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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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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에스더 6 ~ 10

 

. 높아지기, 높여지기 (6)

 

1. 높아지기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사랑의 대상으로 여겨주셨습니다. 인간의 죄인 됨이 하나님 앞에 낮아짐이요,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귀함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귀함이 죄가 제시하는 무의미한 기준에 근거하여 파괴되고, 인간 상호간의 행복한 삶이 파괴되었습니다. 죄의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스스로’, ‘자기만을위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해를 가하거나, 잘못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하만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5:13), 모르드개를 미워하고 제거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진멸함으로 인간 하만이 달라질 것이 없음에도 잔인한 계획을 세웁니다. 세상은 를 언급하지 않고 욕심, 교만, 미움, 시기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존귀해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고, 이러한 조치들이 인간의 노력과 수행, 교육을 통해 가능할 줄로 착각합니다. 자신들이 죄에 사로잡힌 죄인이라는 사실, 죄의 종 된 인간이 주인인 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입니다.

 

2. 높여지기

모르드개는 왕의 두 내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고발한 후 아무런 상급을 받지 못했지만(2:21~23) 억울해 하거나 적절한 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사건을 알게 되고 모르드개에게 상(존귀와 관작)을 베풀어 주고 싶어 하만에게 묻고 하만이 제안한 대로 시행하게 하여 모르드개가 높임을 받지만(6:9)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가 원래의 삶을 유지합니다(6:12). 성경은 모르드개의 삶을 높아진 것이나 낮아진 것으로,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에 대해 높아진 것이나 권세를 가진 것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 위에 높여져 특별 취급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높아지기를 원했던 하만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낮아진 것이요 모르드개는 높아진 것일 뿐입니다. 정작 높아지기를 원했던 사람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혀 높아짐에 관심이 없던 사람은 높아졌습니다.

 

 

. 또 다른 죄인 (7~10)

 

1. 동일한 죄인

에스더에 의해 하만의 계략이 밝혀지고(7:6), 하만이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는 장면이 왕에게 오해되어(7:8) 하만은 허무하게 자신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였던 나무에 매달려 죽습니다(7:10). 그 후 에스더는 하만이 내린 조서를 철회하게 하고 더 나아가 유다인을 죽이려 하던 자들을 죽이려는 새로운 조서를 내리게 하는데 이때 에스더는 하만이 주장했던 것과 동일한 논리 즉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8:5, 3:9)를 펼치고, 하만이 계획했던 것과 동일한 계획 즉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8:11, 3:13)라는 계략을 세웠습니다.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 나오매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어 잔치를 베푼 것도(8:15~17) 하만이 높임을 받은 것,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이 기뻐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보여주며, 죄인이 얼마나 죄적일 수 있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을 배우는 종교인(아직 구원받지 않은 자)이 자신의 왜곡된 종교로 얼마나 비신앙적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서가 반포된 후 유다인들은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었고,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았습니다(8:17). 생명 앞에 인종도 민족도 나라도 종교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 인간 멸절의 날

하만은 첫째 달 곧 니산월에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었고(3:7),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조서가 쓰여지고 반포되어(3:12), 열두째 달 십삼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을 죽이도록 했습니다(3:13). 조서가 쓰여진 지 두 달 후에 모르드개에 의해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새로운 조치 곧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만 족속을 죽이도록 했고(8:9), 실제로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에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고’(9:5~10), 더 이상의 살육을 만류하는 왕의 요청에도 불구하고(9:12) 십사일에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고(9:14), 도성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삼백 명을 도륙하고(9:15), 각 지방에서 유다인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였습니다(9:16). 유다 민족이 승리한 날이거나 하만 민족이 패배한 날이 아니라 인간이 멸절당한 날이요, 인간이 생명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인간이 인간을 죽인 죄인의 본성이 드러난 치욕의 날입니다.

 

3. 인간의 절기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행동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하나님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습니다. 하만측 사람들을 수만 명이나 죽인 후에 모르드개는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정하여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고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후 이스라엘에 정하여준 절기 외에 스스로 정하는 절기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인간의 지혜가 인간(죄인)에 의하여 얼마나 인간에게 악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인간의 권세가 인간(죄인)에 의하여 얼마나 인간에게 불의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결국 인간이 죄에 사로잡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죄인의 한계, 때가 차매

 

1.

