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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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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 역대상 23 ~ 29

. 변함없는 하나님

 

1. 인간의 실체

성경을 묵상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의 다양한 모습에 어느 것이 실체인지를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처음 등장하는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이미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로 나타나고, 사울과의 충돌에서도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모습으로 성도들의 귀감이 됩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뒤에는 밧세바 사건을 통해 여호와를 업신여긴 자로 나타나고 법궤와 성전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이고, 인구조사에서는 자신의 업적과 왕권에 사로잡힌 권력자처럼 행세하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는 죄인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타락 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죄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 , 심정, 원리, 기준, 가치, 개념, 방법을 일체 알지 못합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열심과 헌신, 수고와 노력, 다양한 종교적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 중에 행여 선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헌신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이 은혜주심의 결과요 하나님의 도우심의 열매입니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반응을 달리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죄인은 하나님을 모르고 은혜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계시를 위한 사건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시작한 계시사건이기에 그 사람이 어떤 사역, 업적을 이루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떤 신분, 직위, 은사로 사용하셨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삶은 단지 그 사람만을 위한 개인적 축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샘플일 뿐입니다. 이 사람이 행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주어진 상황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할 지라도 하나님은 주신 은혜를 폐기하거나 계시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상황(신분, 직위, 은사)이 충성에 따른 복이 아니기에 불순종에 따른 형벌로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의 삶이 개선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은혜 받은 자의 삶이 나빠지는 것은 오직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일 때 찾아오시고, 연약할 때 도와주시고, 하나님을 불순종할지라도 돌보시고,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섭리로서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 신앙의 종교화 (대상 23~28)

 

1. 종교의 제도화

23장은 레위인의 직무, 24장은 제사장의 직무, 25장은 찬양대의 직무, 26장은 성전 문지기의 직무, 27장은 군대조직과 행정조직의 담당자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을 때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통해 형상을 만들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과 죄인은 완전히 다른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형상이 만들어지면 형상을 두어야 할 신전이 필요하고, 신전이 세워지면 운영할 종교 직무자와 종교 활동이 진행되고,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죄의 원리가 수반될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기에 애초에 형상을 세우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법궤만 옮기려고 하다가, 후에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다양한 종교제도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미 주변 나라의 종교제도를 다 보아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원리보다 죄의 원리, 종교의 원리에 집착하였고, 이미 죄의 원리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순서대로 종교화를 이행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아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으로 충분하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주셨을 뿐이고, 율법의 내용에는 신앙이 종교화로 변질될 수 있는 요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주셨습니다. 성막, 절기, 제사 등은 여호와 신앙의 종교적 제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금신상을 만듬으로 이미 종교화의 길에 들어섰을 때 과연 인간의 종교화가 유익한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하여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뿐입니다. 성막, 절기, 제사 등과 관련된 사항은 종교 양식으로는 죄인들의 방식과 유사하나 내용상으로는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습니다.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하나님의 의도를 넘어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종교적 형식을 만드는 것도 불필요하고, 인간의 신앙을 도우려는 목적으로 종교적 양식을 만드는 것도 불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하려는 것이 어리석음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더 하려는 것이 욕심이요,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보다 덜 하려는 것이 나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알려주신 것이 가장 옳고, 가장 적절하고, 가장 쉽고,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3. 삶의 원리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만드신 적도, 교리를 만드신 적도, 제도를 만드신 적도 없습니다. 특정한 인물, 장소, 시간, 행위를 신성하게 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율법)은 종교적 제도가 아니라 인간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그의 일상의 삶 가운데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전임사역자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족장의 삶을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의 섭리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전임 관료가 아니었고,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전임 장군이 아니었고, 사사들도 하나님께 고용된 전임 행정가가 아니었고,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전임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23장부터 26장에 소개된 다윗이 세운 종교 양식은 정작 인간의 삶의 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주셨고, 인간은 인간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4. 다윗의 준비

성막은 인간의 제안이 없을 때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먼저 제안하신 사항이기에 성막과 관련된 재료와 제작 과정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인간이 부담이 되거나 힘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백성에게 요구하여 재물을 획득하게 하였고, 성막을 지을 때 모든 백성이 이 재물을 기꺼이 하나님께 내어 놓았습니다. 백성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기가 수고하여 획득한 것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제안이 없을 때 다윗이 먼저 성전을 계획하였고, 성전 건축에 사용될 재물을 본인이 준비하였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생각 대신 본인이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이었고, 백성들의 동참이 없는 단지 왕의 종교로서의 신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다윗의 권면 (대상 29)

 

1. 다윗의 당부

죄인이 죄를 지을 때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망치려고 악의적으로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본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것을 행한다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다윗도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타락의 기초를 놓는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솔로몬과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하는 다윗의 마지막 말은 나름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고 있으며 후손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권고는 실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순간부터 왕이 될 때까지 백성들은 다윗을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백성들이 생각하는 왕의 기준에 다윗은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죽고 더 이상 백성들이 의지할 대상이 없을 때에야 백성들은 다윗을 찾아와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다윗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왕이 된 이후였습니다. 백성들이 강하고 큰 나라의 왕이 된 자신을 의지할 때에 다윗은 도리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하고 자기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공로를 확인하고, 자신의 업적을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백성들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을 일하심을 알지 못했고, 왕이 된 후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삶에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증거하지 않았기에 다윗의 마지막 권면은 그저 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2. 다윗의 고백

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신앙은 찬양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고백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감사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셨음을 선언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은 기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지 않고 본인이 행하면 됩니다. 기도는 자신이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 구하는(기도)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정작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께 구하는(기도)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다윗의 송축은 참으로 귀합니다(29:11~14). 다윗의 행사가 늘 이 고백과 같았다면 다윗과 백성이 모두 행복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권면

성경에는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며 권면하는 내용이 있고(4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는 내용이 있고(33), 다윗이 백성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대상 29).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가득차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관계없이 언제나 동일합니다. 아담에게도 생육하며 번성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노아에게도 다시는 죄로 인한 인류의 패망이 임하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생육하며 번성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살 것을 권고하셨습니다(18:19).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며 율법을 묵상하며 순종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등 모든 인물들에게 동일하게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 어떤 인물의 권면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쉽고 인간에게 좋은 것입니다.

 

4. 죄인의 한계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다윗일 것입니다. 평범한 목동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나라, 번성한 나라, 강한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업적입니다. 다윗이 자랑할 수 없고 교만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성경에는 다윗의 업적이 없습니다. 다윗의 행적은 성경이 아닌 다른 글에 기록되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다윗의 약점과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누리지 못하는 죄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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