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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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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 예레미야 41 ~ 45

. 마땅히 갈 길과 할 일 (41~42)

 

1. 같은 말, 다른 뜻

이미 이스라엘은 두 차례 바벨론으로 포로들이 잡혀갔고, 마침내 시드기야 왕 십일년에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여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죽였고, 유다의 모든 귀족들도 죽였고,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여 바벨론으로 옮겼고,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도 헐었고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내용들이 모두 이루어졌고, 다른 선지자들이 말한 것은 모두 거짓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웠고 그다랴는 과연 바벨론의 총독답게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40:10)고 합니다. 나라가 패망하기 전에 예레미야가 한 말과 나라가 패망한 후에 그다랴가 한 말은 표현상 바벨론을 섬기라로 같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경고와 회복을 포함한 계시의 말씀이었고, 그다랴는 단지 바벨론에 의해 세워진 총독의 입장에서 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뿐입니다.

 

2. 암몬으로, 애굽으로

그다랴에게 모여 들었던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40:7, 13)과 요하난이 그다랴의 말을 들은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이스마엘을 보낸 것’(40:14)에 관한 살해 위협을 경고하지만 그다랴가 듣지 않자 내가 가서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40:15)고 암살을 자원하자 그다랴가 이도 듣지 않았고, 결국 이스마엘과 열 사람이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까지 죽였고(41:3), 이틀 후에는 여호와의 성전에 나아가려던 80명을 만나서 그 중에 70명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졌고(41:7) 마침내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위임하였던 모든 백성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났습니다(41:4~10). 중간에 요하난과 군 지휘관 일행을 만나자 피하여 기어코 암몬 자손에게로 갔습니다(41:15). 요하난 일행은 애굽으로 가려고 떠납니다(41:17). 참으로 희한하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언급하신 바벨론은 제외하고 엉뚱하게도 한편에선 암몬으로, 다른 한편에서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말씀만은 듣지 않는 것입니다.

 

3. 마땅히 갈 길과 할 일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에게 나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하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슴대로 행하리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라고 합니다(42:1~7). 하나님은 이미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계시하셨고, 이스라엘 역사 내내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복을 누리게 하는 삶의 원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만을 구하는 것이 죄인들의 종교생활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던 사람들의 느닷없는 신실한 신앙적 요구는 사실일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신앙은 인간의 각오와 다짐으로 시작되지 않고, 강화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신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인간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할 때 이미 여호와의 말씀을 대신하는 자신들의 기준과 결정이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않는 이상 어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들의 기준과 동일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 행위는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42:20)에 불과합니다.

 

4. 디테일한 하나님

하나님의 응답은 질문자의 말과 태도에 맞추어 매우 섬세합니다. 단지 필요한 대답만 단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하난 일행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하였기에’(41:18)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고 하신 후 그 근거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거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42:11~12)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단지 상황을 모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계시가 본질입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라’(42:10)고 다짐까지 해 주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42:13~14)으로 저들의 판단 기준과 근거를 정확히 지적해 주시고,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42:15, 17)으로 저들의 속내까지도 완전히 들추어 내 주십니다. 또한 더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응답대신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때에 임할 결과도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를 포함하여 상세하게 알려주십니다(42:16, 17, 18, 22).

 

 

. 본래 하던 대로 (43~44)

 

1. 거짓을 말하는도다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에 이어 바룩의 음모설을 제기하고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함께 하던 모든 사람들과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데리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게 됩니다(43:1~7). 죄인들은 무의식중에도 죄의 원리대로 행동합니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설명하는 대신 상대방을 모함하고 자기의 행동을 변명하는 방식을 따릅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시킨 노역에 힘들어 하던 이스라엘이 노역이 가중되자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5:21), 홍해 앞에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주게 하느냐’(14:11), 신 광야에서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16:3)와 같은 억지소리를 합니다. 죄인을 모르면 이런 억지소리에 억울함과 분통함이 넘치게 되지만 죄인을 알면 안타까움과 긍휼함이 생깁니다.

 

2. 내 종 느부갓네살

하나님은 지역 신()이 아니기에 예레미야가 애굽의 다바네스로 끌려갔어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이스라엘이 1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2예표적 사건이 등장합니다. 유다 사람의 눈 앞에서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바로의 궁전 대문의 축대에 감추게 하시고 내가 내 종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 왕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놓고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43:9~10)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은 내 종으로 명하시고, ‘내가’ ‘내 종을 명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심을 선언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이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43:11)이며,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사르리라’(43:13)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무능력하여 바벨론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신 애굽까지 왔으나 바벨론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애굽까지 치는 것입니다. 실상은 하나님이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3. 나의 종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의도는 절대로 징계, 심판, 저주가 아닙니다. 죄인에게 징계, 심판, 저주는 죄된 행동에 상응하는 형벌의 의미가 될 수는 있지만 죄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효력은 없습니다. 행동은 언제나 결과를 동반하기에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징계를 내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행하시는 모든 조치는 계시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나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44:4) 이스라엘이 행한 악행,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 그리고 그 결과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이 폐허와 황무지가 된 것, 자기 영혼을 해하며 백성이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된 것,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는 것을 지적해 주십니다(44: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함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일이 하나님과 무관한, 단지 강대국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44:12),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44:13) 등과 같이 말씀-성취의 패턴으로 설명하여 주십니다.

 

4. 본래 하던 대로

예루살렘에서는 물론 심지어는 애굽의 다바네스에까지 이르러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기대와는 달리 애굽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대답은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다바르)을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다바르) 모든 말을 반드시 시행하여’(44:16)입니다. 의도적으로 여호와가 말하는 것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대조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하겠다고 합니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릴 대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그것을 폐한 후에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다고 합니다(44:16~18). 이것이 죄인의 전형적인 반응, 어쩔 수 없는 반응입니다. 죄인이라는 존재를 의인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죄인의 사고,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수단, 방법은 없습니다.

 

5. 표징이 이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시지만(44:20~23) 이스라엘이 듣지 아니하기에 차라리 너희 서원을 성취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44:25)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각각 말한 대로’(다바르, 44:17) 행하여 내 말과 그들의 말 가운데서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리라’(44:28)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임한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표징으로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44:30)고 하시며 내가 한 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44:29)입니다. 표현은 재난, 이지만 사실은 계시인 것입니다.

 

 

. 네 생명을 건지리라 (45)

 

1. 바룩아

시대를 잠시 거슬러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바룩에게 임한 말씀이 등장합니다(45:1).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였고(36:4),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고(36:8, 10), 백성들을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는 음모를 받았고(43:3),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43:6). 바룩이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였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45:3)라고 힘들어하기에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45:5)고 책임지고 보호하실 것을 선언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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