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조회 수 12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5 강 역대하 33 ~ 36

. 므낫세 (대하 33)

 

1. 왜 이럴까?

13대 히스기야와 14대 므낫세 통치 시기는 주변 앗수르와 바벨론과의 외교정책의 영향이 큽니다. 히스기야는 반앗수르 정책을 썼다가 패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벗어났으나 하나님 대신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습니다. 열두 살에 왕이 된 므낫세는 친앗수르 정책으로 돌아서기 위해 아버지 히스기야가 행한 모든 조치를 뒤집었습니다. 산당을 세우고, 바알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습니다(33:6).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나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형이 비슷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신들을 동원하는 것이 이방 종교, 우상 종교의 원리입니다.

 

2. 죄인의 원리

이방 종교에는 신을 섬긴다는 인간의 종교행위만 드러날 뿐 신의 속성, , 마음, 기준등 신에 관한 내용이 없으며, 신의 약속과 맹세 등이 없습니다. 죄인들은 자신이 처한 삶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모두 상황의 개선을 위한 수단과 방법에 몰두합니다. 죄의 종교가 제시하는 수단과 방법은 인간의 삶의 원리가 아니며,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결과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죄의 원리는 죄인들에게는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습니다(33:9).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죄로 한 마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하시고 계속하여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죄는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계속하여 죄로 유혹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인간이 이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방법

죄인이 죄를 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죄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징계가 아닌 은혜’, ‘계시가 필요합니다. 징계, 저주, 심판은 처벌의 의미를 가질 뿐 치유, 개선, 회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죄인은 죄만 알기에 죄를 행하기에, 하나님을 계시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야 죄를 떠나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백성들에게 살길을 권면하셨으나 듣지 아니하였기에 자신들이 의지했던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므낫세를 사로잡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배신의 환난을 당하여 절박하고 대안이 없는 므낫세가 여호와께 간구하고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들어주십니다. 갑자기 므낫세가 하나님을 알 리가 없고, 신실함이 생겼을 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버린 신에게까지 구해야 할 정도로 절박해졌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므낫세가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십니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33:13)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계시의 원리입니다. 인간의 정성에 신()이 반응하는 것은 이방 종교이고, 하나님이 은혜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여호와 신앙입니다.

 

4. 여호와를 섬기라

기독교는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미 인간이 죄인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기 전에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며, 은혜를 주신 후에 반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철저하게 은혜이며,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누린 사람의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므낫세는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고 제단들을 헐고 여호와를 섬기라’(33:16)고 합니다. 15대 아몬 왕이 보기에 므낫세의 행동은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몬은 므낫세의 악행을 본받았으나 겸손함은 배우지 않고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죄인이 쉽게 변하리라는 기대와, 죄인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 이외의 조치는 모두 헛수고입니다.

 

 

. 요시아 (대하 34~35)

 

1. 반역의 연속

신하들이 아몬을 반역하여 죽였고, 백성들이 반역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33:24, 25). 죄인들은 인간 문제의 본질이 임을 알지 못하고, 상대방뿐만 아니라 본인도 죄를 행하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죄의 원리에는 주동자의 변화, 상황의 변화만 있을 뿐 원리, 가치, 개념, 마음의 변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에게도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를 받은 당사자들이 상대방에 대해서는 자비와 긍휼이 없습니다. 아몬을 반역한 신하들을 누구를 왕으로 세우고자 했을까요? 백성들이 반역한 신하들을 죽이고 새로 세운 팔세의 요시야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차라리 철모르는 어린 왕이 낫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2. 요시야

16대 왕 요시야는 왕이 된지 팔년 즉 16세에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십이 년 즉 20세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고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우상들을 제하고 태양상을 찍기도 합니다(34:3~7). 그리고 열여덟째 해 즉 26세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기로 합니다. 유다는 여호와를 버린 적도 있고,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들을 세운 적도 있고, 성전 기물과 은금을 약탈한 적은 있어도 성전을 파괴한 적은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가 아니라 우상들 중의 하나로 함께 섬길 뿐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은혜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나는 경우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기존의 종교체제를 바꿈으로 강대국에게 자신들의 변화를 어필하는 조치입니다.

