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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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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열왕기하 17 ~ 20 장

 

Ⅰ. 이스라엘의 패망 (왕하 17장)

 

1. 앗수르의 등장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사사시대에는 메소보다미아(삿3:8), 모압(삿3:12), 미디안(삿6:1), 블레셋, 암몬(삿10:7) 등이 주요 대적이었고, 사울과 다윗의 시기에는 블레셋(삼상4:1), 아말렉(삼상15:4)이 주요 대적으로, 솔로몬 이후에는 에돔과 수리아(왕상11:14, 25) 등이, 나라가 분열된 이후에 북왕국에서는 아람(왕상20장), 모압(왕하3장)이 대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세한 적은 거의 없었고 늘 열세였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가 멸절된 후 이스라엘은 급격히 세력이 약화되었고 국제적으로 앗수르가 신흥 강대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미 므나헴(북 16대) 왕 시대에 앗수르 왕 불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하자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쳐 돌아가게 하였고(왕하15:19), 베가(북 18대) 왕 시대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디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겨갔습니다(왕하15:29).

 

2. 이스라엘의 패망

사사, 사울, 다윗 시대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애굽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과 결혼 동맹을 맺었고 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유다의 르호보암 왕 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아갔습니다(왕상14:25). 애굽은 강대국이기보다는 주변 나라들과 경쟁하는 수준이었는데, 호세아(북 19대) 왕 때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다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를 보내어 도움을 청하며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여 앗수르를 배반하였습니다(17:4). 앗수르 왕은 호세아를 옥에 감금하고, 사마리아를 삼년 간 에워싼 후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갔습니다(17:6).

 

3. 혼합 정책

이스라엘 백성은 두 차례에 걸쳐 앗수르로 끌려갔고,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하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고 차지하고 거주하게 하였습니다(17:24). 또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게 그렇게 하여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느봇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을 섬겼습니다(17:29~33). 이스라엘은 이민족들과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혼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들과 ‘다르게’ 구별하셨는데 모든 나라와 ‘같이’되고 싶어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온전히 ‘다른 나라와 같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에서도 백성들이 행복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강하고 번성한 나라 아래에서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앗수르 또한 이스라엘과 바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4. 패망분석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국가, 나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에게는 오직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고 도리어 은혜에 은혜를 더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습니다’(17:7, 8). 또한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17:15) 온갖 우상을 섬기며,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17:34, 40) ‘스스로 팔려’(17:17) 자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스스로 망한 것입니다.

 

 

Ⅱ. 유다의 위기 (왕하 18~19장)

 

1. 선한 왕?

북 왕국 호세아(북 19대) 왕 삼년에 유다에서는 히스기야(남 13대)가 왕이 되었고, 호세아 구년에 이스라엘이 패망할 때는 히스기야가 통치한지 육년 되던 때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남 12대)은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했으며(16: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고(16:8), 다메섹의 제단을 보고 유다에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성전의 기물들을 옮기기까지 했습니다(16:10, 14). 히스기야도 처음에는 앗수르를 섬겼으나 여호와께서 함께 계셔서 형통하게 하시매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18:7)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선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2. 악한 왕?

앗수르는 히스기야의 배반을 기억하였다가 북 왕국을 점령한 후 전력을 정비하고 팔년이 지난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하매 히스기야가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기로 하자 앗수르 왕이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청하고 이에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습니다(18:13).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조공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를 배반한 것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애굽을 의지한 것이었습니다(18:21). 랍사게가 와서 마음껏 유다를 비난하고 조롱해도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3. 히스기야의 조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는 참으로 오랜 만에 히스기야가 비록 직접은 아니지만 왕궁의 책임자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이사야에게 보내 여호와에게 기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고 응답하셨고(19:7) 실제로 랍사게로 돌아갔습니다(19:8). ‘돌아가게 하고, 칼에 죽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 중에 하나가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후퇴하던 앗수르 왕이 다시 협박편지를 보내자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한때는 여호와의 성전 곳간을 털어 조공을 바치기도 하였으나 절박해지자 여호와를 찬양하며, 이방 신들을 비난하고 여호와가 구원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라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야 다행이지만 이미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해 조치를 말씀하신 것과 그 중에 처음 것이 이미 응답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4. 여호와의 징조

이미 예언과 응답을 하신 하나님은 다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19:28, 33)고 선언하시고 히스기야에게는 징조로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서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고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시고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19:31)고 다짐까지 해 주시고,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19:34). 과연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치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고, 그가 그의 신 니스룩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칼에 맞아 죽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위세를 떨치던 앗수르 왕의 자신의 신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너무나 나약하고 두려움에 떨던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나라의 크고 작음, 강하고 약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를 통치하고 있는 중에 앗수르는 살만에셀 왕이 죽고, 산헤립 왕이 죽고 에살핫돈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앗수르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전쟁을 이기고 짐, 어느 나라의 흥망성쇠, 누가 왕이 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아무리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지라도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인간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 것을 권고하시는 견본인 것입니다.

 

 

Ⅲ. 히스기야의 말년 (왕하 20장)

 

1.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열왕기에서 북 왕국에 대해서는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남 왕국에 대해서는 히스기야(18~20장)와 요시야(22~23장)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내용적으로는 신앙적 모습이 거의 없습니다.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난 후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고 여호와께서도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낯을 벽으로 행하여 통곡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여호와가 주셨던 응답이나 징조를 신뢰하지 않았던 히스기야는 이번에도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라고 합니다(20:8). 심지어는 여호와의 징표가 임함에 대해서도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라며 여호와를 시험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며 히스기야의 요청을 들어주십니다. 참으로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자기 보물고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나음을 듣고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편지와 예물을 보내왔습니다(20:12). 히스기야는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강조점은 ‘자기의 보물고’(20:13)와 ‘내 궁에 있는 것’, ‘나의 창고에서’(20:15)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여호와의 성전의 은을 털어 조공을 바치기도 했었는데 상황이 나아지자 자기의 보물고와 자기 왕궁과 자기 창고를 채웠고 모든 것을 보여줌으로 자기의 번성함과 강성함을 자랑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에 등극하던 초창기에 여호와께서 형통하게 하시던 때를 제외하면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절박할 때, 위험할 때에만 여호와께 간구할 뿐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께 의존적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더 풍성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3. 히스기야의 죽음

히스기야가 그토록 자랑했던 부귀영화는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입니다(20:17). 강대국 앗수르가 약소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 앞에서 무기력하게 패한 것 같이, 히스기야가 자랑하고 의지하려는 것 또한 너무나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하고 부유한 것이 아니라 삶가운데 하나님의 분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패망의 위기에서 보호받는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도 은혜를 누리지 못했고 자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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