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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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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이사야 7 ~ 12

 

. 하나님의 징조 (7~8)

 

1. 무기력한 왕

이스라엘이 왕이 세워짐으로 백성이 유익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왕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싸우기는커녕 나라를 분열시키고, 백성을 노역에 동원하고, 자신의 왕위를 위한 반란의 싸움을 할 뿐입니다. 유다에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나 나라에 위험이 있을 때 왕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어떠한 조건도, 상황도, 인물도, 신앙도 없습니다. 아람(르신 왕)과 이스라엘(베가 왕)이 동맹하였다는 소식에 왕(아하스)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을 뿐입니다(7:2).

 

2. vs vs vs

대적들은 유다를 쳐서 쓰러뜨리고,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자고 말하고(7:6) 여호와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대적들의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4, 7),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라’(7:10)고 말하십니다. 아하스 왕은 대적들의 말은 현실적 상황으로 두려워하고 여호와의 말은 비현실적으로 간주하여 듣지 않습니다. 아하스가 말한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7:12)는 겸손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도움을 구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과연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신지 시험해볼 가치도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인 들을지어다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7:13)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게 하느냐고 탄식합니다.

 

3. 친히 징조를

하나님은 인간의 변화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라 친히 징조를 주시며 변화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징조가 되기 위해 남자가 없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이며, 징조이기에 임마누엘이라고 하십니다. 이사야의 아들에게는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을 주십니다(8:3).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기에 서로 이름을 정해주어 이름을 부르면서 부지중에라도 하나님을 고백하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한편으로는 네가 두려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요(임마누엘), 다른 한편으로는 앗수르와 애굽이 올라와서 노략하여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마헬살랄하스바스). 하나님의 사역은 단순히 도움이 아니고 반드시 승리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징조요, 계시입니다. 이때 계시의 특징은 죄인들의 생각과 다르다또는 하나님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수단 삼아 달성해 내야하는 과업,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 목적은 오직 인간입니다.

 

4. 두려워할 자

하나님이 계시기에 열방 민족들과 먼 나라 백성들은 계획하고 말할지라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7:7, 8:10). 이스라엘은 두려워해야 할 자, 무서워할 자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할 때 어떤 사람이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고 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라고 대답하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8:19, 20).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리며 고통뿐이요 결국에는 자기의 왕과 자기의 신을 저주할 것입니다(8:21).

 

 

. 여호와의 열심 (9~10)

 

1. 여호와의 이름

옛적에는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하나님의 변덕이 아닙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을 비추어주시고,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주실 것입니다. 아마도 압제자는 강하고 승리하기 위해 많은 수고와 노력을 했을 것이고, 고통 받던 자들은 선한 행실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자는 자기의 노고를 강조하고, 약자는 자격조차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사를 멘 자통치하는 자, 관리하는 자를 주실 것인데 그로 말미암아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근원,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며, 인간의 자격과 조건, 수고와 상황과 관계없이 오직 여호와의 열심으로 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심으로 인간에게는 행복을, 하나님에게는 합당한 칭호를 이루어낼 것입니다(9:1~7).

 

2. 여호와의 얼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벽돌이 무너졌으나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백향목으로 대신하리라는 식으로 하나님대신 여전히 자신들이 의지하고 싶은 것을 붙잡고 있습니다(10:10). 르신의 대적, 아람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삼켜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않습니다(10:13). 여호와께서 백성을 인도하는 자 그러나 실상은 미혹하여 멸망을 당하게 하는 장로, 존귀한 자,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를 끊으실 것입니다(10:15). 백성 또한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고 있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없고,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상태입니다(10:17). 백성들의 악행은 불 타오르는 것 같고 백성은 불에 섶과 같아서 곤고함을 당할 것입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도 있습니다(10:1, 2).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얼굴이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9:12, 17, 21, 10:4))입니다. 여호와는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향해 얼굴을 대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펼치실 것입니다.

 

3. 앗수르 사람은

하나님은 아무라도 세우실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세우기에 합당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선한 자를 들어 악한 자를 책망할 수 있으면 가장 좋으련만 악한 자를 들어 더 악한 자를 책망해야 하는 것 즉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그지없습니다(10:5). 이때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가 마치 자신은 의로운 양 교만을 떠는 것 즉 앗수르 왕이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 온 세계를 얻었다’(10:13, 14)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도끼가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는 것, 톱이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는 것,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는 사람을 들려 함과 같습니다(10:15).

 

4.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예언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회개를 촉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이스라엘의 대적자를 쳐서 그의 무거운 짐이 어깨에서 떠나고 멍에가 목에서 벗어지게하시며(10:26, 27), 혁혁한 위력으로 장대한 자를 찍고 높은 자를 낮추실 것입니다(10:33).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게 하실 것입니다(10:20).

 

 

. (11~12)

 

1. 여호와의 영

하나님의 사람은 이새의 뿌리’(11:1, 10)라는 가문과 혈통과 신분이 핵심이 아니라 아무라도 그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의 강림이 핵심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 결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한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가 될 것입니다(11:1~5). 여호와의 영으로 행할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6~9)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2. 여호와를 아는 지식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기는 왕정시대 즉 모든 관심이 나라와 왕에게 모아지던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이스라엘 나라의 부국강병, 특정한 왕권의 안정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환경 등의 개선 및 향상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은 온 인류이며, 하나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죄이며, 하나님이 제시하신 해결책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며, 하나님이 이루어내시는 결과는 모든 인간의 행복, 모든 피조물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 왕들도 백성들도 듣지 않았습니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뜬 구름 같고, 이루어져도 나아질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인간이 듣고, 이해하고, 순종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인간에게 성취되었을 때에 이해하게 되고,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주께서, 여호와께서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서 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11:11),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르시리니’(11:12),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며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11:15)이요,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11:16)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를 찾는 것이 아니며, 백성들 스스로 돌아서라고 채근하는 것이 아니며, 불신앙이나 불의한 행동에 대해 징계,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4. 인간의 반응

7~11장에 예언의 한 단락이 선포되고 12장에 예언의 성취로 나타날 인간의 반응이 소개됩니다.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등입니다. 기독교의 강조점은 그의 행하심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도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때문입니다. 인간이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종교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고에 대해 인간이 반응하는 신앙은 참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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