 

3. 종교 개혁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여호와의 율법책이 발견되고 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에게 전달되고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자기 옷을 찢습니다. 아마 요시야는 종교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율법책이 존재하고, 여호와 신앙의 내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입니다. 이방 종교, 우상 종교에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있는 종교 활동이 여호와의 율법책과 다른 것에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선지자 훌다를 통하여 요시야에게 네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고 응답하십니다. 요시야는 모든 백성을 한 자리에 모으고 언약책의 말씀을 들려주고 스스로 먼저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고 마음과 목숨을 다해 율법을 지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겠다고 선언합니다(34:29~33). 이에 백성들도 요시야 사는 날에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유다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상징으로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가장 적절하게 유월절이 지켜지게 됩니다(35:18).

 

4. 신앙의 결과

신앙의 관점으로 보면 요시아는 유다의 종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분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결과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나라가 평안하였다거나 경제가 번성하였다거나 영토를 확장한 결과들이 없습니다. 도리어 당시는 바벨론이 새로이 등장하여 612년에 앗수르의 니느웨를 함락하였고 610년에 다시 하란에서 재건을 꿈꾸던 앗수르를 패퇴시켰고 605년에는 갈그미스에서 이집트마저 몰아내어 버렸고 심지어 요시아는 갈그미스 전투에 나가던 이집트의 왕 바로 느고(35:20)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애굽의 영향권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이것은 요시아의 행위가 요시아의 업적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유다의 신앙이 유지될 수 없고 백성의 삶이 유지될 수 없기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도와주신 것을 강조합니다. 죄에게서 멀리 떠났던 사람은 다시 은혜로 자리에 돌아온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감격인지 잘 알게 됩니다.

 

 

.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대하 36)

 

1. 무기력한 왕들

유다 17대왕 여호아하스는 즉위 3개월 만에 애굽 왕에 의해 폐위되고 조공을 드리고 애굽으로 끌려갑니다(36:4). 유다 18대왕 여호야김(엘리아김)은 애굽왕 느고에 의하여 세워졌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36:6). 유다 19대왕 여호야긴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베론으로 잡혀갑니다36:10). 유다 20대왕 시드기야도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으로 세워졌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고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온갖 불순종의 결과로 패망합니다(36:12-20). 애굽, 앗수르, 바벨론의 틈바구니에서 계속해서 실패하는 선대 왕들의 부질없는 선택을 반복할 뿐 가장 믿음직한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2. 이방 나라들

이방 나라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애굽, 앗수르, 바벨론은 당대 최강대국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일개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샘플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인의 성공의 법칙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원리입니다. 성경은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 더 크고, 강하고, 부유한 신분이나 상태에 도달하는 법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패, 인간의 실패, 죄인의 실패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으로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36:21).

 

3. 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시작하여 가나안의 정착까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사사기에서 우상을 선택하는 시작부터 열강과 우상을 의지하는 선택으로 초지일관하였고 결과는 사사시대에 이방의 압제를 받는 것부터 결국 이방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는데 이스라엘은 갈대아 지역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하나님은 애굽에서 출애굽시켰는데 이스라엘은 스스로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택한 모든 방법이 실패하였습니다. 왕은 이스라엘의 책임자나 보호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며, 왕정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스마야(11:2), 아사랴(15:1), 하나니(16:7), 미가야(18:7), 예후(19:2), 야하시엘(20:14), 엘리야(21:12), 스가랴(24:20), 무명인(25:7), 오뎃(27:9) 등의 비문서 선지자들을 세워 왕을 도왔고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문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모든 계획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열심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은 국가가 세워졌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국가가 멸망하였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서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