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조회 수 127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 강 역대상 18 ~ 22

.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대상 18~20)

 

1. 성경의 목적

성경의 목적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사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특정한 인물의 특징, 업적, 공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또한 특정한 상황, 조건, 제도, 환경이 인간의 삶이 더 유용한 것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만약 성경에서 특정인물에 대해 과도하게 묘사를 하고, 특정상황에 대해 지나친 묘사가 등장하면 그것은 사실적인 표현이기보다는 다른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문학적 장치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한 결과 이외의 것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기 위한 양식이며,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부각시키는 양식입니다.

 

2. 하나님이 이기게

역대상은 다윗의 승전기록을 화려하게 기록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 또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습니다(18:1~2). 다윗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쳐서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명 이만 명을 빼앗았고, 하닷에셀 왕을 도우러 왔던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습니다(18:3~7). 하맛 왕 도우는 아들 하도람을 보내서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였고(18:10),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 죽였고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었습니다(18:12, 13). 내용상으로는 다윗의 승전기록인데 표현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18:6, 13)입니다.

 

3. 다윗의 용사들

다윗의 문상을 거부한 암몬 자손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어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여 다윗과 싸우려 하였습니다(19). 일종의 다윗의 반대연합군이 형성된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에서는 요압과 아비새가 전투에 나가 승리를 거두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하닷에셀은 자신이 패한 것을 알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자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않아 연합군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충실한 신하로 랍바를 정복할 때에 본인이 적군을 격파한 후 다윗 왕이 왕관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후 블레셋 사람들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십배를 쳐 죽이고 항복을 받아냈고,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고,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시므이의 아들 요나단이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을 죽였습니다.

 

4. 정의와 공의를 행할 새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원인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질병적 원인이 아니라 죄입니다. 나라가 번성하다고, 영토가 넓다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있다고, 행정제도가 잘 정비되었다고 인간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나라보다 더 큰 나라들이 있었고, 다윗보다 더 영웅다운 왕들이 많이 있었고, 다윗의 군사보다 용맹한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이기게 하셨다는 것이며,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새’(18:14)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죄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통치에 대한 기록에서 다윗의 승리와 업적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다윗이 이렇게 저렇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묘사가 적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요, 이러한 기록 다음에 다윗에 대한 반대의 묘사가 등장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 인구 조사 (대상 21)

 

1. 하늘의 별과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땅의 티끌같이’(28:14),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32:12)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삭을 주심으로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번영, 형통, 유지는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기의 수고와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이동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지파별로 계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구조사는 숫자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영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재촉한지라

다윗은 사단에게, 죄에게 충동되어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합니다. 다윗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통치상 편리함을 위해서 인구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공로를 확인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요압이 만류할 때에 재촉한지라’(21:4) 고집하다, 굳게 유지하다, 집착하다, 꽉 달라붙다, 열중하다였습니다. 성경이 재미있는 것은 다윗과 요압의 태도가 반대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요압을 비롯한 신하들은 그동안 모든 공로를 다윗에게 돌리며 다윗을 영웅화하였습니다. 신하들이 다윗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제안할 수 있고, 이때 그 동안 신실하게 묘사된 다윗이 오직 하나님을 강조하며 신하들을 만류하는 모습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다윗은 자신의 업적에 집착하고 신하들은 왕을 만류합니다. 앞에서 다윗에 대해 묘사되었던 모든 기록들은 그동안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다윗이 이렇게 과감하게 하나님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다윗의 행적이 대조되고, 용사들과 왕이 대조되어 죄인들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줍니다.

 

3. 악하게 여기사

다윗의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21:7)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거의 평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5:5)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만 생각하고 죄만 행할 수 있을 뿐이기에 죄인에 대해 달리 평가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선하게 보이는 행동, 의롭게 여겨지는 행동들은 죄인들 스스로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 도와주신 것입니다. 다윗시대에 이루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고 선언할 뿐 다윗의 행동을 선하게, 의롭게여겼다고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행한 것이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입니다.

다윗은 연약할 때, 위치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어찌할 바를 여쭈었습니다. 다윗은 강성할 때, 의지할 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행한 것, 자기 생각대로 행한 것이 악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21:8),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21:8) 또는 사악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왕이라는 통치자의 기준으로는 전혀 잘못한 행동이 아닙니다. 효율적 국가운영을 위해서는 인구조사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기준에서는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국가가 아닌 백성으로 대하시며, 왕은 통치자나 대리자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하시는 것입니다.

 

4. 뉘우치사

다윗의 행동은 단지 하나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다윗의 마음, 생각, 의지, 원리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다윗은 단지 한 번만, 인구조사라는 한 가지만 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인구조사 이외에도 다양하게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자신의 공로와 업적을 강조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인구조사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닥친 위험은 하나님이 진노하여 내리는 형벌이 아니라 다윗의 다양한 범죄의 결과입니다. 삼년 기근이든지, 석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는 일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때 일어날 것으로 예고되었던 것들입니다(28).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려 천사를 보내셨더니는 하나님이 친히 진노하심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천사를 보내셨더니가 없다면 다윗과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다윗의 행동과 그 결과에 관한 사건에 대해 마치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듯,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시는 듯한 표현으로 이 사건이 단지 인구조사 사건이 아니라 죄와 하나님과 관련된 사건임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배우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이 죄의 결과를 당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뉘우치사’(21:15) 슬퍼하다, 애도하다, 불쌍히 여기다입니다.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은혜를 내리사 재난을 멈추게 하시는 것입니다.

 

5. 상당한 값으로

하나님은 다윗에게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매 다윗이 오르난의 집으로 갑니다. 이때 오르난은 다윗에게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21:23)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방의 왕과 같이 권력을 행사하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이때 다윗은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고는 다윗이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권력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하게, 풍성하게주고 합당하게행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스스로 행한 것은 인구조사를 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다윗의 행동이 죄인줄도 모르고, 이스라엘에 임한 재난을 피할 길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임을 알게 하시고, 죄의 결과가 임할 것도 알게 하시고, 재난을 피할 길도 알려주시고,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죄인을 은혜로 대해주셨습니다.

 

 

. 극히 웅장하여 (대상 22)

 

1.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다윗에 관한 밧세바 사건’, ‘인구조사 사건’, ‘성전건축 사건은 다윗이 죄의 사고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각각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다윗의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들입니다. 명분은 여호와를 위하여성전을 짓겠다고 하지만 속셈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22:5)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 23)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하나님을 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단지 하나님을 따를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또한 죄의 기준에 근거한 명성과 영광은 하나님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요, 인간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높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고 강하신 분으로가 아니라 거룩하신 분다른 분임을 선언하실 뿐입니다.

 

 


SCROLL TOP