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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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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 역대하 25 ~ 32

. 아마샤 (대하 25)

 

1. 하나님의 인간 존중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사람의 사역에 대한 평가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 등 대표들 그리고 사사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이 사역을 진행하셨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였다, 악하였다의 평가가 없습니다. 왕에 대한 평가가 등장하는 것은 왕은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인간은 창3장 이후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선한 행동이 나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계속해서 인간을 칭찬합니다. ‘정직히 행하였다, 선하게 행하였다, 마음을 다하였다고 마치 인간 스스로의 충성과 신실함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아마샤도 왕으로서 백성들을 포용하는 대신 부왕의 정적들을 죽였으나 그 자녀를 죽이지 않았다고 칭찬하여 줍니다(25:4).

 

2. 아마샤의 행적

남 유다 9대 왕 아마샤는 에돔을 공격하기 위하여 유다 군사 삼십만을 모집하고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군사 십만을 고용하매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 친히 유다를 도우실 것을 약속하시고 북 이스라엘 대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25:8). 왕들이 의지하려는 대상이나 숫자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이고, 성경의 강조는 하나님께서 왕이 의지하려는 것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25:9)입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담력을 내어 에돔과 세일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도리어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 경배하며 분향합니다. 왕이 우상을 가져오는 이유는 자신이 승리했음을 자랑하는 것이며, 우상을 섬기는 것은 가능한 많은 신을 섬기려는 이방 종교의 특성입니다. 이미 하나님 대신 자신의 업적을 주장하기에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3. 자충수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자신이 의지하려했던 이스라엘 용병에 의해 유다 성읍들이 약탈당한 사건을 갚기 위해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결국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왕은 사로잡히고 성벽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전과 왕궁에서 재물들이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가기까지 합니다. 에돔에 대한 승리가 결코 유다나 아마샤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대적의 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25:20). 하지만 하나님은 거듭 하나님의 사람과 선지자를 보내면서 이스라엘을 도왔습니다. 아마샤는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헛된 신을 섬기다가 자멸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후부터 반역을 당하고 라기스로 도망하였다가 거기에서 죽습니다.

 

 

. 웃시야 (대하 26)

 

1. 왕과 선지자

다윗이 왕을 선택한 이후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은 선대 왕이나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세우기도 하고 스스로 반역을 통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왕정 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입니다. 왕정 자체가 하나님 대신에 인간 스스로의 방식을 대표함에도 불구하고, 왕이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왕이 세워질 때마다 선지자를 보내 왕을 지도하고 도와주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26:5)’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순종할 때에는 평안함이 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강성하여지면 하나님을 버림으로 실패를 맛보는 것이 왕정의 패턴입니다.

 

2. 웃시야의 행적

아버지는 객사하고 백성에 의해 16세에 왕이 된 웃시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26:6) 불레셋, 가드 성, 야브네성, 아스돗 성을 헐었고, 아라바아, 마온 사람을 정복하였고, 모암에게 조공을 받고 애굽까지 이름을 날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26:15) 이름을 원방에 알리고 강성하여 졌습니다. 이때 왕이 할 일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인데 왕은 성벽을 쌓고 군사를 충원하고 무기를 개발합니다. 물론 왕으로서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하여지매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자신의 열심이 지나쳐 제사에 범죄하여 결국 문둥병으로 여생을 마치게 됩니다(26:16).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만류하는 제사장에게 화를 낼 정도로 왕권을 자랑하고 여호와를 무시한 것입니다.

 

3. 성경의 가르침

왕정사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 말씀, 율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지만 인간의 본질적 문제가 죄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왕들이 신실했기 때문이 아니며, 후에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징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인은 인격적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만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에 순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도움만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동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의 뜻과 원리를 증거하기 위한 수단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격을 알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화평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지혜로운 인간의 삶의 방식입니다.

 

 

. 요담, 아하스 (대하 27~28)

 

1. 요담

유다 11대왕 요담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지만 안타깝게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습니다(27:2). 암몬 자손과 싸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습니다. 요담이 십육 년 동안 통치하였는데 무엇을, 어떻게 행하였는가는 등장하지 않고 나라의 정세에 대한 묘사도 없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업적이 없는 왕일 수 있지만 백성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이 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위기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아하스

유다 12대왕 아하스의 통치기록은 패역함, 불신앙 자체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만들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녀들을 불사르고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습니다(28:1~4). 아하스는 나름 정책을 펼쳤으나 결과는 아람에게 패하여 많은 무리가 사로잡혀갔고, 이스라엘 왕에게 십이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왕의 아들과 궁내대신 총리대신이 살해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없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에서 다윗의 후손인 남 유다가 북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청한 적은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없습니다. 동시에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를 정복한 적은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없습니다. 여호와의 다윗과의 약속도 있고, 여호와의 성전도 있고, 여호와의 제사장도 있고, 여호와의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강성한 적이 없습니다. 아하스 왕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백성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갈 때에 여호와의 선지자 오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승리가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심임을 밝히고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고 책망하여 막으매, 아사랴와 베라와 여히스기야와 아마샤가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약한 자들을 형제들에게 돌려주기까지 합니다(28:9~15). 어디에도 다윗의 후손, 성전이 있는 유익이 전혀 없고 도리어 이스라엘의 은혜를 입습니다. 성경이 유다를 부끄럽게 함으로 깨닫게 하려는 방식입니다.

 

 

3. 죄의 악순환

하나님이 유다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에돔의 공격을 받자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도리어 디글랏벨레셀은 돕기는커녕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겨 버립니다. 이에 아하스는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아하스는 회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더욱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유지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히스기야 (대하 29~32)

 

1. 히스기야의 반응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십 육년간 우상을 섬기었기에 히스기야는 신앙을 배울 곳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성전을 수리하는 조치들을 취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신 결과입니다. 히스기야의 반응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아버지의 방식이 철저하게 실패했으니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것이 여호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행위를 신실한 신앙적 행위로 받아주시고 큰 복을 베푸셔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29:36)입니다. 히스기야의 헌신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히스기야가 기뻐하는 것이다.

 

3. 유월절과 종교 개혁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통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심이 이스라엘로 바른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권고에 일부 백성들이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30:12)입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그 순종을 빌미로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히스기야는 더더욱 율법에 맞추어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을 개선합니다. 제사장이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시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순종이요 충성된 일이라고 또 축복하십니다.

 

3. 앗수르에 대한 승리

앗수르의 산헤립이 침입하였을 때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히스기야는 담대하게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32:7, 8)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도와 전쟁도 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히스기야도 말년에는 실수와 회개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용서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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