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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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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 역대하 17 ~ 24

 

. 하나님의 사람

 

 

1. 은혜를 받은 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원리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 사역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대상 또는 결과, 열매가 사람입니다. 사람, 사람의 활동으로 인해 하나님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목표 자체가 없고, 하나님의 일을 인간에게 사명이라는 명분으로 책임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사람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를 누려야하는 당사자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설 수 없는 자이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주시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익한 자이나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놓치면 사역은 힘든 고역이 됩니다.

 

2. 은혜를 누리는 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샘플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이때 이 사람을 선택하고, 샘플적 역할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본인이 사명자의 삶을 사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은 사역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인간은 절대적으로 대상입니다. 본인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받은바 은혜를 삶 속에 충만히 구현하며 누리며 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신앙에서 모범은 내가 남에게 모범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나를 자신의 모범으로 삶는 것입니다. 모범을 위한 삶이란 없고, 그런 삶은 중압감으로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라는 표현은 그 사람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그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가를 궁금해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 사람과 행하는 사역들을 통해 그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열매는 배타적으로 그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을 부르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나고, 그 사람을 통해 펼쳐지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원리, 방법, 기준, 가치가 드러나고, 그 사람에게 이루어진 변화, 결과를 통해 인간을 행한 하나님의 기대와 바람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왕정사에서도 모든 관심은 왕들의 업적이 아니라 왕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 여호사밧 (대하 17~20)

 

1.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

유다 4대왕 여호사밧은 처음에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17:1)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17:3),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17:5),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10)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입니다. 죄인이 스스로, 먼저, 자원하여 하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인간에게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그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여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17:3~4)이 가능한 것입니다.

 

2. 왕의 역할

일반적으로 왕의 역할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경제를 번영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기대하신 왕의 역할은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성읍으로 순행하며 인민을 가르쳤더라’(17:9)가 여호사밧의 역할이었고 그 결과는 왕권의 안정과 나라의 강성함과 백성의 평안이었습니다. 평안은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보다 더 부유한 나라, 애굽보다 더 넓은 나라, 스바보다 더 강력한 나라를 상급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3. 죄인의 한계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였을 때 불신앙의 대표자인 북 왕국 7대왕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미혹을 당합니다. 남북이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침공하려할 때 이스라엘의 우상 선지자들은 신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18:5)라고 자신들의 소망을 언급하고, 미가야에게 하나같이 왕에게 좋게 말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처럼 좋게 말하소서’(18:12)처럼 위협합니다.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야는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18:13)고 한 후 여호와의 말씀’(18:18)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강조합니다(18:27).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겨우 살아납니다. 두 사람 모두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에 죽을 것인데 여호사밧은 살아남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선지자 예후의 권고도 받은 여호사밧은 백성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19:4), 재판을 바르게 하고(19:8),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19:11)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4. 은혜 주시는 하나님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여호와께 간구’(20:4~12)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서게 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20:17)고 선포합니다. 여호사밧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20:20)고 권고하고,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적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게’(20:22)하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이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20:27),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러라’(20:30)입니다. 여호사밧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가 싸우지 않아도 큰 승리와 평강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분명한 방법입니다. 물론 죄인은 승리 후에 마치 자기의 힘으로 승리한 양 악인들과 교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여(20:35)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20:37)는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표현입니다.

 

 

 

.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대하 21~22)

 

1. 여호람

여호사밧은 아들들에게 은금과 보물과 견고한 성읍들을 주고 장자 여호람에게는 왕위를 주었는데 여호람은 세력을 얻은 후에 아우들과 방백들을 죽이고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길을 행하고(21:6), 산당을 세워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미혹하였습니다(21:11). 하나님은 북 왕국에 있던 선지자 엘리야까지 동원하여 여호람을 권고하는 글을 보내시기까지 하십니다(21:12~15). 예언자의 말은 징계와 심판의 표현으로 되어있지만 여호람의 행동으로 임할 결과를 예고한 것일 뿐입니다. 여호람은 이미 에돔의 배반을 겪었으면서도(21:8)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아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의 공격을 받아 왕궁의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당하고(21:17), 본인도 고치지 못할 심한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21:19). 알량한 세력이 있을 때에 자신이 행한 대로 당한 것입니다. 죄의 원리는 악순환됩니다.

 

2. 아하시야, 아달랴

유다 6대왕 아하시야는 몰락하는 자기 집안과는 다르게 강력한 처가인 아합의 길로 행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22:4). 아하시야의 판단과는 다르게 성경은 아합의 길을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북 왕국에서 예후가 아합의 집을 징벌 할 때에 요람과 함께 어울리던 아하시야도 죽임을 당합니다. 힘 있는 아합을 의지하던 아하시야에 대해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22:9)고 조롱합니다. 아들을 잃은 아달랴는 모든 친족들을 죽이고(22:10) 7대 왕, 전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왕이 됩니다. 죄는 왕위와 가족을 바꾸게 할 정도로 인간을 미혹시킵니다.

 

 

. 요아스 (대하 23~24)

 

1. 여호야다의 반란

여호사밧 시대에 방백들과 레위 사람이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백성들을 가르쳤다는(16:9) 묘사이후로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아달랴 칠년에 여호야다가 백부장들과 언약을 세우고 유다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와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라고 주장하며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습니다(23:11). 제사장이 행한 방식이 하나님의 원리가 아니라 전형적인 죄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자가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왕권을 탈취한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백부장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23:2),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23:16) 정치의 중심에 섭니다. 무리가 아달랴를 칼로 죽이며 성중이 평온싸움이 그쳤더라입니다(23:21). 여호야다는 어린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도 드리고(23:18), 요아스를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도(24:3)하는 등 수고를 하였습니다.

 

2. 정치싸움

유대 8대왕 요아스는 7세에 왕위에 등극하여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24:3).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을 잘 관리했는데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세웁니다. 어찌된 일인지 왕은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게 하는데 레위 사람들은 수리를 하지 않습니다.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으니(24:7) 여호야다가 수리에 앞장섰어야 하는데 예상과 달랐습니다. 다행스럽게 왕과 제사장이 연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고 남은 돈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고 항상 번제를 드렸습니다(24:14).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왕에게 말하매 왕이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24:18)입니다. 결국 왕과 제사장은 여호와의 중심으로 협력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집단으로 잠시 정치적 연합을 했던 것입니다.

 

3. 요아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돌아오게 경고하였으나 요아스는 듣지 않았고(24:19), 여호와의 영이 스가랴를 감동시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고하였으니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24:21).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23:3)였는데 그 왕이 여호와의 영이 임한 사람을 죽입니다. 요아스는 자신을 아달랴의 손에서 건져내고 왕이 되게 해준 여호야다의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왕이나 제사장에게 여호와, 여호와의 전은 단지 정치적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와를 버린 결과로 아람의 적은 무리에 유다 사람이 패하였고(24:24), 요아스는 신하들의 반역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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