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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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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 에스라 1 ~ 6

.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1. 열강의 왕들

왕정시대는 고대근동의 열강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BC931-722) 19대 호세아(BC732-722)때에 앗수르 사르곤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남 왕국 유다는(BC931-586) 20대 시드기야(BC597-586)때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앗수르는(BC1354-608,20:1) 디글랏 빌레셀(BC745-727)때에 재건되었고 살만에셀(BC726-722, 왕하17:3, 18:9)을 거쳐, 사르곤 (721-705)가 북 왕국을 정복하고, 산헤립(704-681)이 남 왕국(히스기야 시대)을 침공하였고, 에살핫돈(BC680-669, 왕하 19:37, 4:2)을 거쳐 앗슈르 우발릿(BC612-608) 시대에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바벨론(BC626-539)은 나보폴라살(BC625-605)이 건국하여 앗수르를 정복하고, 느부갓네살(BC605-562)이 남 왕국 유다를 정복하고 세력을 넓히려던 애굽을 격퇴하였고, 나보니두스(BC556-539)가 잠시 재건하였으나 결국 바사에 멸망합니다. 바사(BC 550-330)는 고레스(BC550-529)가 건국하여 바벨론을 정복하였고, 캄비세스(BC529-522)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으나 다리오(BC522-486) 시대에 성전이 완공되었고, 크세록세스(아하수에로, BC486-464)시대에 에스더 사건이 발생했고, 아닥사스다(BC464-423) 시대에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환하였고, 다리오(BC335-331)시대에 헬라(알렉산더)에게 멸망합니다.

 

2. 유다의 상황

에스라서에는 바사 왕 고레스 원년(1:1), 느부갓네살(1:7, 2:1), 바사 왕 다리오(4:5), 아하수에로(4:6), 아닥사스다(4:7)가 등장합니다. 유다가 패망하기 전에 이미 두 차례(1, 2)에 걸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패망하면서 다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3).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전의 기물들도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BC586).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1차 포로 귀환이 BC538년에 세스바살, 스룹바벨, 예수아의 인도로 이루어집니다. 귀환한 이년 둘째 달에(3:8, BC536)에 성전 재건이 시작되고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4:1)의 사역에 대해 그 땅 백성들이 방해하여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4:5) 중단되었다고, 학개와 스가랴의 인도아래(BC5208)에 재개되어 기어코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하게 됩니다(BC516).

 

3. 이스라엘 나라

왕정사의 관심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나 다윗 왕조의 존속에 모아지곤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어 약속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으로 계시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완성하신 이스라엘은 민족공동체나 국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아는 자들 즉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인간의 문제가 죄임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토라로 살아야 모든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고 국가로 세워진 것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여부, 흥망성쇠, 분열, 패망 등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고 성경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라가 분열된 것을 애통해 하지 않았고, 빨리 연합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나라가 패망한 것을 슬퍼하지 않았고, 회복될 것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 포로, 귀환 (1~3)

 

1. 하나님의 은혜

아무도 나라가 망할 것을 예상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패망과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고, 많은 백성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잡혀가 70년 동안 머물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재난을 피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예언을 듣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으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텐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세력은 도리어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었고, 이스라엘이 버렸던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패망하였고, 바벨론은 더 강력한 바사에게 패하여 이스라엘은 도무지 스스로 나라를 회복할 힘이 없었고 귀환이나 재건은 바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1:1)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사랑으로 역사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일하십니다. 포로귀환은 고레스의 외교정책이나 통치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귀환의 의미

이스라엘의 패망사건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귀환 사건의 강조점은 포로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패망과 귀환의 초점이 이스라엘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맞추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마음에 감동을 받은 고레스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리고, 하나님에 의해 마음에 감동을 받은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1:5) 즉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가랴,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등과 함께 49,897명이 귀환합니다(1, 2:2). 외형상으로 포로가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라가 독립된 것도 아니고 열방이 물러가지도 않았고, 다윗의 후손이 등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으로 옮겨가지 않고 유다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패망한다는 예언도, 귀환한다는 예언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의 종교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래로 줄곧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 바알이나 아세라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을 버렸지만 스스로 하나님을 찾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계속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은혜와 계시를 주셨습니다. 사사시대이래로 이스라엘에게서 신앙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발적 회개와 신실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일 뿐입니다. 왕정 시대와 포로 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듣지 않았고, 도리어 열방의 신들을 더 많이, 더 열심히 섬겼습니다. 비록 여호와의 성전과 제사장들과 절기들이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모두 우상종교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절기를 행했습니다(3:2~6). 이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한 모습, 새로워진 모습이 아닙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단지 절박할 때, 필요할 때 신을 찾는 종교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 성전의 재건 (4~6)

 

1. 하나님의 계획

이스라엘의 패망의 묘사에서 핵심은 국가, 왕조가 아니라 성전의 파괴입니다. 여호와의 전으로 불리던 성전이 파괴되어 마치 하나님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굴욕을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여호와의 전의 모든 물건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기 위하여 수모를 자처하고 은혜와 계시를 주십니다. 포로들 중에 귀환을 사모한 자가 없고, 귀환한 자들 중에 성전을 재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1:2). 하나님은 성전을 재건함으로 열방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리려는 계획을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2. 백성들의 갈등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나 귀환한 자들은 대부분 유대의 고위층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사로잡혔던 자들’(4:1, 6:19, 10:8, 16) 또는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자들’(3:8, 6:21)이라고 부르고, 유다에 남아 있던 평범한 사람들은 그 땅 백성’(4:4)이라고 합니다. 사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바란 것은 신앙의 회복이 아니라 나라, 신분, 경제, 권력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성전 재건은 신앙의 재건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지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포로귀환 자들이나 원래 거주하던 자들이나 모두 성전 재건을 사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두 세력은 서로 시기하며 경쟁하며 배척하며 갈등했습니다(4:3, 4). 여호와 신앙은 죄인에게서 자발적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각성하고 스스로 여호와께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유대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백성들을 선발해서 성전을 재건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원치 않는 사람들, 단지 자기의 욕심만 챙기려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재건

포로귀환과 성전건축 조서를 내린 것은 하나님께 감동 받은 바사 왕 고레스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 반목하여 성전공사가 중단되었을 때(4:24)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였고’(5:1~2),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셔서 공사를 막지 못하게 하시고(5:5), 다리오 왕을 통해 성전공사가 재개되고 지원을 받도록 하셨습니다(6:6~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의존하는 여호와의 성전을 이방인의 손으로 파괴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방치하는 성전을 이방인의 도움으로 재건되게 하셨습니다. 외형적으로 성전 봉헌은 오직 사로잡혔던 자들의 잔치에 불과했습니다(6:19~21). 그러나 내용적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6:22)입니다.

 

4. 하나님의 일, 인간의 일

하나님은 인간에게 과업을 맡기신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사건들은 그 사건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그 사건을 통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전 재건 자체는 전혀 목적이 아닙니다. 재건된 성전은 규모가 너무 작아 백성조차도 안타까워 눈물을 흘릴 정도였고, 성전이 재건됨으로 이스라엘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주권도 없고, 번성함도 없었습니다. 비록 여호와의 성전은 초라하고, 백성들에 의한 웅장한 찬양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계속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열방에 대한 예언과 인간구원에 대한 예언들을 선포하셨고,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포로 귀환을 축하하고 성전 재건을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행한 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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