구약에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인간의 방법의 대표가 왕, 지혜자 등입니다. 고대세계에서 왕은 언제나 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였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하만이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높임을 받았고(3:1), 모르드개가 백성들 앞에서 높임을 받았고(6:10), 왕의 조서로 유다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고(3:12),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유다인을 치려는 자들과 처자들의 멸절조치(8:11)가 내려졌고, 왕의 명령으로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습니다(10:1). 그러나 왕은 자신의 권위를 위하여 왕후를 폐하고, 새로운 왕후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라의 수많은 처녀들을 차출하여 여성의 삶과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였고, 하만의 교활한 설득에 미혹되어 자신의 백성인 한 민족을 말살하는 조서를 내림으로 민족연합과 백성 모두가 행복한 삶을 무참히 짓밟았고, 왕후 에스더에 반하여 아무 근거없이 소원을 들어주되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권력이 남용되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유다인)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함으로 민족 간의 살상을 허용합니다. 왕의 행동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행동, 공평과 정의를 시행하는 모습, 지혜와 명철로 분쟁과 갈등을 치유하는 모습, 백성의 화합과 안녕을 도모하는 정책을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2. 지혜자, 권세자

에스더서는 인간이 의지하고 싶은 부류들 즉 왕, 지혜자(현자), 권세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자(賢者)들은 사례를 아는 자들로 왕에게까지 조언하는 역할을 감당하지만 단지 남자들만을 위하여, 권세자들만을 위하여 사용할 뿐입니다. 권세자들도 자신의 권세를 오직 자신들만을 위하여 활용할 뿐입니다. , 현자, 하만, 모르드개, 에스더는 각기 다른 민족으로서 단지 자신들만을 위하여 상대방을 묵살하였습니다. , 지혜, 권세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죄인은 모든 것을 죄의 원리로 활용할 뿐입니다.

 

3.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은 지배자나 통치자가 아니요, 지혜자나 권세자가 아나라 단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세워진 사람에게 특정한 사명을 주고 역할과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세운 것도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18:19)입니다. 아브라함은 왕이 아니었지만 아브라함과 백성이 평안했으며, 아브라함과 주변 민족이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요셉은 왕이 아니었고 단지 애굽의 총리에 불과했지만 요셉을 통해 애굽이 기근을 극복하였고, 애굽과 이스라엘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화평의 시대를 누렸습니다. 다니엘도 왕이 아니라 단지 지혜가 많은 인재에 불과했지만 다니엘을 통해 바벨론이 안정을 이루었고, 많은 관료들이 죽임 당함을 면하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특성,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 인간이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4. 하나님, 인간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사역을 행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명예, 하나님의 존귀함을 위한 어떤 사역도 없습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비교되는 독특함은 유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상도, 신전도, 하나님을 위한 어떤 것도 만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인간의 차별이 없으며, 부당함이 없고, 인간에게 해로움이 없고, 불편함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에 인간이 주체적 역할’,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간의 존재나 역할이 부각되지 않기에 당연히 영웅이 없고, 인간에 대한 추앙이나 기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 어느 누구도 살아 있을 때에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혜택을 받은 적이 없고, 죽은 후에도 이들에 대한 기념일이 없고 이들의 치적에 대한 존경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때가 차매

구약의 결론은 인간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다입니다. 구약 내내 인간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스스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제도)을 세워봤고, 사람도 바꿔봤고(잦은 쿠데타, 새로운 국가건설), 지혜도 사용해봤고, 각종 종교(우상)도 섬겨봤고, 연합국의 형태도 유지해봤고, 부유함도 얻어 봤고, 원수를 제거하는 일도 해보았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핑계할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실패를 하도록 방치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택하는 모든 방법을 허용하시면서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를 행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수단의 무용성이 드러나고, 더 이상 새로운 방법이 없으면서도 인간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또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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