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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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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 이사야 13 ~ 20

 

. 말씀과 예언

 

1.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 모든 민족, 모든 나라는 동일한 것입니다. 창조가 동일하고, 타락이 동일합니다. 모두가 은혜의 대상, 계시의 대상, 구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특정한 혈통이나 민족, 나라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만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모든 국가에게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절차를 이스라엘에게 보여줌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예표, 샘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먼저, 은혜를 받은 것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은혜를 받을 것이고, 열방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저주, 징계, 형벌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2. 죄와 결과

이사야에는 성경의 다른 책들 보다 유난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선언 이외에도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이 많이 등장합니다. 열방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적이 없기에 율법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배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이미 주신 복을 누리게 되는 생명의 원리이지 불순종하면 징계 받는 심판의 원리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훈인 율법의 존재 여부를 떠나 죄인 된 인간의 기준에서 악으로 인정되는 행위도 당연하게 하나님의 원리를 떠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건, 열방이건 심판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죄의 결과를 자취한 것입니다. 율법의 내용은 하나님과 관계된 특별한 신적(神的) 종교 법안이 아니라 지독히 평범한 인간의 삶의 원리입니다.

 

3. 말씀과 예언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말씀은 이미 사역을 통해, 토라를 통해 온전하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심정, 원리, 방법도 모두 이미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예언은 이미 주어진 내용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단지 대상과 사건과 상황이 다를 뿐 하나님의 반응이나 조치, 기대는 동일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새로운 내용을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반응과 조치를 새롭게 만들어내지만 진리이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과 원리에 따라 일관되게 일하십니다. 예언이 묵시, 이상, 경고, 말씀으로 표현되는 것은 죄인이 알지 못하는 것, 예상하지 못한 것,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신비, 미스테리, 불가해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4. 경고의 예언

예언은 내용에 따라 은혜의 예언’(축복), ‘경고의 예언’(저주)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은혜의 예언은 인간에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 인간 스스로는 예상하지도 못하고, 설령 기대한다고 해도 이룰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일을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권적으로 역사하여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행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야 좋은 것입니다. 둘째, 경고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없어도 이미 인간의 행동에 의해 인간에게 이루어질 결과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저주를 퍼붓고, 심판과 형벌을 내리겠다는 선언이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이 곧 닥칠 결과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심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현재의 악한, 죄된 행동을 중단하여 임박한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야 좋은 것입니다. 두 예언 모두 하나님이, 내가 행한다고 선언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 열방의 하나님 (13~14)

 

1. 바벨론 대한 경고(13)

열방에 대한 경고는 예언의 내용적 대상은 각 열방이지만 정작 이사야는 이 예언을 바벨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선포합니다. 바벨론의 강성함이나 번영함을 부러워하는 자들에게는 바벨론도 죄로 인하여 죄의 결과를 당할 것임을 알게 하고, 바벨론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바벨론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여호와의 날에 황폐할 것이나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대하여도 이스라엘의 대적자이기에 무조건 멸망시키겠다는 횡포가 아니라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13:9),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내가 낮출 것이며’(13:11)입니다. 열방 중에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방식이나, 이스라엘 중에 특정인을 다루시는 방식이나, 바벨론 중에 죄인을 다루시는 방식이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2. 바벨론과 이스라엘

바벨론에 대한 노래(14:4)의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두 나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부르라고 했던 노래들과 동일합니다. 강성하던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이나, 풍성하던 다윗의 성과 성전이 무너지는 것이나 동일하고, 그 이유도 동일합니다. 바벨론은 한 때 압제하던 자요 강포한 성이었으나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십니다(14:4, 5). 바벨론의 왕은 강성할 때에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14:13, 14)고 교만하였으나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모두 놀랄 것이며(14:16),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14:20)는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해 열방의 하나님임을 알려주셨지만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그제사야 많은 열방이 있고, 더 크고 강하고 번성한 나라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광야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열방들과 교통하며 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나라와 같이되기를 소망하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집중했었습니다. 왕정시대에 하나님은 열방들에 대한 경고를 통하여 하나님은 열방의 하나님임을 다시 알리시며,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14:24), 바벨론에 이어 앗수르, 블레셋에 대해 예언하심으로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14:26)고 선언하십니다.

 

 

. 모압, 다메섹에 대한 경고 (15~17)

 

1. 모압(15, 16)

하룻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15:1)만 들으면 일방적인 저주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모암이 패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16:6)입니다.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의 패망과는 대조적으로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16:5)입니다. 강조점은 다윗의 장막이 아니고, ‘왕위가 아니고 강성함이나 번성함이 아니라 충실함, 정의, 공의입니다.

 

2. 바른 신앙

여호와의 경고대로 모압에 큰 황폐함이 임할 때에 모압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16:12). 이방종교, 우상종교는 인간의 마음, 가치, 개념, 원리, 삶을 교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복과 저주를 내린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열방을 향한 경영을 선언하셨고, 모압의 교만한 행동은 패망을 잉태하였기에 모압의 종교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가 되기 위해서는 막연한 예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열방에 대한 예언은 매우 구체적 상황이 묘사되고, 지명도 언급되고, 백성들의 반응도 표현되고,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16:14)로 구체적 시한이 선포되기도 합니다. 만약 경고를 듣고 열방이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도리어 기뻐하실 것입니다.

 

3. 다메섹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17:1),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숲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17:9)이고 그 이유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17:10)입니다. 열방들은 모두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 애굽에 대한 경고 (18~20)

 

1. 애굽에 대한 경고

애굽에 대한 경고를 통해 열방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역사하심으로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19:3)입니다.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이 우둔하여졌으니’(19:11), ‘소안의 방색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그들은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19:13)입니다.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 같으냐? 안다면 네게 말할 것인데 모르기에 말하지 못할 것이다’(19:12)입니다.

 

2. 징조와 증거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의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19:18~20)입니다. 애굽이 자원하여 이런 일을 행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바벨론에 패망할 때 유대인들이 애굽으로 도망하여 실제로 애굽에 여호와의 성전에 세워짐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목적은 징계가 아니고 계시이기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19:21),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19:22)입니다.

 

3. 징조와 예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애굽과 구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게하는 징조와 예표까지 주십니다(20:2, 3). 나름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남녀노소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드러낼 정도가 되어도 하나님의 징표나 예표가 없다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징계가 목적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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