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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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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강 열왕기하 1 ~ 5 장

 

Ⅰ. 하나님이 없어서 (왕하 1장)

 

1. 죄인의 종교성

죄인들은 하나님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늘 신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신을 떠나지 못하며, 신을 떠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신-의존적 존재로 창조하지 않았는데 죄인은 스스로 신에게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神)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이 죄인들의 인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신을 버릴 때는 자신들이 의지할만한 근거를 마련한 때이고, 죄인들이 신을 찾는 때는 절박한 때입니다. 신을 버릴 만큼 인간이 신뢰하는 것은 기껏해야 상황과 조건 등 늘 변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것일 뿐이고, 신을 찾을 만큼 인간이 절박할 것은 언제나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은혜로 제공하시고 보장해주심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주시는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2. 잡아오라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내 병이 낫겠나 물어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이 살길을 찾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바알세붑과 경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아하시야가 하나님을 찾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엘리야에게 알려주고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였습니다(1:4, 16).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병들어 있는 아하시야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요, 아하시야는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의 소식을 들은 왕은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합니다(1:9). 찾아도 응답 없는 바알세붑보다는 먼저 찾아와 알려주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질병의 결과를 알려주는 사람이라면 혹시 치유할 방법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초빙해야 하는데 왕은 자신이 죽을 것을 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잡아 죽일 생각만 합니다.

 

3. 은혜와 거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알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겨서 율법을 모르는 사람에 비해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사례, 하나님을 버림으로 징계와 형벌을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하시야는 하나님대신 바알세붑에게 물어 하나님의 질투와 징계로 죽은 것이 아니라 병이 들어 죽었을 뿐입니다. 만약 아하시야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면 살 길이 있었을 것인데 어리석게도 전혀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북왕국이 여로보암부터 아하시야까지 온통 우상을 섬겼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이스라엘이 물으면 대답하시려고 했습니다(1:16). 심지어는 구하지 않아도 대답부터 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데 죄인들은 은혜를 거부합니다.

 

 

Ⅱ. 사람이 바뀌어도 (왕하 2장)

 

1. 평범한 엘리야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동일하고 인간의 능력과 재주는 사람의 일에는 유용할 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를 때에는 갈멜산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살기가 두려워 벌벌 떨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고백하는 전형적인 인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아합의 전차보다 앞서 달리는 능력을 펼쳤지만 생활에 그 능력을 활용한 것이 아니었으며, 신기한 능력과 마음의 평안과 안식, 행복은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각양의 계시와 은혜를 통해 엘리야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후에야 자신을 보내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 또 평범한 엘리사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과 필요 때문에 엘리야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거나, 더 많은 사역을 펼쳐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원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어떤 특정한 신령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엘리사가 사역을 이어받습니다. 엘리사도 밭을 갈고 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요구한 것은 엘리사도 그때까지는 하나님에 대해 몰랐기에 계승자의 지위를 요구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은 엘리야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이 양도하거나 수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영력을 가진 자로 자기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십니다. 엘리야가 떠난 후 엘리사가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여전히 엘리사일 뿐이고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며 엘리사를 가르치시고 이스라엘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엘리사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라도 엘리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엘리야를 추모할 것도, 엘리사를 추종할 것도 아닙니다. 아하시야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Ⅲ. 하나님을 알라 (왕하 3~4장)

 

1. 원망한 왕, 예물을 드린 왕

모압의 배반에(1:1, 3:5) 대해 이스라엘과 유다, 에돔은 연합군을 형성하지만 도리어 물이 없어 죽을 고비를 맞게 되자(3:9) 하나님께 묻지 않던 왕이 ‘여호와께서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라고 원망을 합니다(3:10, 13). 여호람 왕은 엘리사가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소서’라는 말처럼 평상시 우상에게 물었을 것이고, 물이 떨어졌을 때에도 이미 우상에게 물었을 것인데 아무 소득이 없어서 여호사밧의 권고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뿌리치지 않고 응답하시되 단지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계시 사역을 행하십니다. 물이 없어 절박한 자들에게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개천을 많이 파라고 하시며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고 하시고(3:16, 17), 실제로 아침에 물이 흘러와 땅에 가득하게 됩니다. 정작 전쟁은 모압 사람들이 해가 물에 비친 것을 피로 오해하여 이스라엘 진에 왔을 때 이스라엘이 공격하여 간단하게 크게 승리합니다.

상대적으로 모압 왕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리기까지 하지만 패하고 맙니다(3:27). 엄청난 예물을 드린 모압 왕은 허무하게 패하고, 여호와를 원망하던 여호람 왕은 근거없는 승리를 함으로 모압의 신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돌보는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질병을 고치는 것,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것입니다. 병 고침 받고 전쟁에서 이긴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2. 다양한 방법

엘리사의 사역은 영역과 기능과 대상을 초월하고 특별한 비법이라고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 이유는 엘리사의 사역이 엘리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읍의 물이 나빠 토산이 익지 못하자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던져서 물이 고쳐지고(3:19~22),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의 절박한 사정에 대해 기름 한 그릇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자 바로 그 기름이 모든 그릇을 채울 때까지 마르지 아니하여 풍성한 기름을 팔아 빚을 감고 남은 것으로 여생을 생활하게 하십니다(4:1~7). 엘리사를 공궤하던 수넴 여인의 아들 사건을 통해 한 여인과 가정의 위기를 도와주시고(4:8~37), 길갈 지역에 흉년이 들어 함께 국을 끓여먹을 때 독에 의해 위기에 처할 때 가루를 가져오게 하여 솥에 던져 독이 없어지게 하셨습니다(4:38~41). 한 사람이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자 도리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어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먹고 남게 하였습니다(4:42~44).

 

3. 하나님의 은혜

엘리사를 통하여 펼쳐지는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도 먼저 하나님께 구한 적이 없고, 하나님께 먼저 예물을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보답하겠다고 다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지속적으로 은혜와 계시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유력자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중재자(제사장)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엘리사를 중재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역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Ⅳ. 부끄러운 배움 (왕하 5장)

 

1. 아람 사람 나아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방인의 군대장관 나병 환자 나아만도 동원하십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큰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나아만의 처음 행동은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으로, ‘그가 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생각’(5:11)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이고, 요단강보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강 자체가 무슨 능력이나 신령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5: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하기에 사로잡혀온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고(5:2), 종들의 말을 들었고(5:13), 다른 나라의 다른 선지자의 말을 들었고 마침내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5:14).

 

2. 이방인의 찬양

아람 왕의 요청에 대해 여호람은 시비하려 함인줄 알고 옷을 찢으며 두려워할 때에 왕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5:8)라고 하고 왕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이방의 장군에게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5:15)라는 고백을 만들어 냅니다. 나아만은 병고 고치고 하나님도 배우고 ‘너는 평안히 가라’(5:19)는 배웅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나아만을 따라서 물품을 취하고 나병이 발하게 되었습니다(5:27). 나아만이 한번 은혜를 받았다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려는 것은(5:17) 신이 특정 지역과 연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합당한 보상을 행하려는 시도입니다. 게하시도 치유 사역이 하나님이 행한 것이라기 보다는 엘리사의 능력이라고 여긴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나아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방인이요 나병이 걸린 나아만이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찾아와 치유를 받고 이스라엘은 백성임에도 도리어 나병에 걸리는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데 죄인은 계속 고난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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