는 늘 인간이 해야 할 일 때문에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을 기대하며, 그 사역의 결과를 누리는 종교입니다.
2. 이스라엘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신으로 생각하고, 구약의 종교를 이스라엘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인 유대교의 관점, 유대교적 사고방식이지 결코 기독교의 관점,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구약의 마지막 부분은 히브리 민족이 회복되는 이야기,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이야기,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라는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시대 전부터 하나님의 예언이 있었고 하나님의 예언은 하나님이 선포하시고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하나님이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성전이 파괴될 때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면서 성전 재건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아무도 준비하지 않았고, 아무도 노력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가 됩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유대 사람, 바사 사람,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은 예루살렘이나 유다를 떠나 바벨론과 바사 지역에서도 사역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유대인만 아니라, 히브리 민족 사람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감동시켜서 일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일하시는 분임을 보고 듣고 배워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왜 성전을 지었을까?
성전은 파괴되고, 기물은 우상 신전에 놓여 졌기에 백성들은 여호와께 불순종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여호와를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백성은 고사하고, 나라는 고사하고 자기 성전, 자기 기물조차 지키지 못하는 신이 무슨 신이냐고, 그러면서 무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고 예언을 하느냐고 비아냥 거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이 일하셔서 고레스를 감동시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니다. 백성들이 화들짝 놀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백성들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사의 왕이, 온갖 우상을 섬기는 왕이 여호와의 성전의 기물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심지어는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지으라고 모든 지원을 다 해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근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틀린 생각이 바뀌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저들의 생각을 변화시켜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을 짓는다고 하나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전이 없다고 하나님이 불쌍한 것이 아니고, 성전이 있다고 하나님이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예언대로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포로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 아니고, 성전이 재건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강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 가증한 일
1. 백성들의 반응
1차 포로 귀환한 사람들이 기쁘고 감사해서 여호와께 제물도 드리고 절기도 지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여호와에게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실체가 성전 재건 공사에서 확인됩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서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었고, 모든 지원을 다 해 주었는데 어떤 사람들을 참여 시키느니 안 시키느니로 싸우면서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누구를 포함시키고 누구는 제외시킬 어떤 기준도 없고 어떤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 아니었으면 아예 시작도 안 되었고, 하나님이 세운 고레스 아니었으면 진행되지 않았을 일 상황에서도 자격을 따지고 시비를 걸고 싸우는 것이 죄인입니다. 공사를 중단시키고 15년 동안 방치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시 시작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귀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성전 짓는게 급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집 짓는게 더 급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지었고, 여호와의 성전에 대해서는 ‘지금은 지을 때가 아니다’라고 변명만 해 대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이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또 사람들을 감동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고레스 왕이 내렸던 조서도 발견되게 하고, 공사 후원도 다시 이어지게 하고 예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예언들도 기억나게 하고 기어코 성전이 완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장면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열심을 내지 않으냐고 백성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누가 중단시켰냐고 책임을 추궁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징계나 형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을 위해 일해 주십니다. 그들이 중단시킨 일, 뒤처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언제나 우리 편이시고, 우리를 위해 일해주시는 분입니다.
2. 가증한 일
1차, 2차 귀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전의 종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교 행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여호와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이 선포하던 예언들을 곰곰이 묵상했어야 합니다. 예전에 하던 종교 활동, 종교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반응을 하셨었는지를 분별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