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강 에스더 1 ~ 5 장

Ⅰ. 어리석은 현자들 (스 1~2장)

1. 이방의 왕들

성경에 등장하는 이방나라들은 악한 나라가 아니며, 이방의 왕들 또한 악한 왕이 아닙니다. 죄인이라는 관점에서는 열방은 이스라엘과 동일한 차원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생일에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 왕’(창40:20)으로 소개되고,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도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스 1:3),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1:5), 백성을 위하여 각양 치장과 금잔을 동원하여 풍성하게 대접하고(1:6~7),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함’(1:8)이요, 왕후의 행동에 대하여 신중하게 사례를 아는 자들에게 묻기도(1:13)하였고, 왕후를 얻은 후에는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2:18)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애굽이나 바사는 이스라엘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2. 이상한 논리, 이상한 조치

고대 제국의 왕은 절대적 권한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왕후의 행동에 대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 하였지만 사례를 아는 현자(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물었습니다. 현자(賢者)는 이스라엘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은 존재로,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의 첫 자리에 앉은 자’(1:14)로서 왕과 백성과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위한 최고의 지혜를 제공하는 막중한 영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현자들은 왕후의 행동에 따라 모든 여인이 남편을 멸시할 것이며, 심지어는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왕이 왕후를 폐하는 조치를 취하면 귀천을 막론하고 전국의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자들의 지혜로운 제안에 대해 왕과 지방관들이 ‘옳게 여기고’, 실제로 남편이 자기 집을 주관하는 조서를 내렸습니다(1:21).

후속 조치로 왕의 측근 신하들이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게 하매 왕은 ‘좋게 여겨’(2:4)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도성 수산에 처녀들이 많이 모였고, 처녀들에게는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과 일곱 궁녀와 후궁 아름다운 처소가 제공되었고, 처녀마다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섯 달을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왕에게 나아간 후에는 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다시 나아갈 수 있으나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는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2:8~14). 현자들, 신하들의 주장과 조치는 왕과 백성들과 처녀 각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일까요?

3. 어떤 사람들

에스더는 포로민으로 부모도 없었습니다. 졸지에 왕궁으로 이끌려갔고,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아(2:16) 왕후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고관들의 자제들이 왕후가 되려고 각양의 지혜를 동원하였을텐데 후원세력이 없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패망한 나라에서 잡혀와 남의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삼촌의 딸마저 부양해야 하는 처지요, 에스더에게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감추도록 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에 처해있습니다(2:10). 왕, 지방관, 현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신분인데 어느 날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원한을 품고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게 되고 에스더를 통해 왕에게 보고하고 조사하여 실증을 얻어 두 사람을 나무에 달게 됩니다(2:21). 현자들은 왕후 와스디의 삶을 파괴했고, 왕 부부의 관계를 파괴했고, 수많은 처녀들과 가정의 삶을 파괴했는데, 모르드개는 왕의 목숨을 살렸고,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지켜냈고, 모든 백성의 삶을 보호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으며, 반대로 인간이 예상치 못한 상황(지혜롭지 못한)이 전개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Ⅱ. 높이 올린 사람, 우는 사람 (스 3~4장)

1. 높이 올린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사람이 강조되어 1장에서 ‘현자들’(지혜로운 사람)이 부각되고 3장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이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있는’ 하만이 등장합니다(3:1). 직분이 조금 높아진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아니하는 모르드개와 더불어 온 나라에 있는 유다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합니다(3:6).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의 행동(3:3)은 2장의 모르드개와 대조됩니다. 영향력(지혜, 권세) 있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요, 이들의 계획은 언제나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뿐으로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만은 날과 달에 대하여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정하였습니다(3:7). 하만은 왕에게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다’(3:8)고 보고하고 ‘조서를 내려 진멸하도록’(3:9) 제안합니다. 또한 하만은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으로 자신의 재산에서 ‘은 일만 달란트’를 제공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자들과 권세 있는 자를 통해

나라의 안정과 평강이 전혀 기대되지 않습니다. 하만의 의도에 따라 나라가 긴밀하게 움직여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왕의 조서가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여 지고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전달됩니다. 하만이 내린 조치는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3:13)는 것으로, ‘소견에 좋을대로’(3:11) 계획부터 실천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는데 결론은 ‘나라의 안정’이 아니라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3:15)입니다.

