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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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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 역대하 1 ~ 7

. 이스라엘의 번영 (대하 1)

 

1. 하나님의 창대케 하심

이스라엘의 왕정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이방과 같은 제도를 선택한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히 을 세웠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와 이방의 사고방식 중에 이방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의 제도와 방식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번성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번성함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1:1)가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치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다윗 시대의 창대함은 성경 내에서는 번성함이지만 당시 주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약소국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대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달아 정작 하나님의 원리로 살아 행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2. 기브온에서

사사시대와 사무엘시대에 거의 언급되지 않던 회막이 솔로몬 시대에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왕 등극 잔치를 위해 기드온 산당으로 갔는데 하나님의 회막 도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대하 1:3, 대상 21:29) 때문입니다. 기브온은 가나안 원주민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할 때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조약을 맺어 살아남게 되었고(9:15),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기브온을 공격할 때 여호수아가 태양이 멈추어진 가운데 승리하였고(10:12), 요압의 아우 아사헬이 기브온에서 죽었고(삼하 2:24), 다윗의 시대에 삼년 기근이 있은 이유가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었습니다(삼하 21;1). 이스라엘 족속이나 영역이 아닌 기브온(삼하 21:2) 산당에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있던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다윗은 웃사와 오벧에돔 사건(삼하 6)을 거쳐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궤와 놋 제단, 장막은 각각 분리되어 보관되었던 것 같습니다(대하 1:4, 5).

 

3. 지혜로운 미련함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지 않고 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리며 백성 앞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지혜와 지식을 구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이스라엘의 평화가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구한 것에 불과하고, 하나님은 친히 솔로몬을 세웠음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밝히셨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마음조차도 다스릴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현명한 분별력이 있으면 백성에게 태평성대를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이 아직도 죄를 모르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결국은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백성을 평안케 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백성을 곤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을 가장 미련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4. 솔로몬의 부귀영화

솔로몬의 부귀영화에 대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이요 마병이 만 이천이라,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1:14, 15)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왕이 취한 조치를 묘사한 이 내용은 하나님이 왕에게 금지한 바로 그 항목들입니다(17). 성경은 솔로몬의 번영을 높이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패망을 미리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시대의 종교, 정치, 행정의 체제를 묘사하고 솔로몬의 번영과 풍요를 묘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왕으로서 가장 불필요한 것을 정반대로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은 곧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평안은 다윗이나 솔로몬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여호와를 위하는가? (대하 2~4)

 

1. 네게 무엇을 주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1:6). 하나님께서 속전에 대해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30:15)라고 하셨습니다. 절기 또는 제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목적일 뿐입니다. 더 많이 드린다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덜 드린다고 하나님이 굴욕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인간이 더 드리는 것은 자신이 풍요롭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요, 덜 드리는 것은 자신의 궁핍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1:7). 하나님은 솔로몬으로 인해 부유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전히 솔로몬이 하나님이 없이는 평안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실 것을 언급하실 뿐 인간들이 바쳐야 할 것’, 하나님이 받아야 할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죄인들을 찾아오사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20:32)고 물으셨고,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14:27)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2. 여호와와 무관한 성전

인간은 하나님을 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성막을 짓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시기에 성막에 거할 수 없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거하게 하신다’(1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표현이지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짓겠다는 표현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 스스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대하 2:6)이라고 고백했으면 성전을 짓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번영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에서 하나님의 전을 예의상 지으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신보다 크시기에 하나님의 전은 크다고 강조하지만 자신의 왕궁에 비하면 초라함 그 자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번영이 인간을 얽어매고 곤고하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입니다.

 

3. 여호와와 무관하게

솔로몬 직위 사년 이월 일일에 시작하여 칠년 만에 완성합니다. 여호와의 전을 짓는 사람들은 여호와와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은 백성들과 신앙적 정성을 들여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두로 왕 후람에게 성전 재료와 일꾼을 요청하고 이방 사람 십오만 여명을 채용합니다(2:17). 재료를 준비하는 것도, 성전내부를 치장하는 것도 모두 이방의 장인들이며, 드러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화려한 예술과 왕권의 위엄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지만 성전은 이스라엘 왕권의 상징입니다.

솔로몬의 기브온 산당 번제, 성전의 건축, 언약궤 옮겨옴 등의 행동에서 계속하여 강조되는 것은 풍성함입니다. 모세의 시대, 사무엘의 시대의 특징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에 비하면 솔로몬은 여호와와는 무관하게, 솔로몬의 의도대로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여호와의 법궤가 옮겨지고 그 법궤에는 언약의 두 돌판이 있지만 정작 여호와의 말씀대로는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제사장들도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왔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여호와를 삼켜버렸습니다.

 

4. 여호와의 영광

여호와의 영광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전이 너무 화려하고 훌륭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잘 지어도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할지라도 하나님은 친히 영광으로 강림하셔서 그 전에 영광이 가득하게 하셨습니다(5:14).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매 성전은 겨우 성전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심보와 불경건을 모두 아시면서도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에게 져주심, 인간을 받아주심, 인간을 수용해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솔로몬이 재앙을 모면하는 것입니다.

 

 

. 인간의 종교 (대하 6, 7)

 

1. 솔로몬의 선포와 기도

성전을 건축한 후 솔로몬이 모든 백성을 모으고 한 연설의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아니라 자기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과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특별한 공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위해 성전을 열심히 지은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께 간절한 청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고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6:15, 16)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6:21, 24, 26, 29, 32, 38),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6:22) 하나님이 들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며 주의 길로 걸어가리이다’(6:31)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고, 은혜를 누리는 원리도 주셨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잊은 채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는 전혀 반대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시험하거나 징계하지 않으시기에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죄인이 곤경에 처하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을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가 역경에서하나님께 간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기도해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면 죄인들은 절대로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솔로몬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했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죄를 범하여 곤경에 처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로 인간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겠다고 다짐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저들의 회개와 기도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7:17)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는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고, 돈이 들지 않고 수고가 들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간의 행복을 위한 그 율법을 지키면 인간은 여전히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예물과 정성이 아무리 많고 찬란해도 여호와와 아무 상관이 없고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신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하나님의 가장 쉬운 방법을 늘 무시하고, 죄인의 생각에 가장 그럴싸하지만 가장 미련하고 할 수 없는 것을 시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 전이 비록 높을 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7:20)입니다. 여호와의 전이 버림을 받는 것이 저들이 받는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순종치 아니하면 백성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심판하는 대신 하나님이 수모와 멸시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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