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조회 수 12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 5 강 열왕기하 21 ~ 25 장

 

Ⅰ. 자신의 생각대로 (왕하 21장)

 

1. 종교의 변화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종교적 변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계시를 행하시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계속하여 다양한 계시적 사건으로 이스라엘을 도와주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우상을 섬기는 경우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도 제발로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섬긴 적이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일정부분 종교개혁을 행하기도 했지만 왕정시대의 종교개혁은 종교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관계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2. 므낫세의 행적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14대)가 유다의 왕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므낫세는 자신의 생각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요, 자신의 왕권과 나라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을 행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앗수르를 배반하는 모습으로 우상 종교를 제거하였다면, 므낫세는 반대로 앗수르와 화친하는 모습으로 히스기야가 세운 여호와와 관련된 종교적 내용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고,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습니다. 또한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므낫세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간구하는 것이고, 므낫세는 이런 방식을 동원하여 오십오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니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 아몬의 행적

유다의 아몬 왕(15대9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우상을 섬겨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왕들 중에 하나님의 길을 버린 자는 있지만 ‘아버지의 길을 버리고, 아버지의 악행을 떠난’ 사람은 없습니다. 유다 아마샤(9대)가 통치할 때 무리가 반역을 일으켰고(14:19), 아몬의 시대에 신복들이 반역하여 왕을 죽이매 국민이 반역자들을 다 죽이고 새로운 왕을 세웠습니다. 북쪽이나 남쪽이나 자신이 반역을 일으켜 왕이 되거나,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자를 왕으로 세우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반역에 반역을 거쳐 세운 왕이 요시야(16대)로 왕이 될 때 여덟살이었습니다. 아마도 반역을 일으킨 신복들이나 국민들은 악행을 일삼는 장성한 왕보다는 차라리 철모르는 아이가 왕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선왕들의 악행에 치를 떨던 백성들이 어린 왕을 세워 왕권을 약화시키고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살기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입니다.

 

 

Ⅱ. 요시야의 개혁 (왕하 22~23장)

 

1. 요시야

팔세에 왕이 된 요시야가 열여덟째 해 즉 스물여섯 살 때에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이때에도 종교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우선이었습니다. 왕이 개혁을 추진한 것은 당시의 상황보다 율법의 내용이 더 좋았다는 것이요, 백성이 개혁에 동참한 것 또한 당시의 상황보다 율법의 내용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왕이든 백성이든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일지라도 이러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내용을 생각하게 하고 신앙을 회복하여 인간의 삶을 평안하도록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때에도 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국제정세에서 애굽이 다시 강성해서 세력을 펼치며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할 때 요시야가 맞서 나갔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2. 이스라엘의 종교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고 왕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시종에게 책에 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고 명령하고, 신하들은 여선지 훌다에게 물었습니다. 훌다는 유다 왕들이 행한 일들에 대한 결과가 임할 것과 요시야가 여호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한 것을 여호와께서 들으셨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요시야가 행한 종교개혁은 역으로 그 동안 이스라엘(유다)의 종교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21:4~20).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어다가 불사르고, 유다 왕들이 세워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불사르고, 여호와의 성전 가운에 남창의 집을 헐었고,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더럽게 하고, 성문의 산당을 헐었고,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유다의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리고, 유다의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을 헐고,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운 산당들을 더럽게 하였고,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었고,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도 헐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고,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호와의 성전에서 법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3. 여호아하스, 여호아김(엘리아김), 여호야긴

요시야가 애굽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에 이제 유다는 애굽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시아에 이어 여호아하스(17대)가 왕이 되었지만 애굽의 바로 느고가 그를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아예 애굽으로 잡아가고 조공을 받아가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아예 이름을 여호야김(18대)으로 고치기까지합니다. 애굽에 시달리딘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자 삼 년간 섬기다가 배반을 합니다. 여호아김으로서는 불행하게도 애굽이 세력이 약해지고 바벨론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다브게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야긴(19대)이 왕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매 유다의 왕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나아가 사로잡힙니다. 바벨론의 왕이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고,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 잡아갔습니다.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20대). 국제정세 속에서 살길을 선택하려던 유다의 전략이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Ⅲ. 누가 왕인가? (왕하 24~25장)

 

1. 유다의 멸망

바벨론에 의해 왕이 된 시드기야가 배반하자 느부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삼년간 포위하매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고 성벽이 파괴되매 바벨론 군사들이 왕을 사로잡아 심문하였습니다. 결국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감으로 유다는 공식적으로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애굽이나 바벨론에 의해 왕이 교체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시드기야 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더 이상 왕이 등극하지 않기에 정치적으로 유다가 패망하고 나라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후에 느부갓네살은 그달리야로 하여금 유다를 관할하는 지도자(파카드)가 되게 하자 왕족인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죽였습니다.

 

2. 성전의 파괴

북 왕국이 패망할 때와 마찬가지로 남 왕국이 패망할 때에도 성경은 정치적 요소보다 종교적 내용을 더 많이 언급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놋바다를 깨뜨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기타 기물들도 모두 가져갔습니다.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파괴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이스라엘이 강성한 나라를 자랑하려고, 왕권을 과시하려고 세웠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기록함으로 결국 왕들의 모든 영광이 사라졌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관점으로는 나라가 패망하게 되었고, 히브리 민족공동체,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국가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들의 소망은 나라의 독립이었고, 저들의 기대는 나라를 회복할 ‘메시야’ 즉 새로운 ‘왕’이었습니다.

 

3. 누가 왕인가?

유다의 왕들은 신앙적 관심은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여호와를 택하기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유다인들의 생각이 틀리고 하나님의 뜻이 옳음을 보이시려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왕들을 향해 21:13, 23:27절에 여호와께서 나라와 성전을 버리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유다는 왜 여호와를 순종하는 대신 다를 방법을 따를까요? 우상을 숭배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처럼 여호와를 섬겼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서일까요? 여호와가 결국 이스라엘을 패망케 하리라는 선언은 더욱 여호와를 섬길 의욕을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열왕기 이외에 예언서에도 담겨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의 하나님되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기를 기대했던 왕이 전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오직 하나님만이 언제나 이스라엘을 위해주는 진정한 보호자, 책임자이셨습니다.

 

4. 인간의 실패

열왕기는 단순히 왕정사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었으나 이스라엘은 패망하여 갈대아로 포로로 잡혀가고,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으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애굽으로 피난을 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가나안 정착이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은 ‘하나님 버리고 살기’, ‘자신의 지혜대로 살기’는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번영이 있는 듯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강대국을 자처하던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제국도 모두 동일한 역사를 반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토라, 율법)은 종교적 명령이 아니라 삶의 원리입니다. 구약전체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힘들게, 어렵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진노와 저주를 행하신 적도 없습니다.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시험과 역경을 주신 적도 없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실패입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열심은 신약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