2. 우는 사람들

하만의 조치를 들은 모르드개는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4:1)하고, ‘유다인들도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4:3)입니다. 닥친 상황에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는 자들이 행하는 것이 ‘우는 것’으로 가장 무기력하고 연약한 행동입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전혀 영향력이 없었고,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모색하거나, 힘을 규합하거나 대안을 세우지 못한 채 그저 울고만 있습니다.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사실을 밝힐 만큼 절박한 상황입니다. 유대인 중 누구도 상황을 헤쳐나 갈 어떠한 ‘지혜’나 ‘영향력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3. 죽으면 죽으리라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 삼년에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었고(1:3), 칠년 시월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고(2:16), 제 십이 년 첫째 달에 하만의 유대인학살계획이 세워졌습니다(3:7). 에스더는 왕후가 된지 이미 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 앞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아내이지만 다른 백성과 다를 것이 없이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4:11)입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일이라고 호소할 정도로 왕후이지만 어떠한 권세나 지혜나 영향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금식을 하며 규례를 어기려는 작정을 하고 심지어는 ‘죽으면 죽으리라’(4:16)는 각오까지 할 정도로 죽음에 직면한 가련한 인간의 모습일 뿐입니다.

4. 인간 문제의 본질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신앙의 모범으로 등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여호와를 찾지 않으며,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독특한 점이 없고, 믿음 있는 모습이 없고, 용기 있는 모습이 없고 배울 점이 없습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만 집중할 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며, 영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생존조차도 위협받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인간 문제의 본질이 ‘죄’임을 선언하셨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했고, 인간의 다양한 해결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그 결과가 이스라엘이 닥친 상황 패망이요, 절망이요, 무기력함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하고자 했던 왕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이방의 신들은 도리어 나라를 패망시켰고, 당시 주변국들에서 모은 지혜는 전혀 백성들의 삶에 안정을 주지 못했고, 정치 외교적으로 의지했던 이방의 권세자들은 이스라엘 생명의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참담한 현실로 하나님의 가르침이 옳았고, 이스라엘의 선택이 틀렸음이 입증되었습니다.

Ⅲ. 좋게 여기고 (스 5 장)

1. 좋게 여기시거든

에스더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 편에 서서(5:1) 감히 왕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왕의 조치를 기다립니다. 다행스럽게도 왕이 금규를 내밀어 에스더를 맞아줌으로 죽음을 면하고, 왕은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5:3, 6)고 제안합니다. 에스더의 입장에서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반전의 절호의 기회인데, 에스더는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라고 말할 뿐입니다(5:4, 8). 연약한 자들, 우는 자들의 유일한 바람은 생존이요, 평안하고 안정된 삶일 뿐입니다. 에스더는 왕의 요청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며 자신과 유대인의 생존을 보장받을 최소한의 궁리를 할 뿐입니다. 본문은 에스더의 담대함, 냉정함, 지혜로움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좋게 여기고

왕과 함께 잔치에 참여한 하만은 마음에 기뻐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을 청하여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5:11) 또 ‘왕후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자기 밖에 없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음’(5:12)을 자랑합니다. 이미 하만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많은 복락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5:13)라고 한탄합니다. 하만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왕에게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기를 구하라’고 조언하자 그 말을 ‘좋게 여기고’(5:14) 나무를 세웁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춘 권력자의 주변에 동일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고, 동일한 관심사에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과 인간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행동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거나,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만한 신실함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죽음에 직면하여 살기위해 행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뿐입니다. 특별히 선하거나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면초가의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구출될 수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이 밝혀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의 옳으심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