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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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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역대상 11 ~ 17

 

. 다윗의 나라 (대상 11, 12, 14)

 

1. 기회주의

사울이 죽고 이스보셋이 왕이 되어 이년을 다스린 후 죽었을 때에 그 동안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이 친히 다윗을 찾아와서는 느닷없이 혈족임을 강조하며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11:2). 사울이 통치하던 때에 다윗이 전쟁에서 연승하며 공적을 쌓았고 사울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다윗의 편에 서지 않았고 사울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다기 보다는 비록 다윗의 공적이 있지만 왕으로 추대하기에는 자신들의 기준에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자 하나님의 말씀을 운운하고 다윗에게 매어달립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기회주의자처럼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입니다(11:3).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2. 여호와께서

다윗이 헤브론 유다족속들만의 왕으로 통치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다윗의 세력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다윗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 이르렀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선봉에 서서 전쟁을 벌여 시온 산 성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고 명하고 두로 성을 쌓았습니다. 전쟁에서 요압이 공적이 있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다윗의 공적이 있으므로 성 이름을 다윗의 이름을 따라 지었습니다. 모두 사람들의 수고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1:9)고 합니다.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도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11:10), 또 다른 용사인 야소브암, 엘르아살이 다윗의 최대 정적인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일에 대해서도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11:14)입니다.

장수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병가지 상사입니다. 만약 장수가 강조되고 승리가 강조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무관하고 다른 나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다른 나라들과 같은 행적을 보일지라도 성경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신실함 때문에 이스라엘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조상들과의 약속 더 나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입니다.

 

3. 다윗의 용사들

다윗의 용사 명단은 다윗의 강성함을 상징합니다. 각 사람이 용맹하고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심지어는 베냐민 지파 사울의 종족인 사람도 있고(12:2), 갓 사람 중에서,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므낫세 지파 등에서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었고, 어떤 이는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이고(11:20), 어떤 이는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며(12:2), 어떤 이는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들이었습니다(12:8). 대략 340,822명의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이미 다윗과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이기에 자신들의 행동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연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나이다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12:18),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이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12:23) 등입니다. 물론 백성들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전과 이후의 행적에 비추어볼 때 다윗을 향한 찬가의 성격이 짙어 보입니다.

 

 

. 예루살렘에서 (대상 13, 15, 16)

 

1. 왕이면 왕답게

그 동안 다윗을 방관하던 블레셋이 다윗의 강성함에 위협을 느껴 쳐들어 왔으나 두 번에 걸쳐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14:15)고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14:17)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14:2)입니다. 그러나 두로 왕 히람이 사람을 보내어 궁전을 건축하게 하매 수용하여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15:1), 또 아내들을 맞아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은 왕다운 면모를 갖추어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2. 다윗이 노하여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돌아와 기럇여아림에 있었는데(삼상 6:21, 7:1)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옮겨오려고 하였습니다. 법궤의 운반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레위 자손 중 고핫 자손이 메도록 하였지만(4), 법궤가 블레셋에서 돌아올 때에 수레에 실려 왔었습니다(삼상 6). 다윗과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 새 새 수레에 싣고 나왔고, 온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였습니다. 이때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께서 진노하사치시매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여호와의 행하심에 대해 진노하여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기를 두려워하여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왜 웃사에게 진노하셨는지도 궁금하고, 다윗이 왜 하나님에게 진노했는지도 궁금합니다. 블레셋의 경우와는 달리 아마도 다윗은 수레를 끌기에 적합한 소를 사용하였을텐데 소가 뛴 것도 의아합니다. 단지 소가 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의 의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수긍하지 않으신 듯 합니다. 다윗의 태도와는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3. 다윗 성으로

웃사 사건에 대해 다윗은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15:2),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15:13)라고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가 있는 곳으로 자신이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기어코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의도를 선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번성함을 자랑하며 여호와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의도를 아신 것 같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다윗의 속셈을 알았는지 다윗의 행동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습니다(15:29). 다윗은 나름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매니라’(15:15)와 같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수고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15:26)라고 합니다.

 

4. 여호와를 칭송하고

여호와의 궤를 위한 다윗의 조치들은 매우 집요하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찬란합니다. 그 동안 여호와의 궤는 방치되다시피 했었고,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궤를 특정한 장소로 옮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다윗의 행동은 여호와를 위한 선한 일이고, 온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궤에 대해 인식시키고, 이스라엘 무리로 하여금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게 하고,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각 사람에게 떡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고,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는 것으로 매우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친히 춤추며 뛰놀았고,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과연 여호와를 위한 일 일까요?

 

 

. 건축하지 말라 (대상 17)

 

1. 마음애 있는 바를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17:1), 여호와의 궤는 예루살렘의 기브온 산당의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셔져 있을 때에(16:39) 선지자 나단에게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라고 합니다. 이때 나단의 대답이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17:2)입니다. 나답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며 전달하는 자이기보다는 왕의 뜻을 대행하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후일에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을 세울 때에도 나단은 하나님께 묻지않고 철저하게 다윗의 뜻대로만 행동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기보다는 다윗의 나라가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에 이미 이러한 시나리오가 세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2.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여호와의 궤를 옮겨오기 위해 전무후무하게 성대한 축제를 열었던 다윗의 노력과 의도에게 불구하고, 선지자 나단의 아부성 대답과는 다르게 여호와는 아주 단호하게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선언합니다(17:4). ‘이스라엘 무리와 더불어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령한 어느 사사에게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집을 지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계셨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도 내가 너를 목장 곧 양떼를 따라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세워주는 것이지 다윗이 하나님을 세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다윗과 이스라엘이 어디로 갈 수있으며 그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의도와 하나님의 의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3.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다윗이 여호와가 거할 집(바이트)을 세우려고 하자 금하시며 도리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바이트) 세울지라’(17:10)고 하십니다. 주제는 이고 핵심은 인간이 여호와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인간의 집을 지어준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열심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결국은 여호와를 삼켜버릴 것입니다(2:17). 결국 다윗과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였고, 여호와는 온데간데없고 성전만이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으로 변질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지만 다윗의 아들 중의 하나가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17:12)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장차 다윗이 행할 일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무익함에도 불구하고 수용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이기는 신앙적 열정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아멜렉을 진멸하지 않고 전리품을 남기며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삼상 15:21)라고 할 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의 열정이 다윗에게 다른 유형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순종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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