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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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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말씀 : 오바댜, 요나 1 ~ 4

. 네가 행한 대로 (1)

 

1. 행복한 삶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아브람을 부르셔서 계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죄인들은 행복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죄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죄는 생존경쟁, 적자생존을 주장할 때에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베푸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도를 행하여 모든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대하시는 모습에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세우신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방에게 손해를 끼치게 하신 적이 없으며, 이스라엘이 열방을 위하여 부담과 짐을 지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2. 죄인의 자랑, 기만

3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는 모든 죄인의 로망입니다. 인간의 소망은 행복이고, 인간의 자랑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책망하지 않으며, 행복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것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복을 위한 죄적 인식과 행동에 대해 교만하다고 하며, 속았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단과 방편들이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죄인의 방법대로

에돔은 유다와 같은 족속출신으로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지기 않을 것’(1:12~14)이었어야 하는데 너도 이방인이나 외국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1:11)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대하시는 자세는 긍휼과 은혜를 통한 계시입니다. 죄인들이 깨닫지 못할 경우 하나님이 사용하는 차선책이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1:15)입니다.

 

4. 누릴 것이라

죄인들은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죄의 마음이 함께 행복하기보다 더 강하기에 쏠릴 뿐입니다. 하나님은 강자로 자처하는 에돔이 완전히 황폐하여 질 것(1:5~7)과 약자인 야곱의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1:17)을 말씀하십니다. 특정한 에돔과 야곱의 관계가 아니라 일반적인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역전될 수 있음을 통하여 지금 강자들이 가지고 있는 교만한 인식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야곱 족속의 상황이 변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야곱의 족속처럼 에돔과 열방도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오해 (1~2)

 

1. 여호와 보시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10, 12, 18, 21, 25)였지만 인간이 범죄한 후 세상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5)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세상을 늘 지켜보시며 죄인들을 도와주시려고 합니다. 노아 시대에도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6:11~13)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하나님이 인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18:20) 친히 방문하시어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니느웨 성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1:2)이기에 하나님이 요나를 파송하시어 파멸을 막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사 치유하시는 분입니다.

 

2. 요나의 선택

요나는 생각이 있는 자요, 분별이 있는 자였습니다. 니느웨는 유다의 대적인 앗수르의 수도였고, 하나님이 니느웨의 악독을 들었기에 가서 외치라고 하시지만 패망이 임할 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만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요나는 특별히 불순종한 악인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죄인입니다. 니느웨가 망하는 것은 자기와 유다에 유익을 주는 것이기에 현명한 결정이었고, 신의 명령을 어겼기에 신의 진노가 임할테니 신의 영역을 벗어나기로 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탄 배가 위험에 빠지자 사공들(죄인들)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1:7)고 제비를 뽑았고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순순히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1:12)고 자백합니다. 사공들은 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자 여호와여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1:14)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요나의 말과 자신들의 생각대로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15)입니다. 자기들의 생각과 행동이 옳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조치

요나가 탄 배가 바다로 가자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1:4)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요나를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선원들이 요나를 던지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1:17)입니다. 니느웨의 악독을 들으시고 진노가 아니라 멸망으로부터 막아주시려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선지자에게 대해서는 진노하사 징계하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의 악독에 대하여 징계하실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자신의 불순종에 대하여도 징계하실 것으로 모두 오해한 것입니다. 요나의 니느웨에 대한 오해를 변화시키려면 요나 자신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삼일 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로 토하니라’(2:10)와 같이 하나님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요나를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4. 요나의 기도

요나는 자신이 도망하는 과정부터 물고기 뱃속에 머무는 과정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생각대로 자기에게 위험이 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결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2:3)와 같이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기도는 신앙의 고백이 아니며, 회개나 감사가 아니라 단지 고난에 처한 사람으로서 살려달라는 간구일 뿐입니다. 성경은 요나의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도라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하여 반대로 행하는 요나를 따라가시고, 죽음의 길을 택하는 요나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자격없는 억지 기도도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3~4)

 

1. 요나의 고집

물고기에서 나온 요나는 생명을 구했고,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하자 여호와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갑니다(3:1~2). 여전히 니느웨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어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인데 겨우 하루 동안 다니며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3:3~4). 요나가 자기가 불순종하여 징계를 받았고, 또 불순종하며 더 큰 징계가 올 것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말씀대로행하였고, 당연히 니느웨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무너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요나는 여호와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2. 돌이킨 것을 보시고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 지라’(3:5),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조서를 내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신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신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3:6~9)고 합니다. 사공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종교적 반성의 행위를 통하여 신의 뜻을 변개시켜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행위 대신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십니다(3:10). 하나님의 재앙이 철회된 것이 아니라 악행을 그쳤기에 악행의 결과가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3. 요나의 한계

요나는 니느웨가 멀쩡한 것에 대하여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4:1)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자기가 불순종의 댓가로 죽음의 위기를 당한 것처럼 니느웨가 악독의 대가로 망하는 것이 정당한데 하나님이 불의하게 일한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완전 비아냥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4:2)라고 한 후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4:3)라고 대듭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행하시지 않았기에 역으로 자신의 불순종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요나로서는 당연한 주장인 것입니다.

 

4.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는 성을 내고 하나님은 달래고, 요나는 죽으려고 하고 하나님은 살려내십니다.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즉 옳지 않다고 알려주십니다. 여전히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를 기대하는 요나를 깨우치기 위하여 박넝쿨 사건을 행하십니다. 자기에게 필요하였고 자기를 기쁘게 하였던 박 넝쿨이 사라진 것에 대해 속상해 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고 물으신 후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도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음을 언급하십니다. 죄인도 자기에게 유익했던 것을 아꼈음을 근거로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국수주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죄적인 사고방식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열방주의자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인간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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