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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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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 에스겔 40 ~ 48

. 에스겔의 시대

 

1. 에스겔의 활동시대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 시대에 유다가 바벨론에 끌려간 2차포로(주전 598년경) 때에 바벨론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으나(1:3) 유다의 성전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바벨론에 이주한 후에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말씀 임하여 선지자 사역을 시작합니다. 왕정시대에 성전과 제사장은 종교시설, 종교 종사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관과 인물이었습니다. 이미 나라는 앗수르, 애굽, 바벨론의 압력을 받고 있었고 성전은 조공을 바차기 위해 은금을 약탈하는 장소로 전락했습니다. 에스겔도 제사장으로서 다분히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며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도 종교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였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사장 집단 내부에서 종교적 목소리가 나온 기록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무관한 왕과 제사장 집단과 대조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선지자가 된 것 자체가 이적입니다.

 

2. 국가와 종교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들과 같이되어 왕정과 국가를 형성한 이후부터는 모든 초점이 나라, 국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은 열방을 향한 거룩한 백성의 샘플이었지만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무관한 독립 국가이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 내내 신을 섬기지 않은 기간이 없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종교를 폐쇄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때로는 하나님을, 때로는 여러 우상을 섬겼을 뿐입니다. 종교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종교적 변신을 자유롭게 행했었습니다. 에스겔보다 앞서 여러 선지자들이 계속하여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에 대하여 예언하였지만 제사장 집단은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북 이스라엘이 패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에스겔보다 앞서 이사야와 동시대에 예레미야가 활동했지만 유다는 여호와의 성전이나 종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선지지가 등장하고 하나님의 예언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로운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왕이나 제사장, 백성들에게는 무관심한 일이었습니다.

 

3. 백성들의 기대

하나님의 선지자와 예언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에게 곤란을 당하는 때에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집단과 무관하게 등장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 패망과 포로를 예언하었기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여호와의 예언이 이스라엘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 중의 한명이었고, 그 동안 하나님의 편에서 사역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 자신도 하나님이 영광을 보여주고, 다양한 환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인 겔40~48장은 성전의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의 패망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성전의 재건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무관한 예언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17명의 문서 선지자 중에 구체적으로 성전의 재건을 언급하거나 직접 관련된 선지자는 서너 명에 불과합니다.

 

 

. 성막, 성전의 의미

 

1. 하나님과 신앙

일반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신에게 투사한 것이지만 여호와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 대한 내용이 타종교와 기독교과 구별되고, 신의 사역원리와 신과 관계된 종교 양식이 타종교와 기독교가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피조물들에게 경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창조주로서의 어떤 숭배나 기념 행위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또한 종교적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수단이 없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인간적 수단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인간을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으시고, 인간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이 반응을 바꾸실 의향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2. 출애굽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세우라고 하신 일은 하나님의 성품과 연계할 때 전혀 예상 밖의 조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막을 세우라고 하신 시기 또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 선택하시고 민족과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도 성막이나 종교양식에 관해서는 단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많아진 후, 출애굽하여 집단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후, 애굽에서 국가 종교를 경험하고 가나안에서 부족 종교를 경험하게 되기 전에 성막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종교 제도를 언급하십니다. 불과 70명의 작은 가족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장정만 60만 명이 넘는 집단이 되었기에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취할 조치는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광야기간과 사사시대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곧 바로 사무엘 시대처럼 왕을 세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천부장, 백부장 제도로 백성들을 조직한 것입니다.

 

3. 성막을 세우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취할 종교적 단계를 이미 아시기에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이 성막을 세울만한 여력이 전혀 없을 때에 하나님이 친히 준비를 시키셨고 감동을 주셔서 이스라엘의 예상을 뛰어 넘는 종교 양식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상징하면서도 일반적 종교의 양식과는 구별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막과 종교 제도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신앙이 타종교와 얼마나 다른지를 인식시키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종교 제도와 행위로는 여호와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성막과 종교 제도는 이스라엘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에만 반응할 뿐 하나님이 맺어주신 인격적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엘리의 자손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여도 멀쩡하게 살아있고, 하나님도 특별한 징계 조치를 내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어찌하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성막과 종교 제도가 이스라엘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못함이 증명된 것입니다.

 

4. 성전을 세우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왕을 요구했고, ‘다른 나라와 같이된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나라의 왕들과 같이 자신을 위해 신의 성전을 세웠습니다. 왕정이 하나님을 대신한 것과 동일하게 성전은 여호와 신앙을 대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제사, 절기, 율법은 모두 백성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내용들이었는데 다윗이 세운 것은 백성의 삶과는 무관한 채 단지 종교를 종교답게 하기 위한 조치들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다윗이 성전을 세우는 것으로 역설의 극대화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가장 종교적인 조치들을 취함으로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구별되지 않는 나라, 하나님이 없어도 되는 나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여호와 성전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성전이 아니라 여러 성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세우셔도, 왕이 성전을 세워도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5. 성막, 성전이 무너지다

성경에 성막이 세워지는 과정은 자세하게 나오지만 이후 성막의 관리나 운영, 성막의 최후의 모습도 거의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성막을 지키지도 않고 이스라엘의 태도에 대해서도 일체 조치가 없으십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다른 여러 성전들이 세워졌고 다양한 종교 행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왕들은 상황에 따라 주력 종교를 여러 번 바꾸었습니다. 필요하면 여호와 성전은 은금을 거두어 조공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히스기야나 요시야 시대의 종교 조치는 여호와 신앙을 위한 종교 개혁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필요에 따른 조치였을 뿐입니다. 선지자가 등장하여 나라의 패망과 성전의 파괴에 대해 언급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나라의 패망이었을 뿐입니다. 만약 여호와 성전이 파괴된다면 여호와의 무능력이 증거 될 뿐 이스라엘의 종교심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예언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포로 귀환 후에 성전을 재건할 의사가 없었고, 조치도 없었습니다.

 

 

. 새 성전의 의미

 

1. 왜 성전인가?

여호와의 성전은 여호와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중요한 요소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성전의 존재 유무가 이스라엘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예언은 성전의 파괴와 재건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나라와 여호와 신앙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우선시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여호와 또는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변신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나라가 중요하지 않고, 독립되고 강한 나라가 백성의 평화와 행복과 직접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책임지시고, 여호와 신앙을 따르는 것이 개인의 삶이나 나라의 유지에 핵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개인의 삶은 공평과 정의를 파괴하고,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나라는 제국의 횡포와 강포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에스겔의 시대, 패망의 직전에 이스라엘은 나라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라고 생각할 때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성전이 재건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전을 언급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사고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삼마

성전 재건에 관한 모든 것 즉 성전을 계획하시는 것도, 필요한 모든 재료도, 성전의 영광과 존귀와 거룩도 모두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재하셔야 만하는 이유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의 환영이나 기대도 없고, 반드시 성전이 필요하지도 않으시면서 굳이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와는 다르게 매우 작고 초라하게 지어졌습니다. 후에 이 성전을 헤롯이 거대하게 재건축하여 예수님 당시에도 백성이 성전에 대한 자부심을 거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목적은 성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3. 성도와 성전

예수님은 성전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성전의 기능을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정시대에 왕과 결합 또는 대결하던 제사장 집단이 아예 정치와 종교를 결합한 새로운 제도를 설립,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여호와 신앙은 종교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죄인임에도 죄인을 위해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구원하심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일관되게 유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도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된 삶을 누리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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