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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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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 요엘 1 ~ 3

. 여호와의 날

 

1. 일곱째 날

성경에 은 창조 때에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이 언급됩니다. 창조 때에는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언급될 뿐 여덟째 날이나 칠일 단위의 순환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마치시니’,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안식하셨으며,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2:1~3)입니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는 창조를 행하시는 사역에 근거하여 구분이 되었고,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라’(2:3)고 합니다. 창조가 마침, 다 이루어짐, 완성이 되었으니 더 이상 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날 이후는 계속 일곱째 날인 것입니다.

 

2. 안식일

에 대한 다른 언급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맛나가 육일 동안 내린 후에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16:23), 다음 날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16:25)에서 처음으로 안식일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언제부터 칠일 단위의 날짜 계산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단지 일곱째 날에 대해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만 합니다. 창조가 완성된 일곱째 날이 칠일 단위에서 일곱 째날에 바뀐 것입니다. 이어 열마디 말씀’(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20:8)는 말씀에 대해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에 대한 설명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고 합니다.

 

3. 여호와의 날

에 대한 새로운 언급은 예언서에서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2:12),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1:15),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30:3),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1:14)와 같이 여호와의 날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의하면 여호와의 날이란 개념이 특정한 날을 의미하거나, 새롭게 등장하는 을 의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시간의 창조자시요 주관자이시기에 창조이래 여호와의 날이 아닌 날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 대한 표현은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있느냐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기준이시며 변하지 않으시기에 하나님을 초점으로 삼으면 동일한 상황이기에 다른 개념, 다른 표현이 등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초점이 인간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개념과 표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 인간이 죄에게 사로 잡혀 창조의 일곱 째 날, 여호와가 복주고 거룩하게 하신 날, 여호와의 날을 누리며 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여호와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도록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내용을 여호와의 날로 표현한 것입니다.

 

4. 죄의 날

성경에는 죄의 날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인간이 죄인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이 곧 죄의 날이다.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에 나타날 현상으로 소개되는 것이 언제나 인간적 측면의 실패입니다. 늙은 자들의 모사, 젊은이들의 열정, 권세자들의 권력, 부한 자들의 재력, 지혜자들의 총명 등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선언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의지하고 기대려고 하는 대상들이 정작 인간을 위로할 수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의 사고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죄를 멸하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는 은혜가 선언되는 것입니다.

 

 

. 슬픔의 날

 

 

1. 애곡하는 사람들

이스라엘에 임박할 상황은 매우 암울합니다. ‘늙은 자들아, 땅의 모든 주민들아’(1:2), ‘취하는 자들아,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1:5), ‘농부들아,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1:11), ‘제사장들아,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1:13)와 같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임할 것입니다. 농사하는 자들은 소산을 기대하는데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1:4)와 같이 전혀 거둘 것이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자들에게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1:5),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1:7),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1:11)가 될 것입니다. 농부들과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에게는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1:11, 12)입니다. 제사장들은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1:13)가 될 것입니다.

 

2. 슬픔의 날

한편으로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 재앙의 날로 소개됩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1:15),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1:16~20),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2:1~2),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2:3),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럽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2:4~11)입니다. 여호와는 인간에게 진노하지 않으시고 형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죄인들의 범하는 죄는 당연히 죄의 결과를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죄의 결과와 하나님의 형벌을 뒤집어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는 양식입니다.

 

3. 이제라도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2:15),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2:17)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근거는 인간의 수고와 선한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기 백성 사랑하심입니다.

 

 

. 구원을 얻으리니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날은 슬픈 날, 진노의 날이 아니라 회복의 날, 기쁨의 날입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2:18~20),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2:21~22),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2:23~26),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2:27)입니다.

 

2. 그 후에 내가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2:29),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2:32)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순서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즉 자녀들, 늙은이, 젊은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해 주셔야 하고, 결국 구원을 받게 해 주셔야 합니다. 또 중요한 핵심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입니다. 타종교에는 인간이 선과 의를 행하여 공덕을 쌓지 않고는, 신을 감동시킬 만한 예물을 드리지 않고는 신의 은총을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신의 이름을 부르는것으로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영을 주시고,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으로 결과로, 열매로 인간이 선과 의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돌아오게 할 그 때에

하나님은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하셨기에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라니’(3:2)가 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민족들에게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3:9~10)은 어떤 세력도, 어떤 저항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은혜, , 치유를 막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뜻은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4)입니다.

 

4.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3:16~17)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계획이나 다짐, 각오, 열정, 호소, 간구 등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인간이 죄인이 된 후 죄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어떤 계획도, 어떤 열심도, 어떤 호소도 표현한 경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빌미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라도 요구하시면 이로서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완성하시고, 책임지실 때에 죄인들의 사고방식에 없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이 나를 위한 분, 여호와라는 분임을 알게 되고, 고백하게 되고,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에는 네가 믿으면, 내 이름을 부르면, 영접하면, 사랑하면, 순종하면등의 표현이 없습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너는 내 백성으로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조건 같지 않은 조건적 표현을 하시는 이유는 이것조차도 할 수 없는 죄인의 실체를 드러내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심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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